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칼럼 | 삶을 담는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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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9.1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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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경 교도(서울교당, 문화콘텐츠컴퍼니 스푸마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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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는 사라져 버리는 기억을 물질로 버텨주는 형태의 존재

“무섭지는 않지만 다시는 유치원을 못볼 것 같아 속상해요”2년째 서울상도유치원에 등원 중이었던 7살 아이는 다니던 유치원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어 아빠를 졸라 다니던 유치원 철거현장을 지켜보며 울먹였다고 한다.


요 며칠 신문 사회면에서 상위 랭킹 뉴스가 된 '상도유치원 붕괴와 철거'사고를 바라보며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바로 옆 다세대주택 공사장의 흙막이 옹벽이 무너져 근처 지반이 내려앉았고, 이 때문에 지하 1층, 지상 3층짜리 유치원 건물이 10도가량 기울어지다 끝내 오늘 9월 10일 철거가 완료된다. 어른들의 태만과 안전 불감증으로 7살 아이가 지닌 삶의 추억 중 어쩌면 가장 역동적이면서도 사회적인 관계 맺기의 장소가 되었을 놀이와 배움의 공간이 처참하게 무너지며 헐리게 됐다. 적합한 논의와 절차를 거쳐 철거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활동하고 있었을 낮에 기울어졌다면 대형 참사를 예견할 수밖에 없는 유치원의 붕괴 모습을 바라본 아이들과 학부모, 인근 주민들의 충격과 혼란이 아이의 울먹임으로 고스란히 전해온다.


필자도 며칠 전 출근길 전철역 앞에서 지나쳐 온 3층 건물이 퇴근길에 보니 그 사이 헐려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오랜 점포들의 옆 벽면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걸 보며 순간 아쉬운 마음이 스쳐지나갔다. 동네에 대형마트가 생기며 오랜시간을 함께 지내온 노포들의 사라짐이 새삼스럽게 낯선 풍경이라서가 아니다. 하루 동안 사라진 건물은 수많은 시간, 사람들, 삶의 이야기를 쏟아내 온 공간이자 건물 밖 사람들에게는 그 지역의 장소성을 대변해주는 콘텐츠다.


한 사회의 공유된 삶의 양식이자 가치인 문화는 공간을 매개로 쉼 없이 형성되어왔다. 근대성은 도시의 공간을 통해 형성되고 구체화하였으며 변천해왔다. 공간은 단순히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삶을 담는 그릇이자, 삶을 생성하는 발전소로서의 역할을 묵묵히 해왔다. 때문에 형태를 넘어 그 공간을 이용할 사람과 그 공간에서 이루어질 콘텐츠의 연결성을 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결국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나 삶의 입장에서 그 시설이나 공간들이 어떤 작용을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생성해야 할 공간적 매듭이라고 생각한다.


장소는 사라져 버리는 기억을 물질로 버텨주는 형태의 존재임을 다시 되새기게 해주는 공간콘텐츠임을 다시 깨닫는다. 서울상도유치원 붕괴 사고를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과 난무하는 분석의 언어들 사이에서 7살 아이의 울먹이는 한마디가 그 어떤 언어들 보다 내게는 강렬하게 꽂혔다. 공간을 빼앗겨버린 아이들과 학부모, 유치원 관계자들을 위한 깊은 위로를 보낸다. 더불어 붕괴 사건에 따른 우리 어른들의 변명과 분석, 담론과 분노의 언어들을 지면을 통해 만나며 같은 관할구에서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원불교 소태산기념관을 떠올리게 된다.


원불교 서울 교화의 일대 전기를 마련하는데 일조한 서울회관은 35년의 역사적 기억과 수많은 추억을 품고 지난 2016년 철거되었다. 이후 '소태산, 정신개벽도량, 원불교, 실지불공의 한마당, 일원을 담아 은혜를 짓다'라는 핵심 키워드를 필두로 무사 완공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디디고 있는 건축현장의 안전과 오롯한 장소성을 다시금 간절히 염원하며 2018년 홍보 달력의 기도문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건축에서 토목공사는 나무에 비유하면 뿌리에 해당하고, 인생에 비유하면 유소년기 전부라 할 수 있습니다. 대규모 공사현장에서 안전을 지킨다는 것은 곧 사람의 목숨을 지키는 것이고, 일상을 지키는 평화의 다른 이름입니다. 현장의 기계 소리가 커질수록, 건설의 기운이 힘차게 자리할수록 사람과 생명에 대한 존엄한 가치가 높아지기를 기도합니다. 원불교소태산기념관 공사현장에서 안전을 기반으로 건물과 사람에 들이는 정성과 살핌만큼, 마침내 건물이 완성된 뒤 종교적 회심과 시대적 공감을 듬뿍 담아내는 평화의 전당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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