한울안칼럼 | ‘앞으로의 상실’이 당도當到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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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칼럼 | ‘앞으로의 상실’이 당도當到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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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0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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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경 교도 (서울교당, 문화콘텐츠컴퍼니 스푸마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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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은 가장 큰 인생 수업

「엄마(3)」- 회의를 끝내고 보니 부재중 전화가 1분 단위로 연달아 3통이나 찍혀 있었다. 다급함이 느껴져 불안한 마음으로 급히 전화를 걸었다. 통화 하며 불안감이 안도감으로 동시에 피로감으로 되돌아왔다. 5월 첫째 주, 만 83세가 되시는 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멀리 흩어져 사는 친지들이 포천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의 문병을 겸해 포천 부모님 집에 모이기로 했으니 이번 주말에 너만이라도 미리 또 올 수 있겠냐는 연락을 주셨기 때문이다.


형제들과는 아버지의 생신과 어버이날을 한꺼번에 기념해 주말 며칠 후인 5월 1일 공휴일을 맞아 모이기로 이미 일정을 맞춘 상황이었다. 게다가 대각개교절이 토요일인 데다 4월 마지막 주 일정이 처리해야 할 일들로 촘촘하게 짜인지라 갑작스러운 일정에 즉답을 못 했다. 부산하게 일정을 조율하여 쉼 없이 주말을 보내야 하는 피로감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전화를 끊고 잠시 밖으로 나와 바람을 쐬며 걷기 사색을 하며 나와 대화를 나눈다. '도경, 생각해봐. 따로 쉬는 날 없이 일하느라 피곤한 거 이해하는데 친지들이 아버지 생신을 맞아 멀리서 부터 요양원으로 뵈러 온다는데 고마운 일 아닐까. 노환과 초기 치매로 인해 이제 당신이 누구인지 네가 누구인지 가족에 대한 대부분의 기억이 상실 되어 희뿌연 기억의 끈을 부여잡고 갈때마다 '네가 누구냐'고 반복해 묻는 아버지를 혹여 라도 늦을까 싶어 만나러 찾아오시는 거잖아'


감사하게 친지들을 맞이하는 것도 원불교 대각개교절 행사에 참석하는 것 만큼이나 소중하고 중요한 일이야. 아니, 오히려 사은(四恩)의 은혜를 천명하신 소태산 대종사님께서는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북극의 얼음처럼 꽁꽁 언 네 마음이 인제야 녹아가는구나.'라고 칭찬해주실 일이다. '마땅히 온당하게 회신 전화를 드리자'며 나 자신을 설득했다.


그렇다. 자식인 나보다 친지 어른들은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앞으로의 상실'이 머지않아 당도(當到)할 것임을 선험적으로 많이 경험하셨기에 더 늦기 전에 서둘러 오고 계신 것이리라. 천천히 서둘러 결국 내게 도착할 앞으로의 상실이 그렇게 오고 있음을 타인의 발걸음으로 느낀 것이다.


7년 전 남동생의 죽음이라는, 나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었던 상실감을 경험했음에도 '이번 주는 이래
서….', '그날은 저래서….'라며 내 시간에 맞춰 삶의 시계가 돌아가 줄 것이라는 착각과 오류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참 어리석은 도돌이표가 아닌가. 남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으며 눈을 감아도 눈을 뜨고 있어도 도저히 사라지지 않는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타인의 아픔이었고 타인의 세상이었던 것이 나의 아픔이 되고 나의 세상으로 치환되며 비탄의 문이 열렸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무한 반복의 되돌리기를 수없이 상상했던 그때. '만약에 그때 내가 그랬다면….'수없이 많은 'IF(이프)'를 떠올리다 결국은 'BUT(벗)'철저하게 일회적인 삶이라는 인생길에서 시간은 그저 앞으로만 향해 흘러 오늘에 이르렀다.


상실은 가장 큰 인생 수업이라고 했다. 인류의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잃어가는 반복 속에 결국 완성되기에 상실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라고 말한다. 부모님과의 이별, 이라는 '앞으로의 상실'이 머잖아 내게 당도할 것이라는 이 보편적 진리를 떠올리며 서둘러 엄마에게 전화를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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