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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 오피니언 | 꿈같은 만남에 바치는 노래 _ 화해제우100주년에

by 관리자 posted Nov 2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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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목 김형수 작가(소태산평전 저자)

한울안오피니언(김형수).jpg

 

  1. 마을마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밤마다 산과 강이 울어대는, 새와 나무 조차 까무룩 정신을 잃는, 난세라 했다. 하늘이 뒤집히고, 땅이 말라가고, 희미한 별빛도 꺼져가고 있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인륜은 존엄하고 가치관은 지엄했던 선비의 나라가 온 데 간 데 없었다.


  국호 조선의 이름으로 500년 동안 누려온 문화와 관습들을 어미아비 모를 문물이 마구 짓밟는 시대. 보다 못한 백성들이 대나무를 깎아들고 막아섰지만, 척양척왜 척양척왜… 외치다 선 자리에서 그대로 무덤으로 변했다.


  2. 경상도 성주 소년 송도군은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지난 밤 꿈속에 얼마나 많은 꽃들이 졌는지 몰라. 동양문명 오천년의 지혜가 담긴, 그 찬란한 시(詩) 사(史) 철(哲)이 우수수 낙화하는 걸 보았다. 시인의 나라 조선에서 그토록 무참히 시가 사라졌다는 것은 실로 위독한 증상이라. 만생명이 병들었다는 뜻이지. 혼몽 중에 들려온 풍문 하나. 하늘과 땅, 별과 풀이 위치할 자리를 고치는 천지공사를 한다더라. 그래, 집을 나서자. 물가에 사는 미물도 홍수가 날 것 같으면 산기슭으로 피난을 가나니. 하지만 수운도 증산도 떠난 뒤였다.


  도꾼들의 고장 전라도는 구도적 혈투의 각축장인가. 상제님이 없는 자리에 나타난 새로운 천자들, 무너져가는 세상 끝자락을 붙들고 정체 모를 득도의 신비를 알리는 거사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세상은 넓고 우주는 광활하며 천지는 험하나 가고 또 가다보면 필시 닿을 터였다. 정읍에서 징게 맹게 외에밋들 일대, 전주 모악산까지 방랑이 이어졌다.


  3. 도탄에 빠진 중생을 건지겠노라. 외롭고 무모하며 정체를 알 수 없는 구도행도 마침내 끝이 있나니. 폐인에 이르는 고행 끝에 일원 대각을 얻은 성자 박처화는 영산에서 방언공사를 시작했다. ‘호남공중하처운 천하강산제일루(湖南空中何處云天下江山第一樓)’


  가장 핍박 받고 가장 고통 받는 자리가 세상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여. 제자들 속에서 기둥이 될 재목을 추려 자리를 정해주니, 해 지는 저녁바다에 떠 있는 섬들 같았다. 법성 포구가 부처가 들어온 자리라. 필시 그 장면을 보았을 일곱 개의 섬 이름을 따서 일산 이산 삼산 사산 오산 육산 칠산 팔산…. 아무도 이것이 시방세계를 구제하자는 설계인 줄 몰랐다. 구산은 왜 없는고? 암, 여기 한 개의 도가 있도다. 만 개의 법이 한 곳으로 돌아가는 길. 먼저 깨우친 자가 한솥밥 식구들을 데려갈지니. 나머지 하나하나들도 한솥밥 식구를 또 만들테지. 그 하나하나가 다시 아홉씩을 모아 한솥밥을 만든다면 씨앗 하나가 광야를 덮으리.


  4. 박처화는 기다렸다. 후덕한 상체를 한 번은 앞으로 한 번은 뒤로 흔들 때마다 참깨처럼 쏟아지는 생각. 구산은 좀 먼 데서 오겠지. 우리 일이 동네살림 하듯이 의기투합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녀. 때로는 밤하늘 별들의 운행을 살피기도 했다. 우주의 강 위에 빛 한 점 떨어져 물여울에 퍼지듯이 온 누리 너머까지, 그 너머의 너머, 또 너머의 너머까지 소식이 닿으려면 얼마나 간절해야 할까. 그러다 제자들을 불러 빈자리에 앉을 소년을 데려오라 했다.


  아마 장성역으로 올 것이여. 차에서 내려 두리번거리거든 그냥 데려와. 아니다, 때가 덜 됐는갑다. 그리고 잊었나 싶었는데 어느 날 문득, 가보자, 끙! 일어섰다. 이틀 동안 무장, 고창, 흥덕을 거쳐 닿은 곳이 정읍 화해마을이라 했다. 동네 앞 냇가에서 새터 마을을 바라보다 스승이 입을 열었다. 저 집 가서 얼굴 해사한 청년을 데리고 올랑가? 해놓고는 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성큼성큼 걸어가 마당귀에 닿자 열아홉 살 홍안이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숙겁다생에 기약한바 컸었니라.


  5. 길룡리는 날마다 얘기꽃을 피웠다. 구도의 길을 가는 도꾼들이 겪는 파란만장의 한 견본이었을까? 그가 토굴에서 나올 때마다 구간도실은 아연 활기를 띠었다. 어떤 사물이나 광경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이 탄생해야 사람의 입이 열리나니. 성주 소년 송도군의 등장은 10인1단 조직의 완성이요, 길룡리에 가해진 문화충격이었다. 송도군은 다른 여덟과 문화가 다르고 말투가 다르며 나이가 달랐다. 김성섭과 무려 스물한 살 차이가났다.


  또한 여덟 제자의 결속이 모두 속세에서 맺어졌으나 그만은 법연으로 시작되었으니, 더 이상 동네 유지 모임 같을 수 없게 되었다. 경상도 사투리의 출현으로 제자들은 항용 공유하던 세상의 실체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송도군은 밤마다 천정에 있는 구간도실 상량시 아래 머리를 조아리며 신비한 만남에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허, 솔은 일만 나무의 남은 봄을 거두어 서 있고, 개울물은 일천 봉우리의 가랑비를 합하여 소리치며 흐른다. 스승이여. 어릴 때 제 꿈에 나타났었나이다.


  # 송도군(정산 송규)은 가장 어린 사람이었지만 새로운 교화단에 영향을 크게 미쳤다. 조선적 교양의 척도인 유학자의 눈을 가져왔으니 불태워버린 『법의대전』이야기가 다시 나오고, 강증산 문하를 거쳐 왔으니 당대 도꾼들의 수준을 아는 척도가 만들어졌으며, 경상도 사투리가 추가되어 호남의 바깥을 내다보는 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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