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종교화는 미래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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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화는 미래의 씨앗
  • 한울안신문
  • 승인 2013.11.2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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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법연은 내가 만드는 것 ... 잠실교당 고광욱 교도



“부대로 이동할 때마다 교당의 유무가 가장 걱정이었어요.”


처음에는 우연히 교당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요령이 붙어 ‘이쯤이면 교당이 있을 텐데’란 교당찾기의 달인이 되었다. 전곡, 양주, 포천, 금마 등. 직업군인이었던 덕에 누구보다 많은 전국 교당을 출석했던 고광욱 교도, 그 많은 교당의 숫자는 법연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의 의지의 굵기이 기도 했다.



# 교당 찾기의 달인


친구 따라 갔던 교당이 20년 깊은 인연이 될지 누가 알았을까? 대학생 시절 원대연 활동은 기본, 처음 임관한 전곡에서는 시장에서 장을 보다 교당을 발견하고 시장바구니를 들고 바로 교당 문을 두드렸다. 다음 부임지에서는 신정절 법회를 보겠다는 의지 하나로 눈을 뚫고 교당을 찾았다. 누구의 권유 없이, 그가 좋아서 한 일이었다.


“양주에서는, 전입하고 처음으로 교당을 찾아 갔는데, 수북한 눈밭에 발자국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전입한 군인이다’며 메모를 남기고 왔더니 다음날 바로 연락이 왔어요. 이런 군인은 처음이라면서요.”


그 메모가 개척교화를 하던 교무님에게 감동을 주었던지 ‘신심 장한 교도가 있다’며 가는 곳마다 칭찬을 하고 다니셔서, 한동안 그는 ‘이 청년이 그 청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다녀야 했다. 이후 포천에서도, 잠실, 인천에서도 마찬가지. 그렇게 15년 군생활 동안 부임지에서의 첫 일정은 교당 찾기였고, 이삿짐을 풀기 전에 교당 문을 두드렸다.


“내 삶의 길잡이었으니까요.”



# 봄을 만드는 사람


그런 그가 군교화의 중요성을 접한 계기는 2005년 부사관학교에서의 법회를 도우면서였다. 원불교를 모른다던 장병들이 교전을 읽고 독경을 하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입소문을 타면서 80명 정도가 법회에 참석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이 생각을 왜 못 했을까 머리를 쳤어요. 나만 교당에 다닐 게 아니라 장병들도 데리고 나가면 됐던 건데요.”


그렇게 원불교군교도회 훈련에 참석해 군교화의 중요성을 공부하고, 군종 인정을 위해 장병들을 데리고 금마교당을 출석했다. 처음에는 4~5명이던 장병들이 30명까지 늘어났다.


“2년 후에 부대를 찾아갔더니, 장병 몇 명이 교전을 끼고 교당으로 걸어가요. 뿌듯하더라고요.”


잠실교당에 오자마자 한 일도 군법회추진이었다. 어렵게 생각했던 부대의 승인도 ‘그거 장병들에게 좋은 거잖아’란 한마디로 거짓말처럼 쉽게 승인났다. 출석체크부터 상담까지 법연으로 장병들을 대하다 보니, 올해는 옆 부대도 같이 해보겠냐는 제의도 받았다. 올해 15년간의 군생활을 전역하고 나서도 군교화는 아직도 진행중, 장병들과 함께하는 일요일 법회날이면 몸이 더 가벼울 정도이다.


“종교의 힘을 알고 신앙에 대한 믿음이 있으니까요. 법당에 처음 갔을 때, 진로, 공부 등 소란스러웠던 마음이 고요해지던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런 힘을 병사들에게도 심어주고 싶어요.”


지금은 스쳐지나가는 인연이라도, 그 씨앗이 봄을 만나면 누구보다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라 확신하는 그, 그는 지금 그 봄을 기다리며 씨를 뿌리고 중이다.


김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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