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일심으로 만든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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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일심으로 만든 삶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09.2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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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운회 수도권 부회장 … 인천교당 박인광 교도


“다른 사람들은 걱정했을지 모르지만 저는 천지가 열릴 거라고 장담했어요. 기도를 해 본 사람은 알아요. 기도의 감흥이란 걸요.”
100년성업 기도로 오른 백두산 천지, 그들이 오르자 안개로 가득했던 천지가 거짓말처럼 열렸다. 3,000일 동안 일심으로 기도했고, 그 기도에 한 톨의 의심도 없었기에 가능했던 확신. 그의 신앙은 그렇게 듬직하고 단단했다.



# 악보 까막눈으로 성가 마스터까지
“누구를 향한 기도인지도 모를 기도에, 사은님이 답해주셨어요. 소원요? 영화 ‘친구’알지요. 딱 내 어린시절이었어요. 그러면서도 벗어나고 싶었고 착하게 살고 싶었지요.”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이 기도를 들어준다면 누구든 상관없었다. 기도는 꼬박 3년 동안 이어졌지만 답은 없었다.
“그때 어머니를 따라 교당에 갔지요. 충격이고 기쁨이었어요.”
‘모든 게 은혜라니, 인생은 고라고 생각했는데, 내 주위에 나를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가득했던건가.’교무님의 설법은 겹겹이 쌓았던 자존심과 자신을 향하던 분노를 깨트렸다. 마음 속에서 와장창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내 기도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등불을 발견한 기분이었지요. 교리학교와 통신강좌를 신청하고 5시 좌선과 염불로 하루를 시작했지요.”
길을 걸을 때도 일원상서원문을 외웠다. ‘쟤가 원불교에미쳤다’라는 얘기가 들려왔다. 동네 말썽쟁이던 그가, 악보 까막눈이면서도 성가를 부르겠다고 음계를 짚으며 소리 내어 연습을 했으니 주위사람 보기에는 그럴만도 했을 것이다.
“그 덕에 지하철에서는 교전을 보는 저를 보고 ‘원불교 교도’라며 아는체 하는 분도 있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인천교당 청년회도 결성 됐지요.”
청년들에게는 속상할 때 찾을 수 있는 인광이 형이었고, 일반교도들에게는 불가능이란 없는 총무 인광이로 불린 그. 더 이상 ‘냄비신심’이라 의심하는 사람도, 동네 말썽쟁이로 박인광을 기억하는 사람도 없었다.


“30년 동안 결석한 숫자가 5번 정도요? 달라진 건 없어요. 마음의 집인 여기를 놔두고 어디를 가겠어요.”



# 어디서든선방
“스승님이 괴롭지 않냐고 먼저 물어보시더라고요. 괜찮다 웃어보여 드렸지요.”
교당 수리를 하다 팔을 다친 그, ‘구인선진님들은 목숨도 바치려 하셨는데’라며 웃어 보이는 그에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차례로 나쁜 일들이 찾아왔다. 30년 동안 은혜발견에 게으름피지 않던 그였다.


“올바르게 공부했고 그 믿음이 잘못 됐다 생각하지 않았으니 원망도 없었어요. 오히려 기뻤습니다. 삼세의 업을 이렇게 받았으니 다음 생에는 전무출신을 지원할 수 있겠구나,하고요.”
다시 출발선에서 시작한 삶이었지만 오히려 매 시간이 공부거리 기회가 되었다는 그. 일을끝내고 돌아오는 새벽은 목청껏 독경할 수 있는 시간이요, 언제든 함께하는 교전은 어디든 선방으로 만들었다,
“교도가 되면 쉴 시간이 없다는 데 맞는 말이에요. 공부에는 쉼이 없어요.



김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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