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마다 교당, 추억마다 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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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마다 교당, 추억마다 교단
  • 한울안신문
  • 승인 2013.02.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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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 한번 의심없는 반세기 ... 가락교당 김재성 교도



그녀의 이야기 속에는, 복숭아밭에서 설법하시는 대산종사님도, 기둥만 있던 서울회관도, 20대 푸릇푸릇했던 선진들도 살아 숨쉬고 있었다. 최선을 다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당당한 기억, 반세기를 넘도록 단 한번의 의심없이 달려온 김재성 교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


김 교도가 한평생 해온 봉사와 그 속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그 중 제일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호스피스 병동에서였다. 진통제를 먹으면 약발이 안 받는다며 받은 진통제를 침대 밑에 숨겨 놓고 고통을 참던 환자, ‘왔냐’며 반갑게 맞다가도 어느 날은 분노를 토해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환자. 죽는 순간까지 ‘신약’이란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해 준비 없이 죽음을 맞이한 환자. 그곳에서 그녀는 죽음을 준비하는 우리의 생사관에 대해, 삶의 희망에 대해 수없이 고민했다.


“속 깊은 이야기를 할 만큼 친해진 분이었는데, 갑자기 증세가 악화 되어 의식이 없으셨어요. 그래서 남편 분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 말 했는데, 그게 문제가 된 거지요. 간병인이 안심이 시켜야지 희망을 꺾는 이야기를 했다고요.”


‘어디까지 희망을 주어야 하는 걸까? 과연 어느 순간에 다다라서야 죽음을 준비 시킬 수 있는 걸까?’란 고민과 호스피스란 단어도 조심스러워 ‘자원봉사자’로고만 쓴 명찰. 허나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란 생각도 잠시,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희망과 상극의 인연을 풀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하는, ‘편견과 싸우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그녀였다.


“종교가 달라도 꼭 하나, 인과만은 이야기하지요. 상극의 인연은 상생으로, 악은 선으로 돌리라고요. 그게 제가 알고 있는 이치니까요.”



# 새우젓 2톤과 고추 1000근


열일곱에 언니(김묘정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 이사장) 손을 잡고 처음 가 본 원불교 교당. 어찌된 인연인지, 줄곧 창립인으로 문열이 역할만을 해온 그녀다. 김교도가 창립멤버로 등록된 곳만 해도 봉공회와 은혜의전화, 은혜호스피스, 가락교당. 고생담도, 추억도 듬뿍이다.


“바자회 첫해, 자신감이 넘쳐새우젓 2톤을 주문한 거 있죠. 밤새 그걸 봉지봉지 옮겨 담았다니까요. 그리고 또 언젠간 고추 1000근을 주문해 밤새 다 다듬었어요, 호호.”


바자회 물품 보러 갔던 변산에서 태풍을 만나 자동차 뒤로 나무들이 툭툭 쓰러졌던 일, 20년간 수요공부방의 방장을 맡아 이끌었던 일, 교당 적금을 소매치기를 당할 뻔했던 오싹한 순간까지. 그녀의 기억 마디마디 교당이 있었고, 추억마디마다 교단이 있었다.


“좋아서라고 밖에요. 소심하고 병약했던 소녀가 법문을 보며 ‘나도 소중한 사람이다’란 것도 깨달았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으니까요.”


오랜 시간이 흐르고도 ‘김 선생 오랜만이다’라 손잡아준 대산종사에 대한 기억이 늘 힘이 됐다는 그녀, 지금도 주무, 단장, 원무를 맡고 있는 교단의 평생 일꾼, 다시 문을 나서는 지금 이 걸음도 교단을 위한 것임에 조금의 의심도 없다.


김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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