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님 치맛자락 따라 살아온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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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님 치맛자락 따라 살아온 삶!'
  • 한울안신문
  • 승인 2012.02.0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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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 곳 어떤 일이든 공심으로 ... 서울교당 권성연 교도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짜라짜잔 짠하고 나타나 도움을 줄 것 같은 권성연 교도. 그도 그럴 것이, 때론 노인정 어르신들 싸움 중재부터 독거노인 집청소, 일손이 모자랄 땐 꽃박람회 자원봉사까지… 거기다 교단의 봉공이라면 빠질리 없으니, 그녀의 주제곡이 어디선가 나타나는 ‘짱가’가 된지 오래다. 괜히 공로상, 효행상, 모범시민상의 7관왕일까.



# 전라도 사투리 쓰는


경상도 사람


“다 원불교에서 배운 걸 밖에서 실천한 것뿐이에요. 제가 언제나 교당의 ‘짱가’거든요.”


그건 입교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교당분위기도 적응되기 전, 학생회와 일반법회 반주를 맡아 달라 부탁받았을 때도 두말없이 ‘네’. 회사에 있다가도 교당 일이라면 틈을 내 달려오곤 했다. 오직하면 주례선생님이 “권성연은 개인의 딸이 아니라 원불교의 딸이다”며 남편의 든든한 외조를 부탁했을까.


“교무님 치맛자락만 잡고 다니면 삶이 두둑해질 것 같았어요. 나중에는 말투까지 닮아가,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경상도 사람이다’ 농을 들었지요.”


흠모하다보니 닮아갔고, 교무님의 에너지를 따라가다보니 맡기는 일은 언제나 OK. 어느새 교당 일에 그녀 빠지면 밍숭 맹숭하다 할 정도로 교단의 맏며느리가 되었다.


“교당 일이라면 더 열심히지요. 3년동안 매일 일산에서 출퇴근하며 교당 재건축을 도왔어요. 건축위원이었거든요.”


멋져 보이는 이름과는 달리, 일은 험한 공사현장에서 ‘불단이 오른쪽으로 더 갔네, 식당 문이 이상하네’며 인부들과 씨름하기, 또 방석, 촛대, 의자, 수저 등을 사기위해 내 집 드나 들 듯 시장 드나들기. 입이 부르틀 정도로 힘들긴 했지만, 그마 만큼 성취감과 흐뭇함은 두배였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봉공회장으로 돌아가, 반찬봉사와 노숙자 무료급식, 김치담기를 하고 있다.


“끝나고 나면 힘들었던 건 다 잊고 그냥 흐뭇해요. 그렇게 좋아서 하니, 일이 끝이 없나 봐요.”



# 잠자는 교도단의 단장


그녀, 봉공의 세월만큼 오래 된 것이 단장의 역사, 고등학교 때부터 맡았으니 거의 40여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때는 ‘각 가정마다 일원상 봉안하기’를 목표로 단원들을 설득했어요. 한달에 한 번은 꼭 봉안식을 했으니, 교무님이 청년교도다 싶으면 다 우리단으로 보냈지요.”


40년이 지난 지금은 단원은 있으나, 출석하는 단원은 아직 없는 ‘잠자는 교도 단’의 단장. 작년에도 같은 단을 맡아 2명의 출석교도를 만들어 다른단으로 전학시키고 또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신나요. 교당과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가끔, ‘그때 반주했던 청년’을 찾는 전화가 와 법회로 연결해 주기도 하지요.”


교당 재면 연고가 없어도 꼭 참석해 반주를 맡았으니, 그 가족들에게 교당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반주했던 그 청년’일 수밖에. 그 인연이 참 고맙고 감사하다.


“올해는~ 자신을 찾는 공부를 할려고요. 교리공부도 더 열심히 하며 공부심, 공심 고루 갖춘 교도가 되고 싶습니다.”


김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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