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동윤리와 한삶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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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동윤리와 한삶운동
  • 한울안신문
  • 승인 2001.06.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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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회 새삶회 훈련"6월16일


삼동윤리의 대의
반갑습니다. 오늘 저녁은 삼동윤리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먼저 삼동윤리의 대의가 무엇인가? 정산종사께서 세계 인류가 크게 화합할 세가지 대동의 관계를 밝힌 원리입니다. ‘인류가 모든 편견과 편착의 울안에서 벗어나 한 큰 집안과 한 큰 권속과 한 큰 살림을 이루고, 평화 안락한 하나의 세계에서 함께 일하고 함께 즐기는 기본 강령이다’라고 밝혀 주셨습니다. 대산종사께서는 ‘일원대도에 근거한 대 세계주의로써 천하의 윤리요 만고의 윤리다’라고 하셨습니다. 제 나름대로 삼동윤리를 생각해 보았는데 인간세상에 으뜸이 되는 종교와 종교, 인종과 인종, 사업과 사업의 삼대관계를 근원에서부터 윤리적으로 밝혀 서로 상생통일함으로써 낙원세계를 건설하자는 윤리강령입니다.
우리가 높은 산에 올랐어요? 내려오다 길을 잃었는데 어찌 해야겠습니까? 좀 더디기는 해도 상봉으로 올라가 방향감각을 찾아 다시 내려오는 것이 현명한 것입니다. 불교에서 달마와 용수는 “부처에게로 돌아가자”하고 루터와 칼빈은 “예수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근본에서부터 찾는 것이 가장 빠릅니다. 종교간에 길이 막혔어요 어디서 찾아야 하느냐? 근본되는 도리에서 찾아야 합니다. 인종이 살다 길이 막혀요. 그 근본되는 기운에서 찾아가야합니다.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업의 근본되는 목적에서부터 찾아야합니다. 이렇게 해서 세상을 잘 살아가자는 것이 삼동윤리라고 생각합니다.

삼동윤리 출현의 역사적 의의
삼동윤리 제정의 역사적 의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정산종사께서 삼동윤리를 내 놓으신 것을 한 말씀으로 하면 첫번째는 선후천의 바뀜이라 하겠습니다. 정산종사께서 선천이 후천으로 바뀌니 어떻게 바뀌느냐? 이에 대하여 열 한 가지로 정리해 주셨습니다. 첫째 하루로 치면 밤이 낮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밤이라면 어두운 시대요 낮이라 하면 지혜와 인과가 밝고 비밀이 없는 시대입니다. 둘째 상태로 보자면 정과 동입니다. 밤이면 고요히 자고 낮이면 활동을 합니다. 지금은 동적인 세상입니다. 셋째 기운으로 말하자면 하향에서 상향으로 가는 세상입니다. 지금은 백성들이 주인이 돼서 의견이 밑에서 나와 위로 올라가는 세상입니다. 넷째 도리로 치면 천존에서 인존의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옛날에는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냈습니다. 하느님께 매달립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의 의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양수기로 물을 퍼 올립니다. 다섯째 분리에서 합치로 나아갑니다. 과거에는 나누기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합치기를 좋아합니다. 정산종사께서 가위·바위·보 하는데 가위는 호남과 영남,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갈라서 이길려고 하고 바위는 권력, 무력으로 누르려고 한다. 지금은 보자기 같이 다숩게 다 포용해서 이기려는 것이다 하셨습니다. 여섯째 연령으로 말하면 30세 이전과 30세 이후입니다. 30세 이전은 철이 없고 30세 이후는 성인이 되는 겁니다. 일곱째 사람이라면 철나기 전과 철난 후입니다. 사람이 철이 나면 사랑, 용서를 통해 큰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여덟째 생활은 타력에서 자력으로 바뀝니다. 타력은 의지를 합니다. 그러나 자력생활은 내 할 일 다하고 남을 도와주면서 사는 세상입니다. 아홉째 종교적으로 말하면 신화적인 것에서 사실적인 것으로 바뀝니다. 진리적이고 사실적인 세상이 오는 겁니다. 열째 정치로 말하면 군주주의, 전제주의에서 합의주의 민주주의로 나아갑니다. 열한번째 처세로 말하자면 권모술수에서 언행구비로 나아갑니다. 이렇게 세상이 크게 한판 바뀝니다. 앞으로의 세상은 과거의 윤리, 도덕으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후천의 큰 도덕과 윤리로 살아가야 합니다.
두번째는 역사발전의 단계로 봅니다.
