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과 안분(安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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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과 안분(安分)
  • 전재만
  • 승인 2002.01.04 0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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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침이면 으레 거실에 앉아 까치 한 쌍을 찾는다. 그들은 헌 까치집 옆에 새집을 짓고 있다. 인간이 새집들을 짓고 있으니까 자기들도 샘이 난 것일까? 그들이 집 짓는데 한 달도 더 걸리는 것 같다. 한번은 다람쥐와 까치 한 쌍이 서로 싸우는지 함께 노는지 한 판의 굿을 벌리고 있었다. 다람쥐가 나무를 타고 올라가면 까치들이 위협하고, 그러면 다람쥐는 다른 나무를 타고 올라가고 또 까치가 모이고…
이 곳으로 온 뒤 정원에 나가 ‘원돌이’를 하고 작은 연못가에 좌선하기를 좋아한다. 분수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와 산새들의 노래 소리 속에 나는 깊은 산 속에 홀로 있는 느낌에 빠지고, 구름을 타고 둥실둥실 떠오르다가 내가 구름과 한 몸이 되는 몽상에 젖기도 한다.
정원의 작은 텃밭에서 갓 캐온 배추 쌈이 싱그러워 맛이 있다. 곧 모진 겨울이 다가온다. 정원에는 소나무 오죽 향나무가 푸름을 겨우 유지하고있다. 내년 봄이 얼른 왔음 좋겠다. 올해 심어놓은 꽃들이 피는 모습을 보고 싶다. 현관 앞의 산수유가 먼저 봄소식을 알리겠지. 이어서 백목련, 자두, 진달래, 자산홍, 백철쭉, 벚꽃이 피고, 가을에는 석류, 백일홍이 뽐내고, 늦가을이 되면 감이 탐스럽게 맺히고, 또 겨울이 변함 없이 오겠지?
그러나 우리 집은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TV도 제대로 잘 나오지 않고, SBS는 아예 보이지 않는다. 도시가스는 아직 꿈도 꾸지 못하고 수돗물도 공급되지 않는다. 우편도 매일 배달되는 것 같지 않다. 무엇보다 쓰레기 수거가 골칫거리다. 음식쓰레기 처리는 내 몫이다. 음식쓰레기는 땅에 묻어 썩혔다가 내년 봄에 정원의 나무에 비료로 쓸 생각이다. 이러한 불편도 자연 속에 묻혀 살다보니 이제 불편을 느끼지 못 한다. 전원생활 하는데는 아무래도 집사람의 일이 많다. 그러나 집사람은 일이 많아도 정신적으로 자연과 하나되는 이 생활에 만족해 하고 있다. 늦가을 낙엽 떨어지는 소리에 고개를 쳐들고, 새들이 찾아오면 눈인사를 하고, 옆집의 개 짖는 소리에 놀란다.
비 오는 어느 날 내게 전화가 왔다. 자기는 지금 비속에 젖어 천상낙(天上樂)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집사람은 법인절(法認節)에 생활의 표본으로 “천상낙”을 뽑았는데 이제 이 공부를 더 할 것이 없게 된 것인가? 우리는 자연 속 안분(安分) 생활이 너무 좋다.



수산 조정제 교도(원남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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