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로 사다 쟁여둔 볼펜
상태바
박스로 사다 쟁여둔 볼펜
  • 한울안신문
  • 승인 2013.02.28 0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 서울역 무료급식 시작부터 함께해온 ... 방학교당 최덕인 봉공회장



“엄마, 나 서울역인데~ 지나가는 노숙자 아저씨들이 오늘 원불교밥 나오는 날이라고 하더라? 원불교가 제일 맛있대!! 엄마 힘내!!”


둘째딸의 이 애교넘치는 전화를 받고 마음 뭉클했던 엄마, 2010년 시작할 때부터 격주 수요일마다 무료급식센터에서 팔을 걷어온 최덕인 봉공회장이다. 3년 봉공회장에 올초 연임된 자타공인 방학교당 며느리, 수락산시립요양원이며 한국보육원, 번동복지관 등 서울봉공회 역사와 함께 해온 그녀, 허나 지금은 ‘가장 보람된 봉공’이라 꼽는 서울역 무료급식이 처음부터 편했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러운 얘긴데, 초창기엔 배식을 하고 남은 밥을 봉사자들이 함께 먹었어요. 그런데 노숙인들이 그 식판이며 식기들을 썼다는 생각에 먹질 못하겠더라고요.”



# 맛도 정성도 원불교가 최고


이제는 급식소 가는 동안 ‘봉사자 아주머니다!’ 소리에 환히 웃으며 인사한다는 그녀. 마침 인터뷰 전날 급식소 직원의 ‘설문조사를 했는데 맛도 정성도 원불교가 1위였다’는 얘기를 싱글벙글 꺼내놓는다.


“처음에 봉사자 모집해야 했을 때 걱정 좀 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전임 회장님, 현재 회장님부터 손을 번쩍 드시더라고요. 봉공회장이래도 저는 뭐 한 일이 없어요, 교도님들이 다 먼저 해주시니까요.”


20여년전 입교부터가 방학교당이었다. 친정은 종교가 없었지만, 일원가족의 남자를 만나 서울회관 예식장(현재 원음방송 건물)에서 결혼을 했다. 아이들 서너살 무렵 시누이의 ‘올케, 이젠 교당 다닐거지?’ 한 마디에 네 식구가 방학교당을 찾은 것. 아이들이 엄마의 봉공을 응원 할 정도로 자라는 동안, 싫은마음 한번 없이 지고지순 교당생활을 해온 그녀, 이 마음 의 근원은 바로 ‘사경’. 일과를 정리한 뒤 잠들기 전에 노트를 펼쳐온 20년, 정산종사탄생백주년 행사 때 전국에서 뽑혀 총부에 전시되기도 했다는 그녀의 노트엔 정전과 대종경 전서만 수십번, 일원상서원문, 반야심경, 천도법문은 천번이 넘게 담겨있다.



# 하다보니 되더라


오죽하면 일주일이 멀다하고 떨어지는 모나미볼펜을, 처음에는 박스 채 사다 쟁여놓고 쓰다, 나중에는 볼펜심만 떼어와 갈아끼웠단다. 유난히 깨알같은 글씨에, 모르는 한자(漢字)는 옥편을 찾아 옮겨쓰는 정성. 교무 말씀 땅에 안 떨어뜨리려 ‘네 교무님 말씀대로 할게요’ 하다보니, 아이들은 자랐고 세월은 흘렀으며, 그녀의 언행과 표정은 한껏 포근하고 여유로와졌다.


“보은장터에 우리 교당이 해물파전을 내놓거든요. 말도 마세요, 처음엔 파를 씻어서 대법당에 신문지 깔고 선풍기까지 틀어 말렸다니까요. 이제는 요령이 생겨 다듬고 씻어 딱 소쿠리에 담아 비닐로 덮어요. 뭣도 모르고 덜컥 한다했지만, 하다 보니 되대요. 호호”


‘모르고 시작했지만, 하다 보니 된다’라, 결혼으로 만난 교법이며 교당을 이제는 어엿한 주인으로 살고 있으니, 이는 꼭 그녀 자신의 이야기 아닌가.



민소연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