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전만 봤을 뿐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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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만 봤을 뿐인데요~
  • 한울안신문
  • 승인 2010.03.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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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동교당 홍성수 교도의 공부비법



밑줄도 그어져 있다. 부연설명도 적혀있고, 그때그때의 감상과 의문, 알 수 없는 숫자도 있다. 언뜻보면 고3 수험생의 수험서를 방불케 하지만 이건 홍성수 교도의 교전이다. ‘신성한 교전에 낙서?’라고도 할 수 있지만, 홍 교도만이 만들어가는 지도인 것이다.




# 공부의 신


교전을 읽다 다른 책에서 읽었던 부분과 이어지면 부연설명도 써 놓고, 노트에 정리도 해 놓았다. 교전에 적힌 숫자는 다른 노트에 적어 놓은 페이지 숫자로, 교전과 노트를 하나로 연결해 놓은 모양새가 어느 어느 대학에 들어갔다는 수험생의 공부비법을 능가한다.


“퇴직하고, 처음으로 교전을 읽기 시작했는데 재밌더라고요. 소설책 읽듯 연거푸 3번을 읽고 교무님께 자랑했지요. 근데 5번은 읽어야지 읽었다고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다시 5번 도전, 다시 10번 20번. 읽다보니 가만 앉아 있을 수 없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새벽길을 걸었던 선진님들 마음처럼 총부로 달려가 예전 회보도 찾아보며, 선진들의 발자취를 쫓았다. 4시간 동안 영광을 순례했고, 새벽 정관평과 노루목을 걸으면서는 선진들의 삶이 보이는 것 같아 눈물 흘렸다. 눈 감으면 영산성지 법인절 행사가 아직도 아른거린다는 그이다.


“그렇게 책을 읽고, 순례를 하다보니 점점 내가 무슨 공부를 해야겠구나,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겠구나 하는 구상도 생기더군요.”


종법사 취임식 때 뭣 모르고 적은 ‘무아봉공’ 서원과 법인절 행사에 무심코 적은 ‘무아봉공인으로 살겠습니다’란 서원이 생명을 띠고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고, 마음 씻는 공부도 감이 잡혔다.


“지금도 총부에 갈 때마다 책을 가득 채워올라옵니다. 그렇게 모은 여러자료와 책들을 읽고 정리하고… 그러면서 원불교인이 되어가는거지요.”


교전이 필기로 시커멓게 되어 남들은 알아볼 수 없지만, 자신만은 거기서 길 잃을 염려 없다는 홍 교도, 그 기록과 숫자를 따라가다보면 그 옛날 정관평을 이루었던 선진님과 그 지혜들을 마주할 수 있는 큰 들판이 눈 앞에 펼쳐진단다.




# ‘눈을 쓸 때는 이웃집 먼저’


홍 교도의 청소 순서는 희한하다. 세무공무원 일 때도, 퇴직을 한 후 교당 관리를 제2직업으로 알고 행하는 지금도 그의 빗자루 방향은 우리집 먼저가 아닌, 이웃집 입구부터 시작해 우리집 방향으로 향한다.


“내 사무실, 내 교당 먼저 했다가는 이웃집을 치울 기회를 놓칠 수 있으니까요.”


세무서가 옆에 있어 좋은 이유, 교당이 옆에 있어 좋은 이유가 한 가지 정도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청소는 서울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날도 마찬가지였다. 교당 걱정에 한걸음에 달려간 홍 교도는 먼저 빗자루를 들고 다른집 입구까지 쓸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어느새 그 집 주인이 나오고 또다른 집 주인이 나오고…, 그렇게 압구정 한 가운데 빗자루 부대를 이뤄 한없이 내리는 눈을 쓸어냈다.


“우리가 하려 했는데 교당에서 먼저 했네, 이것이 우리가 이웃에게 들어야 할 첫 문장이라고 생각해요.”


우선 주는 것, 생활에서 작은 것부터 우리를 다 내보이는 것, 그것이 그가 교전에서 찾은 의미이며 그의 빗자루가 이웃집부터 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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