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강좌┃원불교 사드철폐운동의 의미(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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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강좌┃원불교 사드철폐운동의 의미(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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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4.14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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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사드철폐운동의 의미(Ⅰ)


원불교가 공공종교라는 것은 이처럼 시간과 공간 속에서 개인의 깨달음과 자비의 정신이 둘이 아님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는 것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성격은 원불교가 대외적으로 천명한 선언문들에도 잘 나타나 있다. 먼저 1971년 원불교 개교반백년 기념대회의 대회 선언문 요지이다. ①우리는 삼동윤리로써 세계평화, 인류자유를 달성하는 데에 앞장선다. ②모든 인류는 빈부격차, 종족차별을 없애고 강대국간 군비 경쟁을 종식시키며, 현대문명의 공해를 방지하여 인류평화를 추구한다. ③국력의 자주적 배양을 발판하여 선의의 경쟁으로 조국통일을 평화적으로 달성하고 민족의 슬기와 참됨을 바탕 하여 세계적 정신운동을 우리가 이 땅위에서 달성한다.


④종교연합기구를 통하여 종교적 공동과제를 토의하고 종교를 생활화할 것을 결의한다.36)의 4가지 항은 시민종교와 공공종교로서 나아갈 것을 세계에 다짐을 한 것이 아닌가. 삼동윤리와 세계평화, 평등세계, 정신운동, 종교연합운동을 통한 종교의 생활화는 원불교가 보편종교로서 가는 길을 명시한 것이다. 지난 50년을 돌아볼 때, 원불교는 이 길을 얼만큼 걸어왔을까.


또한 2000년 정산종사 탄생백주년 기념대회의 선언문이다. ①우리는 인류의 정신을 개벽하고 지상에 광대 무량한 낙원 세계를 건설한다. ②모든 종교, 사상, 만 생령을 하나로 보고 하나의 세계건설의 역군이 된다. ③삼학사은으로 활불이 되고 상극을 상생으로 돌려 온 누리에 자유은혜가 충만하게 한다. ④병진조화 사상으로 영육쌍전, 과학도학으로 참 문명세계를 건설한다. ⑤정교동심과 종교연합운동으로 평화통일, 세계평화에 기여한다. 낙원세계, 일원주의, 삼학과 사은, 영육쌍전, 종교동심과 종교연합운동 등 교의의 핵심을 망라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원불교 교법의 사회화는 얼마나 진척된 것일까. 마지막으로 2016년 원불교백주년 기념대회의 정신개벽 서울선언문이다. “원불교를 창교하신 소태산 대종사는 일원의 진리를 깨쳐 인류사회가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은혜의 관계'이고 진리·세계·인류·일터가 하나임을 천명하여 '하나의 세계'를 개척해 나갈 것을 염원하셨다. (중략) 하나, 우리는 물질을 선용하고 환경을 존중하는 상생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하나, 우리는 마음공부와 적공으로 강약이 진화하는 평화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하나, 우리는 서로 감사하고 보은하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원불교의 창교의 의미가 인류와 함께 해 온 백년의 역사를 더듬으며 지구의 문제를 고뇌하고 있다. 이의 해결을 정신개벽으로 규정하고, 상생의 세계, 평화의 세계, 하나의 세계를 만들것을 선언하고 있다. 이러한 선언들은 원불교가 시민종교이자 공공종교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동시에 사드반대운동이 이러한 종교로서의 원불교의 당위적인 활동임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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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의(正義) 교의의 사회화
원불교 사상의 집대성인 『원불교대사전』의 정의(正義)에 대한 항목은 도리, 규범, 덕의 중정(中正), 질서, 불의와 권모술수 등의 반대를 말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교의와 관련된 사항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정의에 대한 사항은 핵심 텍스트인 『원불교정전』의 교의편과 수행편에 나와 있다. 교의편에서는 사은의 법률은, 삼학의 작업취사, 수행편에서는 무시선법, 솔성요론, 최초법어에 등장한다. 신앙의 대상인 법률은의 법칙을 인도정의의 공정한 법칙이라고 한 것은 정의가 교의 구성의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삼학의 수행에서도 계행에 해당하는 작업취사의 강령이 정의는 취하고 불의는 버림이라는 점은 실천교의로서 의미를 갖는다.


