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이 간다 | 선인(善人)도 성불하는데 하물며 악인(惡人)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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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이 간다 | 선인(善人)도 성불하는데 하물며 악인(惡人)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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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16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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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제자 교칙(敎則)에 크게 어그러진 바 있어 대중이 추방 하기로 공사를 하는지라,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 차마 이러한 공사를 하느냐. 그는 나의 뜻이 아니로다. 나는 몇만 명 제자만이 나의 사람이 아니요, 몇만 평 시설만이 나의 도량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이 다 나의 사람이요, 온 세계 시설이 다 나의 도량이니, 나를 따르던 사람으로 제가 나를 버리고는 갈지언정 내가 먼저 저를 버리지는 아니하리라” 하시고, 그 제자를 직접 부르시사 혹은 엄히 꾸짖기도 하시고 혹은 타이르기도 하시어 마침내 개과천선(改過遷善)의 길을 얻게 하여 주시니라. <대종경 실시품 6장>

이 법문은 필자가 대종사님의 '내가 먼저 저를 버리지는 아니하리라'는 말씀에 큰 위로와 용기를 얻어, 간혹 경계에 끌려 퇴굴심이 나거나 신심이 가라앉을 때마다 되새기는 말씀이다.

“파리가 제 힘으로는 천리를 갈 수 없으나 천리마의 몸에 붙으면 부지중에 천리를 갈 수도 있다”는 천도품 31장의 말씀과 더불어 아직은 완전한 자력을 얻지 못한 공부인들이 자신할만한 법신불의 위력에 귀의할 때 얻어지는 든든함을 느끼게 한다.


원불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의 고유한 역할 가운데 하나는 실존적 위기에 처한 인간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지지를 주는것이다. 신란 역시 아미타불에 대한 절대적인 귀의(歸依= 南無阿彌陀佛)를 통해 악인들 또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자신만의 독특한 사상을 펼친다.

이는 신란의 제자 유이엔(唯圓)이 스승의 가르침을 정리한 책인 <탄이초(歎異抄)>에 나타나는 '악인정기(惡人正機)설'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 사상을 한 문장으로 풀어 말한다면 “선인(善人)도 극락(極樂)에 왕생하는데 하물며 악인(惡人)이 왕생 할 수 없겠는가?”라고 할 수 있다. 선인만이 극락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사람이야말로 아미타불의 제도를 받기에 적합한 근기라는 뜻이다. 이 역설을 언뜻 쉽게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두 사람이 물에 빠졌다고 하자.


한 사람은 수영에 능통한 사람이고, 다른 이는 수영은 고사하고 물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구조대가 누구를 먼저 구조할 것인가? 수영을 잘하는 사람은 자력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을 먼저 건져주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여기서 헤엄쳐 빠져나오는 사람이 자력을 갖춘 선인이라면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악도에 빠진 하근기의 사람이 될 것이다. 아미타불은 이러한 악인을 먼저 건져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바로 '악인정기' 사상의 핵심이다.


무쇠 덩어리와 같은 죄업을 지닌 중생을 바다 한 가운데 빠뜨린다면 결국 그 무게를 못 이기고 가라앉을 것이지만, 부처님의 반야용선(般若龍船)에 태운다면 고통의 바다를 무사히 건너서 서방정토에 다다를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 신란의 태도이다.


자신의 악업에 대한 철저한 자각과 참회의 발로(發露)가 있은 후에야 법신불의 위력을 입어 진급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 이보다 더 든든하고 빠른 성불의 길이 있을 수 있을까?

≫사진설명
부지런히 걸어 교토의 상징인 기요미즈테라(淸水寺) 인근에 위치한 신란의 묘소인 오타니혼뵤(大谷本廟)에 도착했다. 마침 저녁예불 시간인 듯 비승비속(非僧非俗)의 머리를 기른 진종(眞宗) 스님의 독경소리가 경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합장한 채 눈을 감고 나지막하게 '나무아미타불'을 염했다. 서방을 향해 십만 억 불국토를 가지 않더라도 지금 이 자리에'자심미타 자성극락(自心彌陀自性極樂)'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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