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상 서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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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상 서원문
  • 한울안신문
  • 승인 2001.06.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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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원 김지선 교무"홍제교당 6월3일


성불의 씨앗
일원상 서원문은 법신불께 성불의 서약을 올리는 글로써 간절하고 지극한 발원문이요, 성불 서원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서원문은 대종사님께서 원기23년 11월에 직접 친제하시면서 난리가 나서 다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서원문 하나만 남겨두면 다시 회상을 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서원문은 대종사님의 경륜과 포부요, 낙원세계 건설하시고자 하는 정수가 여기에 담겨져 있다고 보겠습니다.
우리 교리에 일원상 진리, 일원상 신앙, 일원상 수행을 일러주시고 일원상 서원문 왜 내주셨는가 할 때 이 서원은 대종사님의 서원이시요, 삼세제불제성의 서원이시요, 우리 모두의 서원으로 성불서원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좋은 진리, 법이 있다고 하여도 우리들의 마음에 서원의 싹이 싹트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 서원이 없으면 좋은 진리 신앙 수행이 있다고 해도 나하고는 관계가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서원은 불종자(佛種子)라고 하셨습니다. 부처가 될 수 있는 씨앗이란 말입니다.
무슨 씨앗을 뿌리느냐에 따라서 수확도 얻듯이 부처가 될 수 있는 종자를 가져야 됩니다. 부처가 될수 있는 서원의 종자를 갖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다 포기하고 오직 이 길로
정산종사께서는 서원을 이르시되 이욕발심왈서원(離慾發心曰誓願)이라고 하셨습니다. 욕심을 여의고 마음을 발할 때 서원입니다. 우리 범부중생(凡夫衆生)들의 원은 욕심으로 나와서 욕심으로 살기에 항상 자기 본위입니다. 불보살의 서원은 자기욕심을 떠난 자리에서 나오기 때문에 오직 남을 위하는 서원으로 결국 자기를 이롭게 하는 서원이지요, 오늘 한울안 신문에 우산 최희공 원무님의 글을 보고 정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일원회상 영겁주인 일원대도 영겁법자(一圓會上 永劫主人 一圓大道 永劫法子)가 되기로 하면 한 세상 두 세상도 아니고 영생을 그리하려면 오직 이 길 말고 나머지는 다 포기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지위도 명예도 권리도 대통령자리를 준다해도 다 포기하고 오직 한없는 세상 대종사님 모시고 일원회상 영겁주인 일원대도 영겁법자로 오직 이 일만 하려는 마음을 다지고 나머지는 다 포기하겠다는 말입니다.
이런 마음이 보통마음으로 나옵니까? 모르는 사람은 이해가 안되겠지요. 우산님의 영생 서원을 굳게 다지고 있음을 볼 때 이런 분은 일초직입여래위(一超直入如來位)로 오르겠구나 싶어 정말 존경스러웠습니다. 여러분께서도 꼭 한번 정독하시기 바랍니다. 큰 공부, 큰 일을 하기로 하면 서원이 철저해야 이룹니다.
일원상 서원문은 삼세제불제성(三世諸佛諸聖)의 도본(圖本)이라고 하셨습니다. 집을 짓는데 도본을 내야 집을 지을 수 있듯이 부처를 만드는 도본이라고 하셨습니다.

