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오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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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오늘처럼
  • 한울안신문
  • 승인 2010.01.2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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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루하루 기적을 사는 ... 가락교당 신선배 교도



“멍했어요. 그냥 거짓말 같았지요. 그러고 바로 아, 내일도 오늘처럼 씩씩하게 살아야겠구나, 그리고 방사선 주사는 맞지 말아야지, 라고 다짐했어요.”


이미 다 전이되어 손도 댈 수 없는 췌장암 말기, 6개월 남았다는 의사의 말에 신선배 교도(가락교당)는 해오던 대로 살자는 결심을 했다. 50대 중반, 아직 학생인 아이들과 시어머니, 남편의 식사를 손수 차리며 살아오던 어느 날이었다.




# 의사의 6개월 선고, 그러나…


그 후, 그는 똑같이 청소하고 밥상을 차리고, 교당도 꾸준히 다니며, 봉공활동 또한 그만두지 않았다. 힘은 점차 들었지만, 반년이 채 되기도 전에 ‘아, 나는 좀 더 오래 살겠구나’라고 느꼈다. 그렇게 햇수로 4년, 그는 여전히 살아있고, 또한 종종 걸음을 멈추고 숨을 몰아쉬면서도 한시간여를 달려 교당에 온다.


“호스피스 활동을 했던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환자가 누워서 가만히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참 안타까웠거든요.”


시어머니(이무실화, 서울교당)와 남편(이웅진 교도) 밥상도 얼마 전까지 직접 차렸다. 가족들 앞에서도 아파서 누워본 일이란 없었으니, 언젠가 시동생이 “형수님, 다 나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라며 되물을 정도였다. 몇킬로 가는데 너댓번씩 차를 세워야 했을 정도로 통증은 깊어갔지만, 교도들은 평소 그의 부지런하고 공심어린 삶의 궤적을 떠올리며, 역시 그녀다, 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차를 갖고 있어서 봉공현장에 뭘 잘 갖다 날랐어요. 시립노인요양원 가는 거, 한달에 한번 김치 담글 배추, 보은장터 물품, 독거어르신들 반찬, 그리고 무엇보다 교당 교도님들을 태우고 방방곡곡 다녔어요. 차 덕분에 제가 복 지었으니 얼마나 좋아요.”


인터뷰 중에도 차오른 복수 때문에 중간중간 긴 숨을 뱉는 그, 생사문제를 해탈한 듯 편안한 표정이다. ‘원래 좀 낙천적이었던 것 같아요’라며 범인으로는 넘볼 수 없는 여유로움을 보여준 그의 투병은 가락교당 교도 모두를 함께 울고 웃고 기도하게 했다.


“산으로 들로 다니며 민들레며 질경이, 각종 나물하고, 수수·현미·콩 등 하여간 자연적이고 좋은 것이라면 다 교당에 가져다 놓으세요. 어느 날은 교당 와보면 가져갈 짐이 산더미고, 저를 아껴주시는 마음이 또 산더미에요. 그게 이제까지 저를 살게했습니다.”




# 약초 한아름, 마음이 쌓여있네


작년 11월, 아무 것도 넘기지 못해 7킬로가 빠졌던 힘든 시간 뒤에 그는 병원다닐 옷 한 벌 남기지 않고 이생을 정리했다. 병원에서는 한달 남았다고 했다. 안녕카드를 쓰고 장기기증을 서약했다. 인터뷰가 있던 날도 아침에 병원에서 와 법회를 보고 교도들과 애틋한 인사를 나눈 뒤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진통제로 버티고, 견디기 힘든 순간이 잦아진다. 그래도 그는 힘을 내어 오늘을 산다. 또 진리께서 하루하루 기꺼이 내어주는 내일도 그렇게 살아낼 것이다.


“첫 선고를 받고 교도님들과 중국 여행을 갔었어요. 그 다음해에도 살아있어 또 갔지요. 얼마전에는 남편과 동생 내외와 여수엘 다녀왔어요. 남편이 이제는 ‘몸 추스려 둘이서 제주도 갑시다’ 하네요. 둘만 떠난 적이 없거든요. 그니까 제주도 위해서 또 힘내야겠지요?”


민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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