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이 간다 | 우독(愚禿)과 석두(石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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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이 간다 | 우독(愚禿)과 석두(石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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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06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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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교사」, 제1편 개벽의 여명, 제1장 동방의 새불토, 4. 선지자의 자취 장(章)에는 “한반도에서, 금강산이 법기 도량(法起道場)으로, 이 나라가 불국 연토(佛國緣土)로 믿어져 온 것은, 미륵불을 기다리는 신앙 행사가 다른 어느 지역에서보다 성행하였던 사실과 더불어 주목할 일이다. 이는 실로 이 땅 불문의 선지자들이 한반도가 장차 새 불토로 될 것을 예견하고, 민중의 마음속에 그 믿음을 뿌리 깊이 심어 준 것이다. 그 후, 한반도에는 유명무명의 많은 선지자들이, 혹은 비결로, 혹은 도참(圖讖)으로, 혹은 가요로, 미래의 조선이 세계가 우러르는 거룩한 국토로 된다는 신념을 더욱 고취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국운이 꺼져버리고 일제에 의해 온갖 수모를 당하던 시대임에도 수운 최제우, 해월 최시형, 증산 강일순, 일부 김항, 홍암 나철 등 밤하늘의 별과 같은 성자들이 출현해 이 땅의 하늘을 수놓았으며, 그 정점에는 소태산 대종사라는 북극성이 한반도의 하늘 위에 우뚝 솟아 찬란한 빛을 뿌린 역설적 영광의 시기였다.


특히 소태산 대종사는 대각(大覺)을 통한 독자적인 사상의 기틀 위에, 불법(佛法)을 연원해 조선이라는 역사 · 문화적인 울을 품어 안은 채, 인류보편적 가치를 함께 공유하는 회통의 새로운 불법(불교)을 제창하기에 이른다.

품어 안고서 뛰어넘는다는 개념을 '포월(包越)'의 종교운동은 이웃 일본의 가마쿠라 신불교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는 지금의 도쿄의 서남부에 있는 해안지역 가마쿠라(鎌倉)에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가 군사적 지배기구인 막부를 세웠던 1192년부터 호조 다카토키(北條高時)가 멸망하기 까지의 약 150년간에 새롭게 등장한 불교 운동으로 일본 불교가 새롭게 거듭나는 시기였다.

가마쿠라 신불교는 왕족이나 귀족을 위한 특정계급의 학문종교에서 좌선·염불의 실천과 수행 중심의 불교로 변화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중국이나 한국의 불교와는 완전히 다른 독창적인 불교가 태어나게 되는데 이 가운데 가장 먼저 탄생한 신불교 종파는 정토종으로 개조(開祖)인 호넨(法然, 1133~1212)은 1175년에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면 아미타불의 원력(願力)에 의해 남녀노소 유무식을 막론하고 누구나 서방의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는 '전수염불(專修念佛)'사상을 설파한다.

이를 이어받아 그의 제자인 신란(親鸞)은 스승의 사상을 더욱 간결하게 계승 발전해 현재 일본불교 최대의 종파인 '정토(淨土眞宗)'을 세우게 된다. 이는 비록 원불교가 추구하는 '자성극락 자심미타'의 염불과는 다른 성격이지만 희망을 잃어버린 당대 민중들의 엄청난 환영을 받았고, 반면에 기성 기득권 세력의 강력한 비판을 받게 된다.


이번 기행의 주인공인 신란(親鸞)은 헤이안 시대 말기 겐지(源氏)와 헤이시(平氏)의 치열한 전쟁이 한창이던 1173년(承安3) 4월 1일 교토의 히노사토(日野里, 현재의 교토시 후시미쿠 히노)에서 태어났다. 그는 기성 불교의 승려로 출가하여 수도하던 중 관세음보살의 계시를 받고 호넨을 찾게되어 제자가 된다. 그러나 전수염불 사상을 극력 반대하던 기존 불교도와 그들과 결탁한 정치권의 탄압으로 현재의 니가타현인 에치고로 유배된다.

이곳에서 그는 비승비속(非僧非俗) 즉 '승려도 속인도 아니라'는 입장이 확립한다. 재가와 출가의 구분을 뛰어넘는 이러한 사상적 맥락은 신란 사상의 중요한 특징으로 꼽힌다. 에신니와의 결혼 후 가정을 가진 채 염불 수행에 매진하며 그는 스스로를 '우독(愚禿, 어리석은 대머리)'이라고 부르게 된다.

이는 마치 소태산 대종사가 「조선불교혁신론」을 통해 기성 불교를 비판하고 재가 · 출가의 차별을 뛰어넘는 새로운 불교 운동을 구상하던 것과 봉래제법 시기에 변산에 주석(駐錫)하던 시절 스스로를 '석두(石頭)거사'라고 칭했던 것과 유사하다.


우독과 석두, 이 두 사람을 만나기 위해 필자는 늦가을 비가 촉촉이 내리는 교토(京都)로 향했다.

(다음 호에 계속)

# 사진설명
1. 교토 지온인(知恩院)에 세워진 호넨의 상(像)
2. 교토 오타니혼뵤(大谷本廟)에 세워진 신란의 상(像)
3. 교토 니시혼간지(西本願寺) 아미타불을 모신 아미다도(阿彌陀堂)
4. 교토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 신란을 모신 어영당(御影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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