언어도단의 입정처
유무초월의 생사문
서원문의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내용을 보면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일원은 언어도단의 입정처이요 유무초월의 생사문인바 … 무량세계를 전개하였고」까지는 일원의 진리(大小有無)를 대체로 밝혀 주신 것입니다.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 여기는 체받는 것이요, 간절히 모시고 받들어서 내 마음에 체받자는 것입니다.
「심신(心身)을 원만하게 수호(守護)하는 공부를 하며 … 지성(至誠)으로 하여」까지는 체받는 방법이지요. 그 다음 끝 부분은 그렇게 하면 돌아오는 결과를 밝혀주셨습니다.
일원상 서원문은 보통 서원과는 다릅니다. 진리에 바탕한 서원으로 이러한 진리를 알아 가지고 진리가 이러하니까 그 진리에 바탕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밝혀주셨다고 봅니다.
「일원은 언어도단의 입정처이요 유무초월의 생사문」 여기가 진리의 큰 덩치를 한마디로 뭉쳐주신 대목입니다.
「일원은…」 할 때, 일원의 진리는 언어도단 말과 글의 길이 끊어졌다는 뜻이니 말로서도 알 수 없고 글로서도 알 수 없는 자리, 말과 글로 통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산다는 것은 말과 글로 통하는 것인데 이 진리는 언어가 다 끊겼다, 어떤 자리냐 하면 입정처다, 정에 든 자리다 이 말씀입니다.

진리가 생생약동하는 자리
일원의 진리 알고자 하면 입정처(入定處)를 가야됩니다. 이 자리는 말로써 이르지 못하고 생각으로써 헤아리지 못하며 형상으로써 그리지도 못하며 동작으로 나투지 못할 진리의 지극한 자리요, 언어도단하고 심행처(心行處)가 멸(滅)한 자리, 말도 끊어지고 일체의 길도 다 끊어지고 모든 사념 망상(邪念 妄想) 모든 것이 다 쉬어버린 자리입니다.
그러면 이 자리가 목석처럼 언제까지 쉬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도단한 일원의 진리가 생생약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멍청하게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생생약동하고 있습니다.
인과품(因果品) 1장, 우주의 진리는 원래 생멸 없이 길이길이 돌고 도는지라 가는 것이 곧 오는 것이 되고 오는 것이 곧 가는 것이 되며 주는 사람이 곧 받는 사람, 받는 사람이 곧 주는 사람 진리가 항상 생생약동해 있다는 것입니다. 생생약동해서 우주만유를 다 살려내는 것입니다. 그것을 유무초월의 생사문, 유(有)란 있는 것 무(無)란 없는 것 모든 것이 있어지면 유(有)고 모든 것이 없어지면 무(無)입니다.
이 세계는 유와 무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게송에 「유는 무로 무는 유로…」 있는 것은 다 어디로 가느냐? 없는 데로 갑니다. 없는 것은 그대로 없는 것으로 그치냐? 있는 곳으로 나옵니다. 그러면 진리는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그것이 유와 무를 초월한 것입니다.
초월(超越)이란 것은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닙니다. 진리는 현실적으로 보면 있어지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것이 이 세상 현실에 나타나는데 그렇게 하고 있는 진리 그것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닙니다. 유와 무를 초월해서 어떻게 하고 있느냐하면 생사문입니다.
생사문(生死門)이란 것은 생은 낳는 것이고, 사는 죽는 것이지요. 생이란 유의 의미요, 사란 무의 의미입니다. 문(門)이란 경계지요. 이쪽으로 넘어가면 생, 저쪽으로 넘어가면 사. 그 사이의 문, 초월의 의미를 문의 의미로 표현해 주셨습니다.

구공하고 구족한 진리
일원의 진리를 두가지 의미로 표현하면 진리의 당체는 다 빈자리 입정처요, 입정처란 모두가 다 구공(俱空)인 자리입니다. 유뮤초월의 생사문이란 것은 텅 빈 것이 그대로 구족(具足)한 자리요, 비었는데 막연히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유무초월해서 생사문입니다. 입정처란 진리의 바탕 생사문이란 것은 무한한 진리의 위력을 말씀하신 것이지요.
이것이 일원의 진리입니다. 일원의 진리를 체받아 가려면 입정처 자리를 얻어야하고 생사문 자리를 얻어야 합니다.
이 두 자리를 얻고 보면 체성에 합하고 위력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체성에 합한다는 말은 입정처 자리 빈 마음을 얻는 것이요, 위력은 유무초월 생사문입니다. 이 두 가지만 손에 쥐면 우리교리를 손에 쥘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다음시간에 이어서 또 말씀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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