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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길, 이정표 없이 가는 길

by 관리자 posted Jul 0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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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부터 달려 도착한 천성산은 약간 오르막이긴 하지만 벅차지 않게 걸어 볼 만했다. 키 큰 나무들이 만들어 주는 그늘 덕분에 길은 적당히 시원했고 노닥노닥 걷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는데 갑자기 일행 중 한 명이 ‘아무래도 이 산이 아닌 것 같아’라며 가던 걸음을 멈춰 섰다. 앞 사람만 철석같이 믿고 따라온 나로서는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전라도에서 경상도로 건너오는 동안 우리는 내비게이션에 의존해서 어렵지 않게 왔다. 내비게이션이 없을 때 우리는, 지도를 들고 길을 찾았다. 지도를 들고 길을 찾을 때 우리는 길의 주인이었지만, 지금은 내비게이션이 길의 주인인 것 같다. 내비게이션에서 길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당황할 뿐이었다. 그러나 순전히 지도와 감각을 바탕으로 찾아가야 하는 천성산 적멸굴 앞에서 내비게이션은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생각하는 것’을 피로한 일로 여기게 되었다. 즉흥적이고 단편적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 어떤 것을 물고 늘어지질 못한다. 이번 적멸굴을 찾는 답사도 어쩌면 그런 생각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이제껏 오른 길을 되돌아서 내려와 일단 천성산 내원암에서 다시 길을 묻기로 했다. 때마침 마주친 비구니 스님에게 정중하게 합장부터 올리고 “혹시 동학의 교조 수운 최제우 선생님이 기도를 올린 적멸굴을 아시냐”고 여쭈었다. 그런데 이 스님의 반응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운이 누구인지, 근처 적멸굴에 대해서는 도통 들어본 적이 없다는 표정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스님은 우리에게 잠시 기다리라면서 안채로 들어가 몇몇 동료 스님에게 물어보고 오는 성의를 표했다. 천성산 내원암은 수운이 적멸굴 기도에 앞서 47일간 기도를 올린 곳이기에 근동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잠시 후 돌아온 스님의 답변은 주변에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기야 이 산에 기도하러 온 중생이 어디 수운 한명뿐이겠는가. 애써 웃으며 “네, 고맙습니다”하고 물러섰다.


  결국 우리는 천성산 입구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적멸굴 가는 길을 다시 물었다. 적멸굴은 반대편 산 중턱에 있다는 복잡한 설명을 들어야 했다. 간단하게 ‘적멸굴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만 있으면 되는 것을... 원효와 수운의 적멸굴은 후세 사람들의 기억에서 적멸된 채로 천성산 어딘가에 오늘날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앞으로 우리 인류는 종교를 찾을 때, 그 시설이나 장엄을 중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종교 내면의 힘 즉 영성(靈性)의 빛을 찾아 나설 것이라 확신하지만 길 위에서 길을 잃고 보니, 길을 알려주는 자그마한 이정표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 사진 설명 : 적멸굴 가는 길 - 동학 교조 수운의 구도와 득도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전해지는 경상도 양산 천성산 적멸굴을 가는 길에는 제대로 된 표식 하나 없고, 드문드문 등산객이 묶어 놓은 노랑 리본만이 그 길을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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