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 대신 은혜 마음에 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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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 대신 은혜 마음에 걸고'
  • 한울안신문
  • 승인 2012.04.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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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당의 대들보 ... 송천교당 이중락 교도



“우리 삼타원님 아프시면 큰일 나요. 교당 대들보 신걸요. 건강하셔야 해요.”


겨우, 몇 걸음 뗐을 뿐인데 ‘삼타원님, 우리 어머님’이라며 찾는 이, ‘환절기 감기는 어떤지, 건강은 어떤지’ 와 보듬는 이 여러 명. 자리를 잡고도 ‘가보겠다’며 눈인사하는 교도들로 사무실 문 여닫히기가 수십 번이다. 50년 법 인생, 이중락 교도의 삶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것이 더 무엇이 있을까 싶었다.



# 10번의 독경보다 한번의 실천


반평생을 원불교 교도로 살아온 이 교도. ‘여자가 집밖에 나간다’며 교당출입을 반대하던 남편 몰래 새벽기도 다녔던 입교초기부터, 반찬값 아껴가며 건축기금을 마련하던 젊은 시절, 아이들 등록금 마련으로 한시가 아쉬울 때도 빠지지 않던 수락산양로원 봉사활동시기까지, 신앙은 80년 동안 그녀 삶과 함께 흐르며 인생을 두둑하게 만들어 주었다.


“동아줄이었어요. 6·25때도 또 남편이 정치격변기에 휘말렸을 때도 아이들과 가정을 보호할 힘을 주었지요.”


땅으로 꺼질 듯 힘들다가도 교당으로 향하는 발길 하나면 피로가 사라지곤 했을 정도, 아이들 가정통신문에 ‘원불교’라 쓸 때면 어깨가 으쓱해졌다. 주무, 단장, 총단장으로, 또 봉사로, 교당 일 두려워하지 않고 살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입버릇처럼 하던 ‘난 덕이 없나보다’도 어느순간 안하고 있더라고요. 대신 타력생활을 자력생활로,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계문을 입에 달고 살았지요.”


원망도 마음에서 나가는 것이라 마음에 단단히 계문을 걸어 놓고, 10번의 독경보다 한 번의 실천을 중요시 하며 산 세월. 어느 사이엔가 삼타원이란 법호도 나오고 법사위도 올랐다. 앞으로 어떤 신앙인이 될 것인가 다시 고민이 시작 됐다.


“앙상한 가지를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는데 법사위까지 만들어주었으니, 아우들에게 큰 그늘이 되어 줄 수 있을지, 항상 참 신앙인인지 고민이지요.”


# 5명의 법사


“원불교 처음 이미지요? 익산총부에서 고생하시던 정토님들이지요.”


13살쯤? 익산총부 야학당에서 한글 배울 때, 지게 지고 고생하시던 정토님들 모습에 ‘원불교에 다녀서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이 교도. 거기다 매일 새벽 기도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신앙의 표본처럼 남아 공부의 기준이 되었다.


“공부와 생활이 다르지 않구나, 공부는 쉼 없이 하는 거구나, 눈으로 보고 배웠지요.”


그 덕분에, 아직도 교전 읽고 쓰며 마음에 새기는 건 기본, 아침저녁 기도는 물론 법회 한번 놓친 적 없다. 조석심고도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마당에서 드려야 기운이 모아지는걸 보면, 어머니 향이 아직도 곁에 머무는 것 같다.


“4녀1남 형제들이 다 모이면 법사모임이라고 할 정도니까요. 자랑스럽지요.”


신심 대물림 해, 공부 봉공 놓치지 않았던 이 교도, 그런 그녀에게 새로이 바람 한 가지 생겼다.


“저를 위한 기도를 한 번도 해 본적 없는데, 80세를 넘고 나니 날 위한 바람이 생겼어요. ‘다시 이 정법 만나게 해 주세요. 그리고 교당의 내 빈자리 우리 아이들이 메꿀 수 있게 해 주세요’ 이 정도는 괜찮겠지요?” 김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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