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참회 대신성 대서원(大懺懷 大信誠 大誓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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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참회 대신성 대서원(大懺懷 大信誠 大誓願)
  • 한울안신문
  • 승인 2001.06.2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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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타원 김복환 교무"수위단 중앙단원


반갑습니다. 오늘 법회는 6·25합동 특별천도재를 지내는 소중하고 은혜로운 법회입니다. 인류가 설렘 속에 맞이한 새 천년. 새 천년의 첫 육일대재와 유월을 맞이해 전 교단적으로 우리는 6·25 동란으로 희생당한 많은 선영들이 완전한 천도 해탈을 받으심과 더불어 앞으로 세상은 새로운 삶과 거듭나는 삶 대진급의 삶을 사시길 염원합니다. 그러한 삶을 통해 반드시 이 나라가 통일 대업을 이룸과 동시에 온 인류가 평화의 세계, 광대무량한 낙원세계에서 살게되기를 염원하고 축원하는 특별천도재식을 거행하는 것입니다.
스승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한 해탈과 천도의 길, 상생상화하는 방법을 많이 가르쳐주셨습니다. 오늘은 여러분께 세 가지로 천도의 길을 일러드리고자 합니다.

죄업 녹이는 가장 빠른 길
첫째 대 참회(懺悔)의 길입니다.
우리는 모두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 마음도 내 마음대로 못한다는 것을 여러분들도 많이 느끼시죠? 내 마음조차 내 마음대로 못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일체 중생의 한결 같은 삶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왜 내 마음을 내 맘대로 못하고 살게 될까요?
바로 숙겁을 통해 쌓은 업 때문입니다. 수많은 생을 통해 몸과 입과 마음으로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지은 업 때문입니다. 애착과 탐착이 쌓이고 쌓여 나의 온전한 정신을 내 마음대로 못하고 내 몸을 내 마음대로 다루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애착 탐착을 벗어나고 업의 굴레에서 벗어난 대 자유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업장을 소멸시켜야 합니다. 업을 소멸시키려면, 바로 참회를 해야 합니다.
정산종사님께서는 「일념청정 숙업자멸 상생상화 만복흥륭(一念淸淨 宿業自滅 相生相和 萬福興隆)」이라 하셨습니다. 천도의 노래(위령가)에서도 「…한 생각 청정하올 때 연대의 문이 열리리」라고 했습니다. 해탈 천도로 나아가는 가장 빠른 길이 바로 참회입니다.
그러면, 참회만 하면 될까요? 과거에 지은 업을 참회하며 동시에 선업을 지어야 합니다. 바로 사참(事懺)이지요. 또한 원래의 자성이 공한 자리를 깨쳐 반조하는 이참(理懺)도 해야 합니다. 사참과 이참은 죄업을 녹이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민족의 업, 6·25
6·25사변이라는 민족의 고통은 누가 준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 민족이 쌓은 업입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앞으로 큰 전쟁이 있을 것이다. 그 목만 넘기면 한량없는 복이 넘칠 텐데, 그 목 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하셨습니다. 6·25는 바로 민족의 업이었습니다.
우주에는 한 가지도 원인 없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한 물건 한 생령도 우연히 되는 것은 없습니다. 바람 불고 태풍이 부는 것, 봄이 되면 씨앗이 싹트는 것도 다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 씨앗이 떨어져야 하고 또 씨앗만 땅에 떨어졌다고 자라나느냐? 뿌린 씨앗을 잘 가꿔야 좋은 재목으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인과보응의 이치는 우주 만유가 생성하고 발전하는 발전의 원리요, 질서를 유지하는 질서의 원리입니다.
오늘날은 어떤 세상입니까? 도덕이 땅에 떨어진 요즘입니다. 도덕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바로 인과보응의 이치가 도덕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숙겁을 통해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지은 업을 참회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형상있는 모습을 보려면 그 사람의 마음을 보면 알 수 있고, 사회의 혼란스러운 까닭은 그 사회의 도덕성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주세불의 법으로써 갖은 업을 녹이는 것. 그것이 바로 천도 불사입니다. 지극정성으로 하면 무위이화(無爲而化)로 알게 되고 업이 녹아납니다. 지난 6월10일,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 청운회 도덕 발양대회에서도 4·3민주항쟁으로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위한 천도기도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천도 기도의 기운이 돌아 현지인들에게서 많은 도움도 얻었고, 제주도에 원불교의 이미지를 좋게 심어주고 돌아왔습니다. 제주의 지명(地名)도 그냥 지어진 것이 아닙니다. 제(濟)주(州)라 함은 5대양 6대주를 주세성자의 법으로 구원하는 전진기지의 의미가 담긴 것입니다. 그래서 대산종사님께서는 제주도에 훈련원을 건립토록 하셨고, 비록 작은 규모의 건물이지만 그 이름은 국제훈련원이라고 지은 것도 다 미래세상에 대비하게 하신 것입니다.
제주에만 천도재의 기운이 돈 것이 아닙니다. 부산에서도 수많은 해병대 군인들이 죽었는데, 천도재를 지내고부터 사고가 줄었습니다. 또 모스크바 교당 봉불식에서도 교정원장님께서 특별천도재를 지내셨다고 합니다. 우리 앞에 나타나 있는 양계 세계가 밝아지려면, 어두운 음계 세계를 해원 상생 시켜야 합니다.
특별천도재는 억울한 넋, 한 많은 영혼을 위로하고 해원 상생시키는 것입니다. 영계가 맑아져 민족의 업이 녹아나 통일로 가는 길이 바로 특별천도재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특별천도재를 지내신 교도님들은 모두 민족과 인류의 겨레의 한을 풀어주는 재주(齋主) 역할을 하신 것입니다.
지극한 정성으로 참회하여 한 생각이 청정해질 때 업장은 스스로 소멸하게 됩니다. 참회를 잘 하면 거듭나는 삶이 됩니다. 거듭나는 삶은 곧 부활입니다. 자신의 부활 가정의 부활 겨레의 부활을 이룹시다. 통일의 그날까지 해원 상생의 참회기도를 올려야겠습니다. 오늘 이 특별천도재식 뿐 아니라 가정에 돌아가셔서도 끊임없는 참회생활 하시길 당부드립니다. 수도인의 하루는 아침은 서원정진하는 시간, 점심은 보은 감사생활하는 시간, 저녁은 참회 기도의 시간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참회는 거듭나고 새삶을 얻는 첫 번째 길입니다.

