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든 수행자
상태바
철든 수행자
  • 한울안신문
  • 승인 2001.10.12 12: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효산 손정윤 법사


세상일 한치 앞도 모른다고 하지요. 공부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그렇게 차이가 난다는 거죠. 이 자리에서 물론 나이든 분들이 계시지만 우리 교당 법회에 어린애들도 오고 그럽니다. 그러면 저는 앞으로 100년 후에 이 자리에 계신 분들과 어린애들까지 아마 살아있을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그리고 건물들도 또한 그대로 있을까요? 물어봅니다. 아마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네 인생은 시간이 지나면 다 티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티끌의 존재로 돌아가기 전 우리는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이제 공부에 힘쓸 때
과거 원불교는 자신의 공부보다도 사업에 더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교당은 일단 법당이 있어야 하니까 사업을 강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법당이 세워지면 공부가 됩니다.
원불교 교단의 역사는 86년이 되었습니다. 공부가 되어야 무상대도 앞으로 우리가 발전하는 것이지 언제까지 사업하면서 공부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법당이 있어야 사업이 되는 것입니다. 법당이 지어지고 나서 공부가 잘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교당도 많이 세워졌으니 공부를 많이 해야 할 때입니다. 계속 사업만을 내세우면 공부를 할 수가 없습니다.
과거 인구증가로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정부의 정책이 시행되었습니다. 그래서 핵가족이 많습니다. 그 결과 10년 20년 후에는 인구증가율이 낮았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 안가서는 인구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다가올 것입니다. 경제가 불안정하여 농촌의 쌀은 남아돌아 요즘은 밥 많이 먹는 사람이 애국자입니다. 이처럼 수많은 변화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도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살아가는 방법이 다 다릅니다. 또 생 로 병 사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공부인 것입니다. 대종사님은 자의중연공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젠 교당도 많이 세워졌으니 공부를 할 시기인 것입니다. 보은회 여러분의 사업이 더욱더 잘 되기 위해서는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삶의 질은 공부로 향상되는 것
우리 인간에게는 저마다의 역할이 다 있습니다. 저는 권력에 관한, 돈에 관한 일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공부만 열심히 해 왔습니다. 넉넉한 형편에서 생활하였고 또한 주위 분들의 이해도 부족했지만 마음공부를 통한 수행, 출가를 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울타리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 즉, 권력과 명예에 끌려가지 않는 것 그것이 출가인 것입니다.
오직 공부하는 길만으로 살아왔습니다. 주위에서 많이 손해보지 않느냐는 말에 수행을 하지 않았다면 그러겠지만 수행을 해서 절대 그런 마음이 일지 않았습니다.
인생이 무엇이냐는 말에 저는 ‘안개잡기’라고 말합니다. 어릴 때 눈앞에 보이는 밤안개가 신비스럽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그 안개를 잡아 집안에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에 분명히 잡힐 것 같았는데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절대 잡히지 않는 것입니다.
원불교 공부를 하고 나서야 그 이치를 깨달았습니다. 바로 인생의 부귀영화 남편, 부인, 자식, 살림 모든 것이 안개였던 것입니다. 마음 공부를 통한 깨침이었습니다.
