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대연 40주년 | 젊은 청춘을 함께했던 원불교대학생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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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연 40주년 | 젊은 청춘을 함께했던 원불교대학생연합회
  • 관리자
  • 승인 2018.08.02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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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연 40주년 특집- “나의 사랑, 원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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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월 25일이 원대연 40주년을 기념하는 대회가 열리는 날이라고 한다. 나는 원불교대학생교우회 활동을 직접 활동했던 선배는 아니다. 대신 교정원 교화부에 근무하는 대학생교화를 담당하는 담임교무로서 5년간을 원불교대학생들과 호흡을 하며 젊은 청춘을 보내고 그 식지 않은 열정과 애정이 함께 하여 지금도 '원대연'이라는 말을 듣거나 글을 보면 귀가 번쩍 열리고 눈이 크게 뜨인다.


내가 원대연과 인연을 맺은 것은 원기 71(1986)년 서울교구 신촌교당에서 부교무로 근무하면서부터다. 그곳에서 2년을 근무하면서 연세대원불교 학생회 지도교무를 했는데 참으로 소중한 인연들을 만났고 기독교 학교에 어렵게 원불교동아리를 등록하고 동아리 방까지 확보하여 신나게 활동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보람을 느꼈다. 그로 인해서인지는 몰라도 그 뒤로 나는 중앙총부에서 교화부 대학생교화 담당교무가 되었다.


그 당시 대학가는 민주화 운동이 극에 달해 아주 혼란스러웠고 원불교대학생연합회도 참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으며, 학내에 있는 종교동아리조차도 학생운동을 같이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원불교 신앙을 열심히 하는 신심이 깊은 교도들조차도 자녀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원불교동아리 활동을 못하게 하는 참으로 난감한 실정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부임하기 전인 원기 72(1987)년에는 교정원 교화부의 대학생교화 담임교무가 세 분이나 바뀌게 되었고 나는 부임하면서 대학생교화에 대한 업무 인수인계조차도 제대로 받지 못하였고 대학생교화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안내조차도 받지 못했다. 그야말로 그 당시 교단에서는 대학생교화를 거의 방치해놓은 상황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 나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바로 원대연 강대훈 10대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이었다. 문화회관 3층 골방에서 환영식도 없이 만나 다짜고짜 원대연이 설립된 지 10주년이 되었으니 7월에는 10주년 기념대회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원대연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지금까지도 비록 근무처는 다르지만 한결 같이 계속 되고 있다.


나는 오로지 열정 하나로 뛰어들어 바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대학생교화의 현황을 파악하고 그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뿐이었다. 현황을 파악한다고 하루에 버스를 춘천에서 시작하여 대구를 거쳐 청주까지 스물 한 시간을 탄 적도 있다. 또한, 지도자수련회와 운영위원회를 거쳐 준비한 끝에 영산에서 10주년 기념대회를 무사히 마치고, 8월에 있는 민족화해를 위한 청년학도 국토순례대행진 및 8.15 남북학생회담 참가, 정기총회 및 심포지엄, 그 이듬해부터 계속된 대학선방, 보은수련회, 농촌활동, 영광핵발전소 11·12호기 건설반대운동, 전대협출범식, 교구연합회 결성및 행사, 단위 교우회 결성 및 봉불식, 그리고 각 대학의 축제행사에 빠짐없이 다니면서 함께 했던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특히, 단위 교우회 동아리 봉불식 때는 대형 활불액자를 손수 들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찾아간 힘든 기억도 새롭고 원대연보가 발행되었을 때 당시 교화부 차장이 원불교적인 내용이 별로 없다며 책상바닥에 내던져 버린 장면, 또한, 대불련과 카톨릭학생회, 기독학생회와 더불어 전대협 산하 종교학생협의회 이름으로 문익환 목사 방북을 지지한다는 성명서 낸 것을 교정원 우체통에 일일이 한 장씩 집어 넣었다가 당시 교정원장께 불려가서 “원불교가 네 개인 것이냐?”며 “누구 맘대로 원불교를 그곳에 집어넣었냐”며 혼난 기억, 교정원 전체 회의 때 방사능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으며 손에 잡히지도 않는 진리와 같은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아주 위험한 것이니 교단적으로 대책위원회를 꾸려야 한다고 힘을 주어 역설한 일, 돈이 없어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컴퓨터를 구입해서 '활불'지(活佛誌) 6, 7, 8호와 원불교대학생교우회 운영의 이론과 실제 교재를 직접 편집하여 낸 일 등 일일이 언급할 수 없는 참으로 수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원대연 창립 40주년을 맞이하면서 내가 대학생 교화 담임교무로서 혼신을 다해 대학생들과 함께 한 5년이 과연 원대연과 교단 발전에 얼마나 기여를 했는가 생각해보면 아직도 아쉬운 점이 많고 부끄러운 점도 많다. 내가 만약 지금까지 계속 대학생교화를 해왔다면 오늘날 대학생교화가 어찌되었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보면서 앞으로 대학생교화를 위해 평생을 신명을 다하는 후배교무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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