무시선법에서는 “육근(六根)이 무사(無事)하면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하며, 육근이 유사하면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양성하라”고 하며, 솔성요론에서는 “정당한 일이거든 아무리 하기 싫어도 죽기로써 할 것이요”라고 한다. 삶을 하나의 수행으로 보는 원불교는 정의 실천이야말로 교의구현에 해당한다. 이점은 원불교가 불교를 개혁한 현대불교의 불교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참여불교(Engaged Buddhism)로서 사회적 역할을 중시한다고 할 수 있다. 사드 운동 또한 이점을 잘 보여준다.


정의는 소태산이 언급한 것처럼 일원상의 진리에 기원한다. “일원상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사은이요, 사은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우주 만유로서 천지 만물 허공 법계가 다 부처 아님이 없나니, 우리는 어느 때 어느 곳이든지 항상 경외심을 놓지 말고 존엄하신 부처님을 대하는 청정한 마음과 경건한 태도로 천만 사물에 응할 것이며, 천만 사물의 당처에 직접 불공하기를 힘써서 현실적으로 복락을 장만할지니, 이를 몰아 말하자면 편협한 신앙을 돌려 원만한 신앙을 만들며, 미신적 신앙을 돌려 사실적 신앙을 하게 한 것이니라(「대종경」교의품 4장)”라고 하고 있다.


사은은 편만한 일원상의 진리가 현실로 형상화된 것을 말한다. 이는 불교의 화엄(華嚴)사상과 불공(佛供)의 근현대적 개념에 기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원불교 신앙은 진리에 대한 불공으로 표현할 수 있다. 즉 불공은 이 세계가 부처 아님이 없으므로 이들 부처에게 불공함으로써 세계를 불국토로 만들자는 것이다. 종래의 등상불-불상(佛像)을 말함-을 향해 죄주고 복주는 대상으로 믿어왔지만, 인지가 발달된 현대사회에서는 하나의 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파악되었으므로 그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이면에는 근대적 합리성과 탈신화적인 사고가 개입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일원상의 진리는 모든 종교가 근원으로 삼고 있는 세계이다. 그 근본은 진리를 깨달은 부처의 마음으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이웃종교 혹은 동양의 사상까지도 포괄하는 진리적 세계를 상징화했다.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진리가 수행상의 지표로 나타날 때는 보다 현실적임을 알 수 있다.


소태산은 “공부하는 사람들이 현묘한 진리를 깨치려 하는 것은 그 진리를 실생활에 활용하고자 함이니 만일 활용하지 못하고 그대로 둔다면 이는 쓸 데 없는 일이라, 이제 법신불 일원상을 실생활에 부합시켜 말해 주리라. 첫째는 일원상을 대할 때마다 견성 성불하는 화두(話頭)를 삼을 것이요, 둘째는 일상생활에 일원상과 같이 원만하게 수행하여 나아가는 표본을 삼을 것이며, 셋째는 이 우주 만유 전체가 죄복을 직접 내려주는 사실적 권능이 있는 것을 알아서 진리적으로 믿어 나아가는 대상을 삼을 것이니, 이러한 진리를 아는 사람은 일원상을 대할 때마다 마치 부모의 사진 같이 숭배하게 될 것이니라(「대종경」교의품 3장)”라고 한다.


상징이 삶과 직결되는 것은 이처럼 깨달음과 깨달음의 실천인 수행으로 나타난다. 수행의 귀결인 취사력은“정의인 줄 알거든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죽기로써 실행할 것이요, 둘째는 불의인줄 알거든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죽기로써 하지 않을 것이요(「대종경」수행품 2장)”라고 하는 것처럼 솔성요론과 같이 정의의 실천으로 나타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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