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내생을 준비하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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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는 내생을 준비하는 기회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06.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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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복을 만드는 ... 불광교당 오용덕 교도

‘65세 이상만 이용 가능’이란 안내문이 붙은 복지관 식당, 하지만 환갑을 훌쩍 넘은 오용덕 교도는 식당이 아닌 부엌에서 음식 봉사에 여념이 없었다. “나요? 몇 살처럼 보이는데요. 60세가 넘으면 마음의 나이로 하자고요.”



# 65세 이상만 가능?


가정파견봉사(가파)를 위해 목요일마다 흑석동을 오른 지도 11년. 복지관과 구치소봉사로 보낸 그 몇 배의 시간 동안 여리던 마음은 단단해졌고, 부드럽던 손에는 굳은살이 배였다.


“다양한 분들을 만났지요. 기쁜 일도, 아픈 이별도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처음 만난 분들은 잊을 수가 없어요.”


곡기를 끊고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던 할아버지의, 몇 겹인지 모를 세월의 때를 벗기고, 집을 쓸고 닦았다. 대꾸도 않던 어르신이 질문을 했고, 다시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귀한 사람들 바닥에서 대접할 수 없다’며 다과상을 사 놓고 그녀들을 기다렸다.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놓고 봉사날을 기다리는 건, 어르신들뿐만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봉사가 끝나도 잔상이 남아 몸과 마음이 힘들었어요. 복지관에 가서는 장애 아이들이, 가파에 가서는 점점 쇠약해져가는 어르신들을 보며 가슴이 미어졌지요. 내 모습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고요.”


작별인사도 없이 어르신들을 떠나보낼 때도 있었지만, 그러기에 지금이 더 소중했다. 아이들이 먹고 남긴 밥도 거리낌 없이 먹었고, 화장실 청소도 아무렇지 않았다. 어느 날은 어둑해진 흑석동 비탈길을 내려오며 ‘봉사는 주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받는 것이구나’란 생각에 눈물지었다.


“비로소 알겠더라고요. 이 진리가 얼마나 틀림없는지. 봉사를 하며 평생을 달고 다니던 위병도 사라졌지요.”


지금도, 수 십 개의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는 오 교도의 달력, “기다림이자 설레임이지요.”



# 0에서 다시 시작


“굴곡이 많았기에 더 복 짓는 데 열심히 였어요.”


오 교도에게 봉사는 ‘시간이 남아서, 또는 모든 게 다 갖추어진 후’가 아니었다. 인생의 경계마다 업장을 녹이고 내생을 준비하는 기회이자 기다림이었다.


“저도 사람인데 왜 퇴불심이 안 들었겠어요. 큰 경계 때마다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는데 왜?’란 마음이 들었지요. 무심하다 원망도 했어요.”


하지만 그런 마음은 찰라, 더 바짝 정신을 차려 기도하고 봉사했다. 사업실패로, 한순간에 사모님에서 남의 집 일을 해야 할 때도 봉사 날을 놓치지 않았다. 그 순간에도 봉공회장 역할에 최선을 다했던 그녀였다. 지은 바가 없다면 계속 지어 쌓아 올리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리는 거짓이 없음을 아니까요. 그렇기에 불행하지 않았어요. 그 시간이 있기에 지금, 이렇게 행복한 것 일거구요.”


새벽기도 때면 빼 놓지 않는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감사기도문’, 너 때문이 아니라 당신 덕분에 내가 있음을 알기에 행복은 이렇게 그녀를 찾아왔다.


김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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