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 오피니언 | 영산만감(靈山萬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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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8.06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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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 교무(영산성지 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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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성지에서 삶이 학창시절을 포함해서 올해로 15년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출가 생활의 대부분을 영산성지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영산이라는 장소는 앞서가신 많은 출가 선진님들께서 간난(艱難)했던 시절에 이 터전에서 치열하게 초발심을 불태우면서 원불교 교단의 한 페이지의 역사를 써 내려갔던 장소였고, 개인적으로는 출가해서 공부했던 장소였고, 사시사철 선·후배가 함께 삼밭재와 구인 선진님들의 기도봉을 순례하며 밤이면 벚꽃이 흐트러진 대각전 앞 벚나무 아래서 염불과 독경을 하면 그 소리가 정관평을 울리던 기억들의 장소였습니다. 영산성지를 다녀가신 많은 재가출가 교도님들에게도 개인적으로 남다른 의미의 장소였을 것입니다.


영산에 부임하여 농사에 대한 경험은 없었지만, 부임하여 맡게 된 임무가 정관평 농사, 스승을 찾고 문답하며 논문을 찾아 배워가면서 학생 때부터 꿈꿨던 유기농업도 점진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영산에서의 삶은 목가적 풍경과는 다르게 봄부터 늦가을까지 삼복더위에 논밭 5만평과 대각지 법인광장 성지 곳곳을 포함하여 대략 약 1만평 정도의 면적을 연중 4~5번 정도 풀을 깎아야 하는 고된 작업 현장이고 봄부터 시작되는 농사는 겨울철까지 쌀을 팔아서 성지 운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제는 한가하게 겨울을 보내는 농한기 시절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이렇게 힘든 육체노동을 하면서도 영산에서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대종사님께서 말씀하신 동정일여, 이사병행, 영육쌍전의 시범을 보여주신 성지이고 이곳에서 살아가는 재가출가 교도들 또한 저마다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영산에서의 삶이 세월이 깊어지면서 어느덧 정리해야 할 일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성지는 개인적으로 어찌 할 수 있는 간단한 공간들이 아닙니다. 성지라는 공간은 단순히 땅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단사에 중의적 의미가 함께 하기 때문이고 누군가에게는 영혼이 머물다 가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런 장소가 되도록 성지를 거쳐가신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현장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은 정리를 하면서 오늘까지 왔습니다. 대표적으로 성지를 방문하시는 많은 분들이 말씀하셨던 대각지 가는 길에 있던 돈사(豚舍)는 올해 매입을 완료하였으나 돈사 기반시설 콘크리트 처리 문제는 비용문제로 인해 아직 철거작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고, 소태산 대종사님과 구인선진의 흔적이 깃든 정관평 땅 문제도 법적인 문제로 인해 답보 상태에 있으며, 초기 교단이 건설될 당시에 현행 법령 테두리 안에서 처리 했어야 할 불법 건물들도 몇 해 전에 양성화 작업을 진행하였으나 아직 두 채는 해결을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또한 소태산 대종사님의 탄생가 복원 작업도 현재 대기 상태에 있습니다.


우리는 영산성지를 마음의 고향이라지만 장성한 자식들이 가끔 들르는 고향 같은 느낌이라고 할지, 요즘 시절의 고향 느낌이 드는 것은 내 생각만 그럴까 싶기도 합니다. 우리 공동체 구성원에게 근원성지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성찰해 봐야 할 시간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나쁜 것이라도 오래되면 묵어지고 묵어지면 불편한 것도 못 느끼는 시점들이 오게 됩니다. 할 수 없는 일을 안 한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고 세월을 흘려보낸 그런 시간들은 아니었을지 되짚어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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