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로 살아가는 네가지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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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로 살아가는 네가지 지혜
  • 한울안신문
  • 승인 2012.03.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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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경강 / 문도선 , (개봉교당)

유위위무위(有爲爲無爲) 무상상고전(無相相固全) 망아진아현(忘我眞我現) 위공반자성(爲公反自成) 정산종사 법어 무본편 33장의 법문입니다.


무위, 무상, 무아 등 없는 자리에 근원하여 있는 자리를 나투되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줄이면 지공무사 무아봉공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수도자로 살아가는 네가지 지혜’ 이것이 이 성리의 의미입니다.


첫째는 무위입니다. 일을 하되 흔적없이 하라는 말입니다. 무위도식이라는 말이 있지요. 이 때 무위는 ‘아무 것도 안한다’는 말이지만, 불가에서의 무위는 놀고 먹는식의 아무 것도 안한다는 뜻이 아니라 흔적없이 하라는 말입니다.


두 번째 무상입니다. 무위가 밖으로 나타나는 수도인의 기준이라면 무상은 안으로 가져야 할 기준입니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버리는 것, 이것이야 말로 안으로 수도인이 가져야할 마음입니다. 다시말해 일을 함에 흔적없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무아입니다. 수도가자 자기라는 집착과 망각을 벗어나야 진정한 ‘자기’를 나타내고 이기심을 벗어나야 진정한 자아실현을 할 수 있습니다.


‘무소유’라는 책을 쓰신 법정스님도 자신이 소유하고 계신 절이 없었다고 합니다. 산속 조그마한 암자에서 글을 쓰며 수행하실 때 서울의 한거부가 요정으로 쓰던 계곡의 금싸라기 땅을 기증했는데 그것이 ‘길상사’입니다. 서울의 길상사는 법정스님의 이름으로 등기가 되어있지 않고 거기에 법정스님의 방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무위와 무상을 ‘나’라는 망집을 벗어날 때 무아 즉 나를 잊는 경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안팎으로 흔적없는 마음과 행을 계속하면 중생의 나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네 번째 지혜는 봉공입니다. 모두를 위하면 결국 부처를 이룬다는 말입니다. 깨달은 자의 행위는 공중을 향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범부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갑니다. 반대로 불보살들은 세상 모두를 건지기위해 힘쓰죠.


자신만을 위해 사는 범부가 조금 눈을 뜨면 가족을 위해 살아간답니다. 조금 더 눈이 뜨이면 친구를 위하고 자신을 돌봐주는 상사나 은사님들을 향하지요.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은혜가 미치기 때문입니다.


불보살들은 이 원리를 압니다. 결국 세상은 ‘모든 관계가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수도인들은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공중을 위하는 삶을 삽니다. 최상의 실천행은 봉공하는 삶입니다. 내가 죽어야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네가 살아야 나도 산다는 원리를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봉공하라는 것이 아니고 ‘무아’ 즉 나를 잊고 봉공하라는 무아 봉공입니다.


결국 이 의두는 ‘수도인의 네가지 삶의 지혜’라고 볼수 있습니다.


의두 원문을 다시 정리하면 유위위무위(有爲爲無爲)는 밖으로 흔적없는 행을 해 가라는 말씀, 무상상고전(無相相固全)은 ‘무상의 도’ 즉 안으로 흔적(상) 없는 마음을 가지라는 말씀, 망아진아현(忘我眞我現) 은 ‘무아의 도’ 즉 안팎으로 흔적없는 마음과 행을 하면 중생인 나를 없애라는 말씀, 위공반자성(爲公反自成)은 ‘봉공의 도’를 이릅니다 이처럼 무아에 바탕해 모두를 위해 일하면 결국 ‘부처’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모두 상을 버리고 공을 위해 열심히 일해서 진급하고 부처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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