요즘 ‘삶의 질’에 대한 말이 많습니다. 그 예로 주 5일 근무제 도입이 대두되고 있는 것처럼 과거 ‘양’에 만족한 삶이 아닌 ‘질’의 향상이 진정한 삶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행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물질의 풍요속에서 삶의 질은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자연을 파괴하고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바로 잘 사는 사람이 부정부패의 단상에 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없고, 배우지 못한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해도 전혀 도움이 안됩니다. 아는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물질의 풍요가 이루어지면 도덕적 타락은 당연해지는 것입니다. 바로 공부심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삶의 질은 공부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지 물질의 풍요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무상대도 원불교 교단이 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종사님의 공부와 사업을 권장하신 말씀을 받들어 지금 우리가 공부와 사업을 병행한다는 것은 아주 큰 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눈푸른 수행자가 되자
불교에서는 공부를 한 수행자를 종사라고 합니다. 지해(智解)종사와 명안(明眼)종사 두 가지가 있습니다. 지식이 많은 종사를 지해(智解)종사라고 하며, 마음의 눈까지도 볼 수 있는 종사를 명안(明眼)종사라고 합니다. 육조대사때 이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육조대사는 80여명의 제자들에게 지해(智解)종사가 아닌 명안(明眼)종사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대종사님은 ‘나를 본 사람의 눈이라도 보려고 할 것이다’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분들의 눈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의 눈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왜 다름이 없었을까요? 그것은 육신의 눈이 아닌 지해(智解)의 눈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형상만 보고 마음의 눈을 보지 못하는 것에 흔히들 ‘생선 눈’이다 그러지요 그런 생선의 눈이 아닌 눈 푸른 수행자가 바로 명안(明眼)종사인 것입니다. 모든 교도님들이 자신감과 더불어 눈 푸른 수행자가 된다면 명안(明眼)종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흔히들 진리는 깨친다고 하는데 진리는 체험하는 것입니다. 요리프로에서 보는 요리를 직접해보면 그 맛이 나지 않습니다. 당연한 것이지요. 그 요리의 맛을 내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이 필요한 것입니다. 마음공부도 체험하면서 확인해 나가는 것입니다. 길을 몰라 찾아 헤매는 것처럼 공부도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인생을 고통과 역경, 슬픔없이 편안히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드라마를 볼때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이 없다면 재미가 없는 것처럼 인생은 갈등, 고통, 역경이 동반되어야 비로소 인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연습을 통해 공부는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원불교 교리 공부중 어느 하나만 꼬집어 공부하면 모든 것이 공부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대종경 성리품 11장이 가장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속에 삼학팔조(三學八條)가 다 들어 있습니다. 30년 전 대종사님 일대기를 쓰겠다 했더니 “네가 대종사님 심정이 되어서 해라”하셨습니다. 어떻게 해야 그 마음이 되겠는가 생각했지요.

변산구곡로 석립청수성
성리품 11장에 대종사님 미래관이 나와 있습니다. ‘사람살기 좋은 세상이 올 것이다’는 그 말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변산구곡(邊山九曲)이라는 것이 있지요. 그것은 경치가 좋다는 뜻입니다. 누구나 경치가 빼어나면 그곳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일 것입니다. 바로 변산구곡(邊山九曲) 세상이 대종사님의 진리관인 것입니다. 마음공부는 무형상을 내가 마음대로 이루는 것입니다. 이런 변산구곡(邊山九曲) 세상을 위해서는 우리는 눈앞에 조그만 고통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참고 견뎌야 합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따뜻한 봄이 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말법시대, 기독교에서는 종말론이 있지만 원불교는 전망품에서 ‘이 세상은 희망적이다’는 긍정적 세계관을 담고 있습니다. 희망과 꿈을 갖고 인내를 가지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923년(원기 9년) 갑자년 총부건물이 세워졌습니다. 갑자일이 시작되면 모든것이 잘 된다는 한국 전통의 갑자신앙이 있었습니다. 그 해는 흉년이 들어 많은 사람이 굶어죽고 50만이 하루 한끼도 먹기 힘든 해였습니다. 그런데 대종사님은 갑자신앙을 믿고 일을 추진하셨습니다. 지금의 고난과 역경을 참아내면 반드시 좋은 세상이 온다는 확신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이렇듯 인생의 역경을 견뎌내고 참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대종사님을 통해서 배울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 생활 속에서 평등, 자유, 평화(은혜)를 추구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가정환경에 따라 인간이 바뀌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 갚기 운동으로 내 빚은 내가 갚아간다는 일념으로 삶을 일구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은 생명을 다하면 누구나 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남에게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 다 할 때까지 도와주는 은혜 갚기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사탕을 주며 달래지만, 철이 든 사람은 스스로 알아가는 것입니다.
마음공부를 하시는 교도님들은 종교, 철학, 예술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종교적 맹신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없는 역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모든 것을 체험해 나가면서 진정한 공부심을 느끼고 수행할 때 우리는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정리 김창중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