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들 닮은 개교표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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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들 닮은 개교표어비'
  • 한울안신문
  • 승인 2010.09.0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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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교표어비 기증 설치한 ... 신림교당 이전관 교도



그의 손은 정직하고 따뜻해 보였다. 50여 년간 석재 기술자로, 문화재며 유수의 건물을 만들며 이름 날린 이전관 교도처럼 손도 주인을 닮아 있었다. 그런 그가 개교표어비와 일원상석을 만들어 음성 큰바위얼굴 조각공원에 기증 설치했으니, 조각상들이 그를 닮아 포근해 보이는 것은 당연지사, 아니 그의 말처럼 따뜻한 우리 교도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 합장하는 돌


“어딜 가든 감사의 마음으로 합장하는 교도들을 닮은 돌을 찾고 싶었어요. 그것이, 개교표어비에 맞는 돌이라 생각했지요.”


조건은 단 두 개였다. 자연석일 것, 등을 구부린 듯한 형상의 돌일 것. 단순해 보이면서도 이 까다로운 미션을 위해 전국 곳곳을 순례하기를 20여일, 하지만 그 기간은 그에게 20일간의 행복한 순례기이기도 했다.


“대종사님이 인도해 주실 거란 확신과 믿음이 있었어요. 돌을 발견했을 때도 무릎 꿇고 ‘대종사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란 기도를 먼저 했지요.”


믿음이 헛되지 않듯, 전국을 수소문해 드디어 만난 돌은, 그의 머리 속에서 튀어나온 듯 앞에서는 당당함을 옆에서는 합장을 하듯 고개 숙인 형상을 하고 있었다.


“너무 감사한 마음에 웃돈까지 엊어 주고 2.5톤 돌을 실고 단숨에 작업실로 달려왔습니다.”


그 후부터는 모든 게 일사천리, 바로 개교표어 원본을 구해 한자 한자 기도 일념으로 새겨 넣었고 개교표어비만으로는 어쩐지 외로워 보여 복주머니 형상의 돌을 구해 일원상석도 만들었다. 꼭 대종사님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 봐라,는 듯 손이 저절로 움직이는 듯했다.


“완성하고 보니, 대종사님 흉상과 개교표어비, 일원상석이 기가 막히게 삼각형 균형을 이루더라고요. 저의 기술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고 또 고마웠습니다.” 그런 그가 다시한번 조심스레 말하는 백주년 목표 하나. “백주년 안에 10m 높이의 기념비를 성지에 설치하는 것이 제 꿈이지요.”




# 13년 째 같은 아침인사


“지금 익산총부 기념품센터 자리가 어렸을 때 살던 집터에요. 담 넘어 원광대와 총부를 놀이터 삼아 뛰어다녔지요.”


하지만 의외로 이 교도의 입교연수는 그 후로도 몇십년이 흐른 1997년.


“사는 게 바쁘다 보니 왔다갔다(?) 기복이 심했다고 할까요.”


그러다 우연히 방문한 거래처에서 일원상을 발견한 이 교도는, 반가운 마음에 거래처 사장을 따라 신림교당에 입교, 그 후부터 원우회 총무며 청운회 부회장을 맡으며 잊었던 정인을 만난 듯 원불교 법에 빠져들었다.


“주위에서 갑자기 사람이 달라졌다 할 정도로 담배며 술도 끊고 바른생활 사나이가 되었지요.”


빠지고 싶은 원불교에 빠졌으니 충실한 교도로 남고 싶었다는 이 교도, 13년째 계속되고 있는 ‘사은님 감사합니다’란 이 아침 인사가 언제까지나 계속 될 것이란다.


김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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