먼저 마음 밭을 깨끗이
완전한 해탈 천도로 거듭난 삶을 사는 두 번째 길은 대 신성(信誠)을 가꾸는 길입니다.
농사를 지을 때, 먼저 밭을 깨끗하게 갈고 난 뒤 씨를 뿌리기 마련입니다. 잡초 속에는 씨를 심을 수 없지요. 마찬가지로 마음 밭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인생의 요도를 일러주셨습니다. 요도라 함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걸어가야 하는 바른 길입니다.
인간은 자기의 정신을 깨쳐 개척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현대를 지식정보화사회라고 합니다. 지식정보가 중요시되는 세상일수록 마음을 잘 써야 하고 인간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정산종사님께서는 미래세상을 준비하는 것으로 “마음공부 잘 하여서 새 세상의 주인되라”하셨습니다.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 마음을 관리하지 못하여 가정붕괴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10대들의 폭력, 자녀들의 부적응은 모두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을 제대로 쓰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대종사님 법문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즉 태교부터 천도까지 아우르는 법문입니다. 내 마음 잘 쓰고 잘 살게 되는 법문입니다. 이 법을 믿고 회상을 믿고 스승을 믿어야 합니다. 이 법은 자신과 가정과 사회와 인류를 부활시키는 법입니다. 정산종사님께서는 사은은 부활의 법이요, 삼학은 원리를 말씀하신 것이며, 사요는 균등사회를 이루는 법이라고 하셨습니다.

