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피해 안 주는 삶이 과연 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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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피해 안 주는 삶이 과연 최선?'
  • 한울안신문
  • 승인 2012.03.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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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제까지나 적극적인 학생 ... 신촌교당 배연정 교도



‘난 특별할 거 없는데… 다 교도들 덕’, ‘우리 원로님에 비하면 전 뭐…’, 인터뷰 내내 ‘덕분’이란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봉공회 총무며 교구봉공회 임원, 교도부회장 등 입교 후 꾸준히 맡아온 일들은 물론 자신의 삶까지도 모두, 배연정 교도는 당신의 덕, 은혜라 말했다.



# 당신이 먼저


“가끔 내가 원불교를 몰랐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요.”


남한테 피해 주지 않는 삶이 최선이라 생각했던 배 교도. 종교에 ‘왜?’란 물음이 들었던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행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듣게 된 인과에 대한 설법.


“내가 얼마나 소극적으로 삶을 대했는지 알게 되었지요. 주지도 받지도 않으면서 제자리만 머무는 삶, 지으려는 노력조차 안 했던거잖아요.”


말 한마디 따뜻하게, 행동 하나에도 넉넉함을 품으려 유념하기 시작한 게 그 때쯤, 직접적으로 복을 짓는 삶을 살고 싶었다. 계단을 오르 내릴 때도 오른발에 ‘감사합니다’ 왼발에 ‘사랑합니다’를 붙였다. 어느 사이인가 ‘당신 덕분’이란 말이 입에 붙기 시작했다.


“우선 삶의 태도가 바뀌니, 내가 좋았어요. 바르고 참되게 살아간다는 기쁨은 무엇에 비할바가 아니었지요. 복잡한 출근길 2호선 내에서도 1분 선이면, 넓은 평원에 와 있는 듯 시원하고 평온했으니까요.”


그러고 나서보니 수두룩한 공부꺼리와 복 지을 기회들. 꼼꼼한 성격으로 가끔 배 교도를 경계에 빠트렸던 아들은 ‘내 미숙한 공부’를 깨우치게 하는 공부꺼리이자, ‘내 부모에겐 어땠는지’ 부모은을 생각하게 하는 기회였다. 삶이 더 재미있어지고 활기차진 건 당연했다.


“순간의 경계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 갈림길에서 선택이 쉬워졌지요. 나도 당신도, 원만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니까요. 더구나 경계도 이제 공부꺼리로 다가오니 수월하게 받아들여져요.”


# 전설의 형님들


“교도부회장요? 처음에는 ‘내가 할 수 있을까’ 의문도 들어 거절했지요. 근데 ‘회장단은 남들보다 하나 더 봉사하는 자리다’하시는 데 그럼 당연히 해야지 했어요.”


임원은 명예직이 아니라 남들보다 하나 더 봉사하는 자리, 그러고보면 일찍이 맡았던 봉공회 총무며 단장, 임원자리도 조금 더 뛸 수 있고, 배울 수 있기에 선택했었다. 더구나 그녀에게는 신촌교당을 이끈 전설의 ‘형님’들이 있었다.


“봉공, 전 교전이 아닌 그분들 뒤를 따라다니며 보고 배웠어요. 지금도 멀리 볼 것도 없이 한평생 한길만 오신 그분들을 보면 ‘못한다’, ‘힘들다’ 할 수 없지요.”


릴레이 100일기도며 교화단별 1일 출가도 그런 원로님의 힘이 모였기에 가능했던 기획. 일주일에 몇 번, 지하철 반바퀴를 돌아야 하는 교당과의 거리도, 가볍기만 하다.


“제가 아직도 적극적인 학생일 수 있는 건 여전히 공부의 끈을 놓지 않는 어르신들 때문이지요.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일 수 있을까요?”


30년 신앙 세월, 원로님들 치마단 붙잡고 온 시간이라 말하지만 지금 누군가에는 그가 등불이자 롤모델. 그게 명예보단 봉공을 따라 걸어온 배 교도의 세월이다.


김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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