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강좌┃업業과 과보果報에 대하여 - 미투(#MeToo) 운동에 즈음하여 나와 우리를 성찰하다 (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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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강좌┃업業과 과보果報에 대하여 - 미투(#MeToo) 운동에 즈음하여 나와 우리를 성찰하다 (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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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4.05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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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가외의 태도, 셀프용서에 대해 생각해 본다. 대한민국에서 미투 운동의 물꼬를 텄던 그 여검사의 폭로, 그리고 그 가해자로 지목된 이가 교회에서 했다는 “하느님께서… 저의 교만을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라는 간증. 많은 이들이 이 대목에서 영화 '밀양(이창동, 2007)'을 떠올렸다고 했다. 필자도 이 영화의 개봉 당시 '악의 현실과 구원의 방향성'에 대하여 고민한 글을 발표하기도 했지만(<영화 '밀양'이 제기하는 인간학적 성찰, 「종교와 문화」13, 2007), 다시 보니 해답은 멀리 있지 않다.


초기 불전(佛典)인「아함경」에 나오는 한 인물의 이야기로 이 새로운 해답을 대신하고자 한다.


부처 재세 시에 '앙굴리마라'라는 흉악한 산적이 있었다. 그의 흉포함은 길 가던 사람을 죽이고 재산을 빼앗은 뒤 피해자의 손가락을 잘라 목걸이로 만들어 걸고 다닐 정도였다. 당연히 나라에서는 높은 현상금을 매겨 그를 수배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부처가 짐짓 홀로 산길에 들었다. 앙굴리마라는 부처를 죽이려고 힘껏 따라왔으나 부처는 신통력을 발휘하여 더욱 멀리 달아날 뿐이었다.


마침내 앙굴리마라는 마음으로 굴복하고 부처의 제자가 되었다. 얼마 뒤 그 나라의 왕이 부처의 처소를 방문했다가 곁에 앉아 있는 앙굴리마라를 보고 소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부처는 그가 이미 승단의 일원이 되었으므로 국가권력의 제약을 받을 수 없다며 거절하였고, 왕 또한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날 앙굴리마라가 시장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중 그를 알아본 일단의 사람들이 그에게 욕을 하며 돌을 던진 일이 있었다. 슬픔에 가득 찬 앙굴리마라가 처소에 돌아와 울며 부처께 그 사실을 고하자 부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앙굴리마라야, 너는 승단의 일원이고, 따라서 나는 너를 국가권력으로부터 보호한다. 그렇지만 네가 과거에 저지른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들은 사랑하는 친지를 잃은 사람들이고, 따라서 그들이 너를 비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란다.”


이 이야기는 거듭거듭 나를 울게 만든다. 참회하는 인간, 새로 태어난 앙굴리마라조차 자신이 저지른 업보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비난을 감수하며 자신의 지난 과오를 괴롭게 뉘우치며 슬퍼해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에게 남겨진 운명이었던 것이다. 업(業)이란 그런 것이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아무리 깊이 뉘우친다 해도, 행위에 대한 책임은 결국 자신의 몫일수밖에 없다. 용서는 마땅히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그 피해자들에게 빌어야 한다. 설혹 승속(僧俗)의 차이 또는 법망의 허술함으로 인해 법적 처벌을 피해나가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글을 써나가면서 나는 영 자기성찰과 참괴의 늪에 빠지고만다. 성별의 문제가 아니다. 진영의 문제도 아니다. 물 타기는 더더욱 아니다. 나는 너와 완전히 분리되지 않고, 법계연기(法界緣起)의 세계 속에 모두는 모두와 이어져 있기에, 그의 고통이 나에게 이토록 아프고, 저의 행위가 마치 나의 그것만 같다. 부디 용기 있는 고백들이 계속 이어지기를. 나 또한 그 자리에서 함께 하겠다(#With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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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책임져 마땅한 이들이 도덕적으로 뿐만 아니라 법제적, 실질적으로도 본인의 과오에 상응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일에 힘을 싣겠다. 그리고 또 나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겠다. 다른 자리, 다른 입장에서, 나는 또 다른 이들에게 가해자가 되지는 않았는지를.


* 최근 미투 운동의 흐름에서 권력관계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향이 있으나, 기본적으로 미투는 성적 피해를 입은 이들(특히 여성)이 SNS상에 자신의 생존을 고백하며 일어난 운동이었다. 이에 본고는 미투 운동의 성격을 일차적으로 여성혐오의 문화에 대한 저항으로 간주하고 글을 전개하였다.


물론 여성혐오 자체가 양성간의 권력 불균형을 반영하는 현상임을 전제한다. 다만 최근의 미투 운동에서 강조되는 '권력관계'란 양성 간의 그것보다는 직장 내의 위계 등 다소 협소한 의미로 통용되는 경향이 있기에, 잠정적으로'(좁은 의미의)권력관계'와 '여성혐오의 문화'를 별도의 개념으로 분리하고 후자가 전자를 포함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또 여성혐오의 가해자는 성별을 초월하여 존재할 수 있음을 감안한다.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명백한 사실이지만. 마지막으로 본문에서 언급한 바 “저 같은 반응들이 본인의 마음에 비추어 거짓 없이 솔직한 것”이 아니라, 회피와 협잡을 위하여 벌어지는 경우는 아예 고려의 대상으로조차 두지 않았음을 밝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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