인류의 역사 발전 단계를 네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역사는 혈연시대, 지연시대, 지구시대, 우주시대로 나아갑니다. 혈연시대는 가족과 종족이 투쟁의 원리로 살고 지연시대는 국가와 민족이 경쟁의 원리로 살아갑니다. 지구시대는 인류가 협동의 원리로 살아갑니다. 우주시대는 생물, 무생물, 영계까지 일체의 원리로 한몸이 되어서 사는 세계입니다. 보이지않는 세계까지 한몸이 되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돌아오는 미래 세계입니다. 물론 물이 흘러가다 소용돌이가 쳐서 약간 전진후퇴가 있지만 대체적인 흐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주의 대순환이 어둠에서 밝음으로 좁은데서 넓은데로 가듯이 과거의 윤리와 도덕도 새롭게 바꾸어 살아가야 합니다.
혈연·지역시대에는 부자와 군신의 관계처럼 상하의 윤리가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지구시대·우주시대에는 종교, 인종, 사업관계가 중요시됩니다. 이것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정산종사께서는 종교, 인종, 사업 관계를 상생통일하기 위해서 역사 흐름의 요청에 의해서 삼동윤리를 밝혀주셨습니다. 앞으로 인류의 역사가 멸망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고등종교들의 화합을 위한 협력과 노력에 기대할 수 밖에 없다고 토인비가 말했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생화학자 알버트 세인트 조지는 ‘이 지구위에 이제는 오직 인류종족이라는 한 가족이 살 수 있을 뿐이다. 이 인류가족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공격적 불화이다. 이것을 포괄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종교만이 현대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점에서 삼동윤리를 내 놓으셨습니다.

동원도리
동원도리란 무엇인가?
모든 종교와 교회가 그 근본은 다 같은 한 근원의 도리인 것을 알아서 서로 대동화합하자는 것입니다. 여러 부처님 성자들이 세계 여러 지역에서 그 시대와 그 지역과 그 인심에 맞도록 방편을 쓰시어 바른길로 제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 종교의 광명이 시방삼계에 두루 비치고 우리는 그 은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교도들이 편견, 아집, 독단, 이기에 빠져서 종교의 원래 가르침을 벗어나 개인끼리 또는 집단끼리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인도와 파키스탄전쟁은 힌두교와 회교, 아랍과 이스라엘은 회교와 유대교, 영국 아일랜드는 신교와 구교의 전쟁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 마음입니다. 유네스코 헌장에 전쟁은 사람의 마음에서 생긴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에 가장 큰 영향을 행사하는 것은 무엇이냐? 종교입니다. 그래서 싸움 중에 가장 무서운 싸움은 종교전쟁입니다. 지금도 여러곳에서 종교 전쟁을 하고 있지요. 이렇게 무서운 종교전쟁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냐? 근원에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모든 종교가 한근원 도리에서 나온다. 그것을 알면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어 갑니다.
최수운 선생이 은적암에 있을 때 그 절에 송월당이라는 노승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노승이 “선생은 불도(佛道)를 연구하십니까?” “나는 불도를 좋아하지요” “그러면 왜 중이 되지 않으셨소?” “중이 아니면서 불도를 깨닫는 것이 더욱 좋지 않소” “그러면 유도를 하십니까?” “유도는 좋아하나 선비는 아니요” “그럼 선도를 하십니까?” “선도는 하지 않소마는 좋아는 하지요” “그러면 아무것이나 좋아한다하니 말을 알아들을 수 없군요” 이말을 듣고 수운선생이 두손을 탁 쳐들면서 “대사는 어느 팔을 배척하고 어느 팔을 사랑하오?”하니 노승이 “네 알아들었습니다. 선생은 몸 전체를 사랑한다는 말이군요” 그러자 수운 선생이 “나는 유도 아니요, 불도 아니요, 선도 아니요 나는 오직 천도(天道)를 좋아할 뿐이요” 하고 말을 마치니 노승은 이말에 감복하였으나 필경은 천도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였답니다. 뒷날 제자들이 수운선생에게 사뢰기를 “은적암 노승에게 왜 도를 전하지 않으셨습니까?”라고 물으니 “이미 물든 종이는 새 그림을 그리지 못하니 노승은 이미 물든 종이라 건지려면 찢어질 뿐이니 그대로 놓는 것이 도리어 좋지 않겠느냐”라고 답하셨답니다. 이 일화는 편견을 벗어야 한다는 대 법문입니다.
수운 선생은 “우리의 도는 유도 아니요 불도 아니요 선도 아니다. 그러나 유불선이 합일한 것이다. 천도는 유불선이 아니로되 유불선은 천도의 한 부분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세상의 모든 종교가 서로 다르냐? 아닙니다. 손발이 하는 일이 달라도 다 내 몸이듯이 그렇게 상부상조합니다. 이것을 알면 네일 내일이 없는 것이지요.
