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상의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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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상의 수행
  • 한울안신문
  • 승인 2001.09.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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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타원 김이현 종사


법통 혈통 심통 제자
일원상의 수행은 눈과 귀와 입으로 실천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일원상의 신앙은 말로 표현하여 믿는 것이요, 수행은 실천하는 것이지요. 대종사님께서 영산에 머무르실 때 ‘가난 제일이요, 무식 제일인 길룡리를 택하신 이유가 무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정산종사님 법어집에 ‘이 회상 펴시기 위해 여러생을 태어나셨는데 회상 펴실 준비를 위해 인연과 법연을 모으시느라 거진출진(居塵出塵)하신 것이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런 소리 들으면 인연에 욕심이 납니까? 안 납니까? 복 중에 복은 인연 복입니다. 지금 한 10여년쯤 전무출신을 하는 교무가 젊은 날 군대를 끝내고 직장을 알아보러 다니다 우연히 헌 책방에서 교전을 발견하고 읽었답니다. 교전을 읽는데 손에서 뗄 수가 없더랍니다. 갑자기 눈물이 쏟고 그래서 출가를 했다는군요. 이게 자기 스스로 된 것입니까? 저도 젊은날에는 몰랐는데 공부를 조금 해 보니 다 이유가 있더군요. 그게 다 법통, 혈통, 심통의 인연이 있어서 만나게 되는 겁니다. 대종사님께서도 ‘회상 100년안의 인연은 다 처음 만난 인연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이유도 다 그 까닭입니다. 대종사님께서 호렴하시고 씨앗을 뿌려 놓았으니 우리들은 길러서 키워야하는 복 받을 법통, 혈통, 심통 제자들인 겁니다.
일원상의 수행에 보면 「…원만 구족(圓滿具足)하고 지공 무사(至公無私)한 각자의 마음을 알자는 것이며, 또는 일원상과 같이 원만 구족하고 지공 무사한 각자의 마음을 양성하자는 것이며, 또는 일원상과 같이 원만 구족하고 지공 무사한 각자의 마음을 사용하자는 것이 곧 일원상의 수행이니라.」하고 나와 있습니다. 각자의 마음을 알고 각자의 마음을 양성하고 각자의 마음을 사용하자는 말인데 이 각자의 마음이 누구의 마음입니까? 남의 마음이 아니죠. 우리 마음 중에 원만 구족한 마음을 체험하셨어요? 이 각자의 마음이 희노애락을 쓰는 마음입니까? 아니면 분별을 낸 마음입니까? 이 마음을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합니다. 양성한다는 것은 기른다는 뜻입니다. 일원상 서원문에는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고’ 라고 나와 있습니다. 마음을 양성하고 수호하면 자연히 각자의 몸도 원만하게 사용되는 것입니다.

일있을 때와 일없을 때 공부
일원상의 진리에 보면 텅빈 것이 광명이 있어 조화를 갖는다고 말씀 드렸죠. 결국 텅 비어야 원만합니다. 텅 비었다는 것은 다 받아 들입니다. 또한 작용할 때는 지공 무사하게 작용합니다. 우리가 일이 없으면 기르는 공부 ‘원만 구족한 본래 마음’을 기르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 공부가 뭐가 있지요? 염불, 좌선, 기도, 독경 등이 있습니다. 자신이 마음을 얼마나 꿰뚫는가? 주로 단전에 가만히 있는가? 안 있는가?를 봐야 합니다. 얼마나 말을 잘 듣는지? 자기가 자기를 가르치는 것, 양성공부는 알뜰히 해야 합니다. 일이 없을 때는 그 자리에서 쉬는 거예요. 염불을 일심으로 하고 밥 먹으면서 일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저도 밥을 먹으면서 ‘얼마나 돌아다니나’ 하고 본답니다. 또한, 각자의 마음을 쓸 때는 지공 무사해야 합니다. 이해관계나 감정의 문제나 원근친소에 끌리는 마음, 위신의 문제에 마음이 걸리면 안 됩니다. 9인 선진님들은 어땠어요? 9인 선진님에 대한 노래를 부르면 목이 메입니다. 일이 있으면 지공 무사하게 하고 일이 없을 때는 다 털어 놓아야 합니다. 나 없으매 큰 나가 드러나고 좌산 종법사님 말씀처럼 안으로 안으로 진아를 찾고 밖으로 밖으로 대아를 찾아야 합니다. 대아는 지공 무사한 것입니다. 취사할 때는 지공 무사하게 해야 합니다. 돈을 맡겨보고 사람을 맡겨보고 시간을 맡겨보면 압니다. 질적으로 부분공심과 전체공심이 있는데 나를 온통 참으로 바치면 전체에도 통해야 합니다. 적은 욕심으로하면 안 됩니다. 작은 살림에서 벗어나 국제 사업을 해야합니다. 대산 종사님이 “모두 성(性)을 원만(圓滿)씨로 바꿨으면 좋겠다” 하시니 제자 중에 “이름은 무엇으로 하는 것이 좋겠냐?”고 묻자 “무사(無私)로 하자”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는군요. 늘 원만을 사랑하고 추모하고 일 없을 때 그 자리를 키우는 것 또한, 일 있을 때는 큰 나의 입장에서 지공 무사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일을 할 때 항상 은혜를 발견해야 합니다. 텅빈 것 중에 은혜를 밝혀 주신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은혜로 하면 자만심이 나오지 않습니다. 체성에 합하기 위해서 원만구족하도록 하며 위력을 얻기 위해 지공 무사하게 하는 것 그것이 보은하는 길입니다.

지성이 성공열쇠
출가위를 불퇴전이라고 하지요. 출가위는 남이 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찾아서 남을 돕습니다. 그러니 출가위는 부지런 딴딴이시지요. 성자들의 공동 문패는 정성입니다. 대산 종사님께서 한 제자가 숨을 거칠게 쉬는 걸 보시고 제자에게 숨을 길고 가늘게 쉬는 공부를 표준으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자가 지성으로 공부를 하니 나중에는 숨이 깊고 고르게 되었답니다. 공부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지성으로 하다 보면 모든 일이 이루어집니다.
이 몸이 가난한 집에 사나 부자집에 사나 죽으면 어째요? 덜 변합니까? 다 같은 것인데 심신수호 할 때 본래 나를 찾는 마음 챙기는 것을 지성으로 하라 하셨어요. 대종사님은 하루일과에 다 정해 주셨어요. 봉사라도 하게 해 주셨거든요. 그런데 사람마다 각자의 특성이라는 것은 있어요? 부지런히 걷는 사람, 뚜벅뚜벅 걷는 사람도 있어요. 사람마다 특성은 있지만 모든 사람이 지공무사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경계를 무서워하지 않고 경계 당할 때 마다 자신을 시험해 봅니다. 이렇게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보물을 잘 활용하는 저희들이 되어야 겠어요. 강의를 듣고 일원상장 전체를 연결해서 생각해도 복잡하지 않고 어렵지 않으시면 차차 연마도 하시고 문답하시면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전재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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