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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만나는 한국 토착 사상 기행 - 16 | 천지은 교도 (원불교출판사 편집장, 남중교당)

지식을 구하지 말고 나를 닦으라!

by 관리자 posted Jul 2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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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아올 테면 찾아와 봐’라는 얄궂은 속셈처럼 도무지 나타날것 같지 않던 적멸굴은 천성산을 한 시간쯤 올랐을 때 느닷없이 형체를 드러냈다. 그야말로 단박에 깨달음에 이르는 ‘돈오’의 경지처럼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났다.


  빽빽한 대나무 숲 사이에 숨어 있어서 밖으로부터는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언뜻 드러내지 않았지만, ‘원효대사 수도처’라는 안내표식이 박힌 동굴입구는 호랑이가 포효하는 듯한 입의 형상이고, 동굴 내부는 꽤 품이 넓은 공간으로 석간수가 고인 작은 물웅덩이가 있었다. 수운은 여기에서 단을 쌓고 49일 동안 기도했다. 기도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기록에 없으니 짐작조차도 할 수 없다.


  앞서 수운은 을묘년 3월 울산 여시바윗골에서 비몽사몽간에 금강산 유점사에서 왔다고 하는 한 노 선사로부터 책 한 권을 전해 받았다. 이를 동학에서는 을묘천서(乙卯天書)라 한다. 그 책의 요지에 대해 학자들의 주장은 ‘기도를 하라’는 내용이었을 거라고 한다.


  을묘년의 이러한 체험은 무엇보다도 수운이 종래의 책을 읽거나 세상을 떠도는 방식을 청산하고, ‘기도’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구행의 방법을 전환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 을묘천서 이전에는 대체로 외부에 있는 어떤 대상이나 문장을 통해서 구도를 하려고 했다면, 을묘천서 이후에는 비로소 자신의 내부는 물론이고 우주의 본질과 직접 대면하는 방식으로 구도의 방향을 전환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그 출발이 바로 적멸굴인 것이다.


  그리고 수운의 천성산 적멸굴 49일 기도 이후, 동학에서는 49일 수련 또는 49일 기도가 독특한 수련 방법으로 정착해 온다. 그렇다면 수운은 이곳에서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얻었을까?


  사실 이때까지 수운은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가업을 일으킨 일도 없고, 도를 얻지도 못했고, 뜻을 이루지도 못한 채로 굶주림과 홀대와 괄시 속에서 이것 저것 하는 일마다 모두 어그러져 되는 일은 하나도 없고 가까운 사람도 없이 이 세상을 굴러다니다가 고향에 돌아왔던 것이다.


  어쩌면 수운의 이러한 처지는 당시 민중들의 일반적인 모습과 그대로 대응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새로운 깨우침, 세상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에 이르는 조건이 된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수운은 적멸굴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즉 깨달음은 지적인 인식이 아니라 지식을 쌓아 올린 인식에서 생과 사, 우주의 변화를 단박에 깨우치는 돈오이다. 돈오는 어느 순간 문득 단박에 온다. 하지만 돈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실패와 방황이 적공으로 쌓이지 않았다면, 돈오는 결코 오지 않는다. 따라서 수운에게 적멸굴에서의 기도수행은 깨달음이라는 완전한 경지에 이르게 하기 보다는 끊임 없이 자연, 우주의 본질과 소통하고자 하는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통해 욕망을 조절하고 부조리한 현실에서 최선의 지혜를 발휘할 수 있는 ‘삶의 기술’을 터득하는 과정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 사진 설명 : 천성산 적멸굴 - 1856년 4월 최제우의 나이 33세. 양산 천성산(千聖山) 내원암(內院庵)에 들어가 49일간 기도를 시작했다. 이 기도는 숙부(최섭)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47일 만에 중단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1857년 6월에 수운은 적멸굴(寂滅窟)로 갔다. 적멸굴은 내원암 조금 아래쪽 계곡을 건너 북쪽 능선을 따라 거의 정상 부근까지 올라간 곳에 자그마한 대나무숲속에 자리 잡은 자연 동굴이다. 원효대사가 기도를 했던 수행처로 알려져 있다. 동굴 입구는 호랑이가 포효하는 듯한 입의 형상이고 안에는 석간수가 고인 작은 물웅덩이가 있다. 수운은 여기에서 단을 쌓고 49일 동안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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