대종사님께서는 전망품 13장에 어떤 사람이 서울에서 가정을 이루고 사는데 세계 각국을 유람하면서 그 나라 여자와 자녀를 낳았는데 그 자녀들이 한자리에 모였더랍니다. 형제들이 모여서 보니 모양새는 달라도 형제지간인줄 알고 화합하며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한 진리에서 모든 것이 나왔기 때문에 화합하고 잘 살아야한다는 것을 최수운 선생은 한몸으로 비유하고 대종사님은 한 아버지로 비유하셨습니다. 간디는 힌두교인인데 한 기독교 선교사가 귀하도 그리스도의 한 사도로 생각합니까?’라고 말하자 간디가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귀하의 생각과는 다른 의미로 그러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제자임과 동시에 붓다와 마호멧, 크리슈나(힌두교 신)의 제자라 생각합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의 같은 것 즉 진리와 사랑을 희망한 분들이었으니까요’ 모든 성자들이 이름은 달라도 진리와 사랑은 일치합니다.
저는 어디로 돌아가야 종교가 하나로 돌아가느냐를 나름대로 연구 했는데 원서와 원어를 보고 듣자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원서와 원어를 보고 들으면 모든 종교가 모순 없이 하나가 됩니다. 통역하기 전 번역하기 전이 원서요, 원어입니다. 불교는 범어로 된 팔만대장경, 유교는 한문으로 된 사서삼경, 원불교는 한글로 된 원불교 교전이 원서입니다. 원서를 보아야 그 진수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원서만 보면 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것도 성자들의 번역서였습니다. 하나의 절대자리로 들어가는 원서를 보면 부처, 공자, 예수님, 대종사님께서 모두 본 원서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자리에서 나온 종교와 교리가 왜 차이가 나느냐? 이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제가 남원산골에 있을 때 한상에서 약간 쉰 밥을 먹는데 한명은 “갔다” 그 옆에 있는 사람은 “영혼은 떳다”그러자 다른 사람은 “그러니 조선말 배우기가 힘들다고 하잖아” 무슨 이야기인지 아시겠죠. 말은 달라도 ‘쉬다’가 원어입니다. 그런데 ‘쉬다’가 원어라고 하면 100점은 맞을 수가 없습니다. 100점은 보리밥의 쉰 맛이 원어입니다. 이처럼 쉰 맛을 여러 가지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성리품 25장에 아는 사람은 뭐라 해도 맞고 모르는 사람은 뭐라 해도 틀린다고 나와 있습니다. 대종사께서 제자들을 모아놓고 일원상 자리 문답을 하시는데 하두 갑갑한 이야기들만 하길래 수제자인 정산에게 “정산 한번 해봐라” 하시니 정산종사께서 “언어도가 끊어지고 심행처가 멸했습니다” “어찌 그리 잘 아는가” 여러분도 종법사님이 물으면 “언어도가 끊어지고 심행처가 멸했습니다.”라고 대답해보십시오. 그러면 견성했다고 인증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사람이 채권자가 빚 갚으라 독촉하러 오는 모습을 보고 집 벽장에 숨게 되었는데 아들에게 누가 나 어디 있나 물어보면 “부재중입니다라고 대답해라”하고 일렀습니다. 손님이 아들에게 “너의 아버지 어디 계시냐” 하니 “부재중입니다” 대답하더랍니다. 그래서 “부재중이 무슨 뜻이냐” 물으니 “ 아버지 벽장에 계신다는 뜻입니다”라고 대답했답니다. 아이는 말은 정확히 해도 뜻은 모르는 거지요. 그래서 똑같은 말을 해도 깨어서 하면 맞는 말이고 깨지 못하고 한 말이면 틀린 말입니다. 아는 사람은 뭐라 해도 맞고 모르는 사람은 뭐라 해도 틀린다. 이 말은 ‘깨치고 못 깨친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라고 밝혀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 구경에 가면 원서 원어로 통합니다. 부처님이 꽃가지를 드시니 가섭만이 빙그레 웃어요. 공자님이 “나의 도는 하나로 통한다”하니 증자가 “예 그렇습니다”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하고 대종사께서는 말씀을 놓고 일원○으로 진리를 표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원어 원서의 경지에서는 모든 종교가 하나로 융통하게 됩니다.

