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여생 봉사로...박원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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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여생 봉사로...박원흥
  • 한울안신문
  • 승인 2007.01.2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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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과 겪으며 진리 깨달아


빼곡이 적혀 있는 봉사활동 수첩을 보여주며 “봉사는 받는 것보다 하는 것이 좋다”는 순타원 박원흥 교도. 81세 나이에도 불구하고 서울보은회, 본동2단지복지관, 평화노인복지관, 서울시립요양원 등에서 치매노인 말벗, 목욕봉사 활동으로 일주일 내내 분주하다. “그곳에 가면 나보다 나이가 적은 노인들부터 94세 된 치매노인까지 돌봐줄 사람이 많아요. 갈 때마다 반갑게 맞이하는 그들을 보면 기쁘고 보람 있지요. 노래도 부르고 함께 재미있게 놀다옵니다. 나이가 너무 들어 주변에서 그만 하라고 하지만 새벽4시에 일어나 심고를 모시고 교전사경 한 후 아침을 먹고 평화노인복지관에 가서 운동, 영어, 한문, 일어 공부하고 복지관, 요양원에 가서 봉사 열심히 합니다.”?


# 가족에게 온 두번의 경계 박 교도가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원기37년 김문국 교도 연원으로 입교(초창기 태인교당)한 후 부터다. “30대 때 간난아이 업고 총부로 교당으로 내 집 드나들듯 하며 그저 좋아서 무작정 봉사했습니다. 특히 정산종사님 법설을 듣고 싶어 여러 날 총부에 머무른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봉사상(서울로 이사한 후 서울회관 건축 때 50명 권선상, 2002년 월드컵 서울시 자원봉사상)도 많이 탔지요”라고 자랑한다. 박 교도가 이처럼 일원의 진리를 믿고 열심히 봉사하며 살게 된 계기가 있었다. “젊어서 남편이 위장병을 앓았는데 개구리가 좋다는 소리를 듣고 여름 내내 개구리를 잡아 약으로 먹었지요. 그 후 아이를 낳았는데 개구리 모습을 닮은 기형아였다. ‘개구리 잡아먹어서 개구리가 태어났다’며 교무님께서 인과라 말하더군요. 하루 만에 죽어서 천도재를 지극 정성 올렸더니 다음 해에 달덩이처럼 훤한 딸아이가 태어 낳았지요. 그 아이가 출가하여 교무(송정심 부산 괴정교당)가 되었죠.” 또 “작은 아들이 21세에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그 아이가 5학년 때 무심코 던진 슬리퍼에 참새가 맞아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들이 참새 묘를 만들어 놓고 울면서 ‘이 죄 값을 어떻게 받을까’ 걱정 한 일이 있었는데 홀연히 남의 차에 죽었습니다. 49재를 지내는 동안 참새 모습으로 보여 다시 특별 천도재를 지냈지요. 재 마지막 날 사모관대를 쓰고 잘되어 떠나는 모습이 꿈에 보인 후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두 번의 큰 경계를 통해 남이 지은 죄복을 제가 대신 받아 올 수도 없고, 제가 지은 죄복을 남이 대신 받아 갈 수 없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죠. 그후론 교무님 말씀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르고 대종사님 법대로 살려고 노력했다”는 박 교도.


# 마지막 소원 일원가족 마지막 서원은 일원가족 이루는 것이다. “모든 것을 법대로 하고 수용하면서 살았는데 아직도 부족한지 큰아들 내외와 손녀손자들이 교당에 나오지 않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간난아이 때 업고 총부에 드나들며 정산종사님 뵈었으니 언젠가는 일원회상에 나와 공부 할 것이라 믿으며, 일원가족 이루기 위해 남은여생 교당과 가족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봉사해야죠.” 최은종 교무는 “교당의 큰 어른으로써 법회출석은 (중계동 2시간거리) 기본이며 봉사활동 뿐만 아니라 훈련은 100% 참석, 공부하는데 앞장선다” 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 김해인 기자 kms@ w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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