자력은 타력의 근본, 타력은 자력의 근본
진리와 스승과 법과 회상과 하나되는 사대불이신심(四大不二信心)을 가진 사람이 진급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현재 자기가 가진 힘은 좀 부족하더라도 스승님들이 제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자력은 타력의 근본이 되고 타력은 자력의 근본이 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믿음을 가지면 부활할 수 있습니다.
대종사님을 비롯한 주세성자들은 천지의 대운을 타고 나셨습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화되었을 무렵, 대종사님께서는 산업사회에서 다시 지식정보사회로 넘어갈 것을 예견 하시고 우리에게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시며, 정신개벽의 요도를 내려주셨습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주세(主世)의 성인들은 천지의 대운을 타고 나오는지라, 중생들이 그 성인과 그 회상에 정성을 다 바치며 서원을 올리면 그 서원이 빨리 이루어지고, 그 반면에 불경하거나 훼방하면 죄벌이 또한 크게 미치나니, 다만 그 한 분뿐 아니라, 그러한 분과 심법(心法)이 완전히 합치된 사람도 그 위력이 또한 다름 없나니라」(신성품 19장) 하셨습니다. 대종사님의 법을 믿으면 큰 은혜가 옵니다.
여러분들 스스로 믿음의 점수를 매겨보시기 바랍니다. 믿음 속에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의 진리, 일원상의 진리가 다 들어있습니다. 믿음대로 살면 영생토록 마음이 편합니다.
형상 있는 것은 불에 녹거나 물에 흘러가거나 썩어서 없어질 수 있지만 사대불이신심 즉 믿음은 영원히 썩지 않는 영생의 보배입니다. 믿음 갖는다는 것은 성자의 삶에 내 삶을 접붙이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은 중생과 성자의 삶을 접붙이는 것이요, 우주에 다북찬 법신불 사은의 은혜와 위력이 대종사님의 법과 회상을 통해 우리에게 오도록 하는 길입니다.

집착을 버리고 깨달음으로
세 번째, 대 서원(誓願)의 길입니다. 서원은 완전하게 천도하는 길, 자력으로 천도하는 길입니다.
중생과 부처의 차이를 말하자면, 먼저 중생은 집착의 삶을 삽니다. ‘나’라는 상에 묶이고 탐진치 삼독심에 묶여 그 업의 노예가 되어 한없이 고통받으며 강급 윤회에 끌려 다니는 삶을 삽니다. 반면 부처님은 믿음과 큰 깨달음을 통해 참 나가 무엇인지 알고 우주 만유가 무엇인지 알고, 우주의 진리를 알기 때문에 당신 혼자의 삶에서 벗어나 제생의세(濟生醫世)의 삶, 일체중생을 다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려는 대 서원의 삶을 삽니다.
이 원상의 진리를 깨달으면 어떻게 된다고 하셨지요? 「우주 만유가 다 오가(吾家)의 소유인 줄을 안다」고 하셨습니다. 다 내 집안 내 자녀 내 형제인 줄 아니 품에 안지 않고는 못 견디는 것이지요. 여기 계신 어머니들 어떠십니까? 당신 잘 사는 것보다도 자녀들이 잘 먹고 잘 입는 것이 더 기쁘시지요? 대 서원의 삶이 그렇습니다. 부처님은 대 자비, 대 자유와 대 사랑으로 끝까지 인내해주는 삶을 삽니다. 중생은 속박과 이기심과 고통과 윤회의 삶, 부처님은 대 자유와 대 깨달음과 대 자비와 대 서원의 삶을 삽니다.
부처님이 부처님 되신 원인도 대 서원 하나에 있습니다. 과거 부처님, 새부처님 대종사님, 정산종사님, 대산종사님 등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되신 것은 믿음과 대 서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이 혼란하지만 그래도 유지되는 것은 성자들의 서원으로 우리가 양심을 지키기 때문입니다.
태양 빛은 구석진 곳, 그늘진 곳을 비추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자의 깨달음의 빛은 못 비추는 곳이 없습니다. 중생들로 하여금 밝은 삶, 대 자유의 삶을 살게하는 것은 바로 성자들의 서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서원을 세우고 살아야겠습니다.

통일의 그날까지, 진급 또 진급
참다운 사람은 참회의 삶, 신성의 삶, 서원의 삶을 삽니다. 대참회 대신성 대서원의 삶을 산다면 거듭나는 삶, 늘 새로운 삶을 살 것입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어제 일은 묻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생각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입니다. 항상 새롭게, 매일매일 오늘 처음 대종사님의 법을 만난 듯이 큰 믿음과 서원으로 감사 생활하고, 보은하는 삶을 살면 천여래 만보살이 나오는 나라가 될 것이요, 정신의 지도국 도덕의 부모국이 될 것입니다. 겨레의 아픔을 은생어해(恩生於害)로 돌려 통일의 그날까지 한마음 한뜻으로 나아갑시다. 참회와 믿음과 서원으로써 거듭나는 삶을 산다면 한없는 진급만이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서울교당 6월24일 6.25합동천도재에서

<정리: 이덕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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