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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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감상
  • 전지만
  • 승인 2001.04.2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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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하고 또 하면 언젠가는


고경자 교도


중학교 2학년때인 원기40년부터 원불교에 다니기 시작해서 원기42년에 입교를 했으니까 45년간 원불교의 물을 먹고 산 셈입니다. 제가 마신 물로 콩나물을 길렀대도 수백 동이는 되었을 것이고, 산야를 헤매고 다니는 야생동물을 길들였대도 지금쯤은 조련사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저 자신을 돌아보면 정말 부끄러워서 어떻게 여러분 앞에 설 수 있겠는가 망설여 졌지만 교무님께서 감상담은 주세불이신 대종사님께서 내놓으신 공부법이라 말씀하시니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되겠다 싶어서 이 자리에 올라왔습니다.일요일에 법문을 받들고 난 후 돌아서면 모르겠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도 모두 잊어버려 생각이 나지 않지만 교무님의 법문 말씀을 듣고 있는 그 순간만은 진리가 마치 내 손안에 잡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했습니다. 원불교 교리를 이렇게 잡힐 듯이 풀어주시고 깊이 있게 깨우쳐 주시니 한 말씀이라도 놓칠세라 정신을 차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고 일요일 법회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변화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이 때에 공부하지 않으면 내가 어찌 이 생에서 원불교가 지향하는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으랴 싶어 교무님 말씀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각오로 감상담도 발표하기로 맘먹었던 것입니다.
저의 머리 속에는 원불교 교리도가 전부 들어있어요. 삼학팔조, 사은사요, 사대강령 등 무시선 무처선의 공부법과 사사불공 처처불상의 불공법 등 모두가요. 하지만 나의 실제 모습은?그 완벽한 수행의 요체, 일상수행의 요법을 일상에서 어느 정도 실천하고 있는 지에 생각이 미치면 그저 부끄러워울 뿐입니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까 저에게 서원(誓願)이 빠져 있었더라고요.
얼마 전, 유린복지회관의 창립자이신 현 원불교여성회 한지성 회장 아버님의 좌우명(座右銘)이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이었다는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지금 대학에 다니고 있는 우리 아들 생각이 나서 웃었어요. 우리 애가 고등학교 때 공부 좀 하라고 이르면, 나가곤 해요. 그래 야단을 치니까 우리 아들이 하는 말이 ‘덕불고 필유인, 덕(德)이 있으면 항상 외롭지 않고 이웃이 있게 마련 아닙니까? 덕있는 저를 애들이 불러내는데 어떻게 해야할까요?’ 하는 거예요. 이렇게 같은 말을 갖고도 어떤 이는 후세에 길이 남겨질 복지시설의 씨를 뿌렸고 또 훌륭한 자손들을 길러냈는데 우리 아들은 노는 핑계로 삼았더라고요. 아무리 좋은 교리(敎理)도 내 서원(誓願)이 있지 않고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깨달음이 있었어요.
저는 그 동안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라는 말을 되뇌고 되뇌고 하면서 살아도 보았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스스로를 타이르며 타이르며도 살았으며, ‘예쁘고 밉고 내 마음 아닙니다. 좋고 나쁘고 내 마음 아닙니다’라고 속으로 소리쳐 외치면서 살아도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이룬 것이 없습니다. 퇴굴심이 나려고 하는 거예요. ‘나는 안되는 사람이야’라고. 그런데 이번 우리 교당에 새로 오신 교무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새삼스럽게 눈이 반짝 트이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원불교 교도로 부끄럽지않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이라도 해 보아야겠다는 맘이 우러나서 스스로 공부해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다짐을 여러분 앞에서 밝히면 좀더 좋은 효과가 있지 않을까 싶어 감상담 발표를 자청(自請)했던 거예요.
이제부터 저는 대종사님의 그 많은 가르침 다 놓고(무거우니까) 단 한가지만이라도 체(體)잡고 살아 볼 결심입니다. 함께 물리학을 공부해도 누구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 평범한 물리학도에 그치고 마는가하면 누구는 물리학박사도 되고 또는 노벨물리학상을 타기도 하지 않습니까? 하다 못 할망정 이생에서의 생(生)을 다 마칠 때까지 한가지 만이라도 체잡고 노력해 보겠습니다. 수많은 가르침이 하나 자리를 찾아가는 데는 모두 통하는 것이구나라고 어렴풋하게나마 알게된 지금 저는 지은보은(知恩報恩)을 체 잡으렵니다. 나를 있게 해주고 살려주고 보살펴주고 도와주는 모든 대상(對象)의 은혜를 알고, 나아가 은혜를 인정할 수 없는 대상에게서도 은혜를 발견하며. 오히려 나에게 해를 끼친 대상, 원수라고 생각되는 대상에게서도 은혜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하고 노력하겠습니다. 원불교에서 가르치는 지은’ 아니겠어요? 그리하여 항상 보은하는 자세로 살아보겠습니다.‘법신불사은이시여! 저에게 보은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겠습니다.‘여유로운 맘을 놓지않고 항상 깊이 생각하여 온전한 마음을 여의지 않게 해 주시어 저의 모든 행동과 말과 뜻이 보은행(報恩行)을 하는 데 걸림이 되지않도록 채찍질 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3주전 다른 교도님의 감상담을 듣고 난 후 나는 무슨 말을 할까하고 생각해 본 것이에요. 그리고 교무님께 다음 감상담은 제가 발표하겠다고 말씀드렸었어요. 그런데, 지난 3주(週), 그 3주동안의 제 생활을 지금 되돌아 봅니다. 기가 막혀요. 은혜를 찾기는 커녕, 보은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탐진치에 묶여있는 자신을 이웃에 드러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몸살을 앓았습니다. 정신을 앓으면 실제로 몸도 아파오는 것 같지않아요? 아직까지도 기침을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많이 도와주세요
<4월15일 법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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