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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만나는 한국 토착 사상 기행 - 28 | 천지은 교도 (원불교출판사 편집장, 남중교당)

낡은 사상으로는 새 세상을 만들 수 없다

by 관리자 posted Jan 0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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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정상에 어미가 아이를 안고 있는 듯한 바위가 있어, 이름이 모악(母岳)인 산 아래에 저수지가 하나 있다. 금평저수지인데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와 청도리에 걸쳐 있으며 1961년에 축조되었다. 모악산 근처의 여러 골짜기에서 흘러나온 물을 모았다가 김제의 너른들로 농업용수를 보내고 있다. 원래 저수지가 축조되기 전 이곳은 자연 마을이었다. 그 마을은 지금 물에 잠겨 있다.


  증산은 민중과 중생이 자기의 고향인 본디 생명을 찾아 돌아가는 ‘원시반본(原始返本)’의 사상을 이 마을에서 궁구했다. 그의 사상적 행로를 더듬어 가며 사진을 찍다 보니 ‘구릿골’은 증산 사상에 있어서 출발지로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 골짜기로부터 후천개벽의 물줄기는 치유와 민중적 삶의 회복 형태로 흘러나갔다. 이를 증산은 다른 말로‘의통제세(醫統濟世)’라고 했다.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의술, 인술에 의해서 세상을 구하고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회복시키는 것, 바로 이것이 진정한 후천개벽의 방편이고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한 사람 한 사람의 질병만을 치유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회, 국가, 세계의 문명사적 질병과 제도적 삶의 질병까지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


  증산은 고향 전라도를 벗어나 충청도, 경기도, 황해도, 평안도를 둘러 함경도, 강원도, 경상도를 거쳐 모악산 대원사에서 깨달음을 얻은 뒤에 구릿골로 왔다. 주유천하를 하는 동안 일부 김항에게서 정역(正易)의 원리를 배우고 인간의 마음이 하늘까지 바꿀 수 있는 시대가 됐음을 알았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정면으로 마주 보는 방식을 익혔다. 세상을 이루는 복잡한 원리를 읽어 낼 줄 알았고 마음의 갈피를 뒤져 필요한 지혜를 찾아내는 법을 터득했다. 이때부터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신비로운 인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보여준 이적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3년 동안 전국을 돌며 증산은 자신이 걸어야 할 운명의 길을 모색했다. 결국 낡은 것으로는 새 세상을 맞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 세상은 세상을 구해야 온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오직 시대의 운명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몰두한 증산은 부귀나 권세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교세를 불리는 일에 힘을 쓰지 않았고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문제를 그 자리에서 해결해 주었다. 집안을 돌보는 평범한 삶을 살아달라는 아내의 당부를 오히려 나무랐다.


  “천하를 위하려 하오. 천지를 바로잡고 세계의 창생을 건지려는 나에게 집에 머물라 권하오?”


  증산의 뜻은 분명했다. 그 첫째가 우주의 일심(一心)을 깨달으라는 사상이요, 다음은 오해와 갈등과 투쟁에서 빚어진 원한을 해체하라는 해원(解寃)사상이다. 원한을 풀어야 상생과 보은이 뒤따르기 때문이었다.


  대각일심(大覺一心)에 바탕을 둔 증산 사상의 해원·상생·보은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내려온 모든 성인의 가르침을 충실히 이행하면 그것이 그대로 증산사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금평저수지에 잠긴 옛 마을처럼 증산의 사상들도 어딘가에 잠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 사진 설명 : 금평저수지(일명 오리알 터)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 금산사로 가는 모악산 입구, 증산법종교의 정문 앞에 있는 농업관개용 저수지로 1961년에 완성되었다.
  원래 이곳은 ‘오리알 터’라는 자연마을이 있었던 곳으로 신라 말엽도선대사가 장차 오리가 알을 낳는 곳이 되리라는 예언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반면에 ‘올(來)터’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륵이 ‘올 터’라는 뜻에서 증산교에서는 중시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