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는 나눔 아닌 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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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는 나눔 아닌 배움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04.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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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안암병원 호스피스 봉사 ... 장충교당 이대원 교도



미로 같은 병원에서도 제일 모퉁이에 자리해 있는 호스피스봉사자실. 상담자 목록과 사망자 서류철이 곳곳에 눈에 띄는 그곳에서, 매주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분들을 마주하는 이대원 교도에게 물었다. “전혀무섭지 않은 곳이에요. 앞으로 올 내 모습이잖아요. 배우는 거죠. 여러분은 어떻게 죽음을 맞고 싶은데요?”



# 내가 또 다른 문에 섰을 때


“저도 처음에는 낯설고 두려웠어요. 호스피스 봉사를 처음 와, 환자의 마지막 순간에 손을 잡고 기도하는데 그동안 배웠던 이론은 어디로 다 달아나고, 무서워서 만질 수가 없더라고요. 겨우 용기를 내 발을 살짝 잡았지요.”


그 발이 얼마나 얼음장같이 차던지, 한동안 그 서늘함이 몸에 남아 쉽사리 다른 병실로 들어갈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비로소 죽음에 대한 무게감이 와 닿았던 것이다. 거기다, ‘난 호스피스 받을 사람이 아니다. 당신들이 왜 나한테 왔냐?’는 환자들의 거부도, 아무리 아니라 해도 마음의 생채기를 냈다.


“소타원님한테 좀 쉬겠다고 얘기했다가 호되게 혼났지요. 신앙하는 사람이, 봉사하겠다고 교육까지 받은 사람이 그렇게 나태할 수 있냐고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시작, 하루는 엄마의 죽음도 모르고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서 못할 것 같다가도, 또 하루는 ‘아무 얘기라도 이렇게 하고 싶었다. 감사하다’는 환자에 마음을 잡길 17년.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었고 떠나보냈다.


“환자분이 케이크가 먹고 싶다고 하셔서 사다 드렸더니, 가만히 냄새를 맡고 눈으로 보고, 다시 냄새를 맡으며 한참을 그렇게 보시더라고요. 행복해 하던 그분 얼굴에서 뭐랄까… 죽음은 슬픔만이 아니란 걸, 내가 하는 호스피스가 나눔이 아니라 배움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 후, 알고 있는 사실을 가르쳐주려던 예전과 달리 가만히 함께 있어주고 귀 기울여 주려한 이 교도. ‘보고 싶다. 말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환자의 문자에 시간 따지지 않고 한걸음에 달려가는 것을 보면, 이제 호스피스는 봉사가 아닌 삶 그 자체이다.


“죽음은 이 세상에서 사명을 다 했을 때 주어지는 은혜 같아요. 화해의 시간이지요. 저희는 그걸 조금이라도 도와드리려 노력하는 거고요. 아직도 호스피스가, 이 공간이 무서우세요?”



# 원불교 오빠에서 여보?


결혼 조건은 단 하나 ‘원불교’였다는 그, “원남교당에서 입교했다.”는 오빠 친구의 얘기에 가산점 50점을 주었단다. 덕분에 세 딸은, 부부를 보고 배우며 자랐고, 두 부부 신심 이어 받을 수 있었다.


“큰 딸도 원불교 가정의 신랑감을 데리고 왔거든요. 같은 곳을 보고 같은 신앙을 한다는 게 가장 큰 은혜를 받았지요.”


그러고 보면 힘든 순간마다 은혜의 징검다리를 밟고 건널 수 있었다는 이 교도, 큰 은혜에 더더욱 마음 매무새를 다졌단다.


“다시 이 이야기로 돌아왔네요. 참 감사한 삶이고 그 은혜를 나누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뒤 돌아본 병원 끝자락, 중환자실과 마주한 호스피스봉사자실. “보이세요? 사실 여기가 병원에서 개나리, 진달래, 모든 꽃들이 제일 잘 보이는 곳이에요.”



김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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