동기연계
모든 인종의 근본을 추구해 본다면 근본되는 기운은 다 한 기운으로 연하여 있는 것이므로 천지를 부모로 삼고 우주를 한집 삼는 자리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같은 동포요 형제입니다. 대종사께서는 ‘일원은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라고 밝혀주셨고 정산종사께서는 ‘눈감고 분별 걷어들이면 나 하나요 눈뜨고 분별을 내면 눈 귀 코 로 나뉜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진리처로 돌아가면 모두가 하나입니다. 자비(慈悲) 인(仁) 은(恩)이 다 한 근원에서 발로된 것입니다.
춘원선생이 이런 글을 썼습니다. ‘이리저리 헤어가니 누구는 남이런가 모두 해야 20억의 많지 않은 식구로세 조그마한 지구위에 한해 한달 바라보며 한물 한공기 마시고 살다죽는 동족일세!’ 대종사께서 견성했다고 인증하셨답니다.

동척사업
모든 사업과 주장이 다같이 세상을 개척하는데에 힘이 되는 것을 알아서 서로 대동화합하자는 것입니다. 그러기로 하면 먼저 활용법(活用法)을 써야 합니다. 불지품 22장에 보면 ‘이 세상에 좋은 것은 좋은대로 낮은 것은 낮은대로 각각 경우를 따라 그곳에 마땅하게만 이용하면 우주 안의 모든 것이 다 나의 이용물이요 이세상 모든 것이 다 나의 옹호기관이다’ 적재적소에 활용을 잘 해야합니다. 귀머거리 청년이 있었습니다. 귀가 꽉 막힌 청년이 무슨 일 하겠습니까? 어디로 보내야 일을 할 수 있을까?하다 비행기 부속품 깍는 공장으로 보냈습니다. 비행기 부속품을 깍으니 얼마나 시끄럽겠어요. 귀가 잘 들리는 사람은 신경쇠약이 되어서 나가는데 귀머거리 청년은 잘 하더랍니다. 이것이 개인도 성공하고 단체도 성공하는 길입니다. 둘째에 가서는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야 합니다. 선은 시기할 것이 아니고 배워야 합니다. 악은 미워할 것이 아니라 난 저러지 말아야지 하고 배워야 합니다. 셋째는 강자약자진화상 요법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고려대 한승조 교수가 정리해서 말하기를 동학은 저항주의요 증산은 무저항주의며 대종사는 상생주의라 했습니다. 서로 서로 상생해야 모두 승리자로 끝이 나는 겁니다. 넷째는 서로 생각해 주어야 합니다. 주역에 보면 지(地)천(天) 태(泰)괘가 있습니다. 주역 공부하는 사람은 사람의 겉모습을 보는게 아니라 숨어있는 마음을 봅니다. 주역에는 64괘가 있는데 가장 태평성대인 것이 하늘은 땅을 생각하고 땅은 하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밑에 있는 것은 땅은 아래에 있으나 마음은 위로 올라가 하늘을 생각하고 하늘은 위에 있으나 마음은 아래로 내려와 땅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가정이 이상적일 때도 호주는 아내와 자식 생각하고 아내와 자식은 호주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통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북측은 남측 생각하고 남측은 북측 생각해야 합니다. 64괘 중에 가장 나쁜 괘가 무엇이냐? 천(天)지(地) 비(否) 괘입니다. 하늘은 하늘만 생각하고 땅은 땅만 생각하는 겁니다. 남편은 아내 생각 없이 술만 마시고 아내는 춤바람 나는 겁니다. 상대를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마음같이 빠른 것이 없습니다. 옛날 임금님이 여름에 화롯불을 피고 정사를 했는데 농부들이 논매고 피땀 흘리는데 같이 고를 느끼기 위해서였습니다.

한국 삼동윤리와 우리
정산종사께서는 ‘나는 평생 기쁜 일이 두가지가 있으니 이 나라에 태어난 일이요 대종사님을 만난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이 나라가 어떤 나라입니까? 단군의 천인합일이요 무궁사상을 원류로 하여 신라의 화랑도 고려의 팔관회, 조선의 선비도를 거쳐 삼원(三元)이신 수운, 증산, 소태산대종사에 이르러 세계사상을 재구성한 나라입니다. 5000년 동안 931회의 전쟁을 통해서 동양과 서양 사람들이 마음대로 짖밝던 고통을 겪고도 보복없이 참고 의연히 버티어 온 나라입니다. 때문에 동서양 모든 사상을 다 포용해서 일원대도를 꽃피울 수 있습니다. 은혜는 해(害) 속에서 나옵니다. 대종사님의 일원대도 정산종사님의 삼동윤리를 바탕으로 새삶 한삶 운동으로 광대무량한 낙원 세계를 전개합시다. 낙원세계라는 것은 사람만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우주만유 삼라만상이 다 같이 편안하게 잘 살자는 것입니다. 낙원세계 건설의 선구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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