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대비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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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대비의 가르침
  • 한울안신문
  • 승인 2001.10.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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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회 김재성 회장


그릇이 작아 조금 밖에 수용하지 못한 알량한 저에게 가르침을 주신 스승님은 많으셨으나 내 것이 되어 지켜지고 있음이 적어, 지금의 재성이 밖에 되어있지 못함이 부끄럽습니다. 자신의 문제의식이 적고 안일한 생활을 해왔으며 가르침을 얻고자 하는 정성이 부족하였던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인연과 역경은 자신을 더욱 진급시키는 값진 촉진제가 되었음에 이제는 소중한 인연이 되어 감사 드립니다. 안에서 갈구함이 있고 때맞게 어미 닭이 계란을 쪼아 주어 병아리가 깨어나듯이 나에게 무수한 가르침은 많았으나 자신의 그릇 크기에 한정되니, 그릇을 키워 감을 이생의 과제로 삼고 정성을 다할 것을 스승님께 다짐하며, 배움의 근본이 되었던 가르침을 생각해봅니다.

이용하는 법만 알면
원기45년 내가 15세 때 부산교당에서 원광의 전신 잡지, 회보묶음에서(아직 교전이 발간되기 전) 읽은 대종사님의 말씀(인과품 35장)은 오늘날까지 나를 꼼짝 못하게 붙들어 놓은 가르침이다. ‘이용하는 법만 알면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이것은 자신감 없고 보잘것없는 중생에게는 무한한 큰 축복이요, 커다란 구원의 가르침이요, 미혹의 세계에서 탈출할 수 있는 든든한 동아줄이 되었다.
원기47년 고3 여름방학에 서원으로 가득한 익산 총부 학생강습에서 ‘정산종사님의 주인정신’에 대한 김정용 교수님의 강의는 내생의 목표를 정하는 나침반이 되었다.

세세상의 주인
‘마음 공부 잘 하여서 새 세상의 주인 되라’는 조가만 부르며 별 의미를 못 느꼈는데,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되고 공동체의 주인이 되어 국가사회에 까지도 자기 집 자기 가족으로 삼고 보면 세계인류가 한가족 한집안 한울안이 된다고 하는 가르치심은 나를 기구에 태워 하늘로 치솟게 한 기분이었다.
총부에서 지낸 일주일간의 학생훈련은 내인생 일대의 혁신을 가져다 주었고 너무나 큰 법열에 그냥 혼자 간직할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로 향산종사님의 지도를 받아 글을 써내어 부산여고의 교지 ‘동백’에 무려 5페이지 분량으로 원불교를 소개하였다.
그때 그 시절 ‘정각정행’이 호리도 틀리지 않는 향산 안이정 종사님의 이사 병행하시는 모습을 뵈오며, 청아한 교역자가 되리라는 생각을 하였었다.

나의 주 대종사
교전 발간으로 정전과 함께 대종경은 너무나 환한 빛이요 길이였고 구절 구절이 내 가슴을 전율케 하였다. 이화여대 입학으로 일주일에 3회씩 봐야하는 예배시간은 더욱 대종사님의 말씀이 거룩하게 비교되어 우리 대종사님을 찬송하며 큰소리로 기독교 찬송가를 불렀다.
‘오! 나의 주 대종사님을 찬양하라!’

고산 이운권 종사님
대학 다니며 서울교당에서 모신 고산 이운권 종사님은 황송하게도 몸소 찾아 가르치심을 주신 스승님이시다. 전무출신 하라는 바램으로 원여상에 추천하였으나 업장이 두터워 전무출신보다 더 교단을 위하는 재가가 되어 보이겠다고 나왔다. 당시 봉공활동 한답시고 고산종사님께 “바자회 물품은 많이 구입해 놓고 안 팔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잠이 안 오고 두통이 난다”고 여쭈었더니 “너 혼자 걱정한다고 잘되는 일이 아니거든 너 할 일에 최선만 다하고 진리 계에 맡겨라. 놓지 못하면 만성 두통 된다”고 염려해 주셨다. 그 후론 공중의 일로 연마는 할지언정 잠 못 잘 정도로 욕심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또 “시중에는 사이비 걸인이 많이 있다고 하니 도와주면 오히려 그들의 부정을 도와 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쭈었더니 “노인이나 장애인은 사심 없이 도와주어라 정직하고 않고는 그들의 취사에 맡겨라” 하신 가르치심에 힘입어 어떤 목적으로 어디를 지원 하더라도 의심 않고 지원하게 되었다. 풍부하신 재치와 기지는 항상 화기 충만 하셨고 붓을 들면 “어디 재성이 닮은 달마나 그려볼까”하시며 딱부리 후(後)달마를 그려주시며 줄 사람을 닮는다고 웃으시더니 이제 퍽 많이 닮아가나 보다.
원기70년 서울교구가 셋으로 나뉘어 하소연하였더니 일체 함구무언하시며 무관사에 동하지 않으시는 가르치심을 보여 주셨다. “이 공부는 언제 가야 토가 떨어질지 아직도 멀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애써 만나러 올려고 하지 마라. 대종사님 법대로 잘살고 있으면 나와 함께 있는 것이다” 하시며 정성도 못 바치는 제자를 걱정하신 은혜는 이제 그 누가 불러 가르쳐 주실까 마는 실천으로 보여주시는 가르침은 확신으로 배우고 교훈으로 쌓인다.

아아 대산 종사님
원기53년 전후하여 금강리에 계시는 대산종법사님을 배알하러 가는 일이 주말 일과였는데 검소하신 의식주생활에 ‘나도 내가 수용하는 것에는 비용을 줄여야겠구나 그래야 빚을 적게 지고 가지’하는 생각을 하였다. 대산 종사님은 낮에는 작업시간을 꼭 실행하시며 나누어 줄 염주도 손수 만드셨고 손수 쓰신 반야심경도 쪽으로 갈라 자바라식 독경집도 만드시고 부지런 딴딴하시는 불보살의 삶을 나투어 주셨다. 71년 가을바자회 보고차 뵈올 때 담주에 대종사님 영정을 처음 넣어 나누어주시며 기뻐하셨다. 영정이 깨끗하지 않아서 대종사님 영정 없는 것 갖겠다고 했는데, 지금은 새 부처님 대종사님과 일원상을 들어 내 보이고 싶어하신 간절한 그때 그 심정을 절감하고 호스피스 환자방문 할 때는 꼭 영정 뫼신 담주를 애용한다.
검소하며 시간을 허송하지 말고 원불교를 알릴 기회는 절대 놓치지 말 것을 실천으로 가르쳐 주신 인자하신 큰 어른 대산 종사님께서는 한번은 종기 속에 탱자가시가 박혀 굉장히 고통스러우셨을 텐데도 오직 부처님의 자비심으로 인자한 미소를 지어 주셨으니, 그 크신 가르침 은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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