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종교의 울을 넘어 어떻게 하나로 살 것인가
상태바
민족, 종교의 울을 넘어 어떻게 하나로 살 것인가
  • 전재만
  • 승인 2002.06.28 0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회(김성곤): 한국은 근세에 들어오면서 민족주의가 대두가 되었고 그러면서 양반·적서의 차별도 없어지고 어느 정도 정의와 법이라는 것이 모든 한국인에게 개념적으로는 공평하게 적용이 되는데, 한국인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과연 법과 정의와 인권이 평등하게 적용되고 있느냐를 생각해보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런 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민족과 종교의 울을 넘어서 어떻게 하나로 살 것인가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최희공: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볼 때 아직도 전쟁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근본 원인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민족적 갈등, 또 하나는 종교적 갈등입니다. 이 두 가지 문제
가 해결되지 않는 한 세계평화가 요원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족과 종교의 울을 넘어서야 합니
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족과 종교의 울을 넘어서는 큰 진리
관이나 윤리관·세계관을 확립해서 그것이 사회화돼야 합니
다. 현재 우리가 당면해 있는 외국 노동자문제라든가 여러
가지 차별문제, 민족, 종교 문제 등을 해결함과 동시에 그 근
본이 되고 있는 더 큰 새로운 진리관과 세계관과 윤리관을
확립하는데 함께 노력해야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민족도 개화된지 100여 년이 되어서 상당히 과거보다
평등사상이나 인권이 높아졌지만 아직 세계와 접한지가 얼마
안되기 때문에 외국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근본 개
념이 안 잡혀 있어요.
이 문제에 대해 많은 대화를 통해서 우리 국민들이 과연 어
떤 사상을 가지고 외국인을 대해야 되며 현재 불합리한 제도
를 어떻게 고쳐가야 되며, 우리가 어떤 길로 나가야되는가
하는 것을 우리 지성인들이 연구해서 길을 밝혀줘야 합니다.
김해성 한국 땅에 40만 명에 육박하는 외국인 노동자와 중국
동포들이 이 땅에 살며 노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국적이
다르고 민족이 다르고 또는 언어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만으로 차별을 당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현실입니다.
외국인 노동자 상담을 받아보면 외국인 노동자들 중에서도
러시아라든지 이란, 이집트 이런 노동자들은 매맞고 찾아오
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대신에 같은 외국인 노동자들이면서
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미얀마,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키
도 작고 피부색이 검은 친구들은 항상 매를 맞고 찾아와서
도와달라고 하소연하는 모습을 볼 때 한국사람들이 아직도
피부색이나 외모에 대한 차별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생각
을 지울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서 온 친구들 같
은 경우는 이구동성으로 아프리카에서 왔다고 얘기하지 않습
니다. 다 미국에서 왔다고 얘기를 하는 거죠. 아프리카에서
왔다고 하면 깜둥이라고 손가락질하고 놀리는데, 미국에서
왔다고 하면 차 한잔 드시라고 하면서 영어 좀 배울 수 없냐
고, 대접이 180도 달라진다는 거죠. 그런 모습에서 피부색에
대한 차별, 또는 강대국과 약소 민족에 대한 차별로 그대로
연결되는 것을 보게됩니다.
이번에 국가 인권위원회가 발족하는 날 진정서를 내러 갔는
데, 스리랑카인, 아프리카인, 독일인, 미국인이 계셨습니다.
독일, 미국인은 백인이고, 스리랑카 친구는 좀더 검고, 아프
리카에서 온 친구는 완전 흑인이고, 저까지 다섯입니다. 크레
파스나 물감회사에 제작되는 살색이라는 이름을 다 바꿔달라
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게 국가 인권의 진정 대상이냐’
고 하는 거에요. 그래서 이 피부색에 살색이라고 하는 표기
를 해서 아이들이 피부색에 살색을 칠하게 하면서 우리색만
살색이라고 하는 의식이 있기 때문에, 커서도 이런 피부색에
대한 차별이 생기지 않느냐고 얘기 하면서, 아이들은 원칙에
입각해 배울 권리가 있는데 우리색만 살색이라는 이름을 붙
여놓고 그것을 강요하다 보니 어린이들의 인권이 침해되고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다른 질문을 던진 것이 ‘여기 온 미국 목
사님이나 독일 목사님은 왜 진정을 함께 합니까?’ 하니 이
분들 대답이 “흑인이나 피부색이 검은 친구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은 다아는 일이지만, 백인들에게는 한국사람들이
너무 친절하게 잘해주더군요. 그것 또한 차별행위이기 때문
에 우리는 함께 진정을 합니다”하고 답변을 했습니다. 그래
서 피부색이나 민족, 국적에 대한 차별이 한국에서는 엄연
히 지금 보편화되고 현실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사회 그러니까 강자에 대해서는 잘하고 가까워지려고 그러
고, 약자는 무시하는 그 마음이 있다는 거죠.
최희공 옛날에 우리가 적서차별하고 양반과 상민을 차별하고
강약을 차별하는 그 마음이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그렇게 나
타난 거죠.
사회 스리랑카 스님께 여쭙고 싶은데, 다른 나라를 가보셨는
지 잘 모르겠지만 한국인이 다른 외국인에 비해서 자기하고
다른 종족, 민족에 대해서 유별나게 더 차별적인지, 아닌지
외국인으로서 어떻게 느끼시는지요.
바티커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사람들 같은 강대국 사
람들과 우리 같은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필리핀, 미얀마 같
은 약소국 사람들을 만나면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볼
수 있는 게 있어요. 서울에서 길을 잃어 한국사람 10명에게
물어보면 한 명만 길을 가르쳐줘요. 그런데 우리하고 같이
가는 미국 학생이 길 물어보면 잘 가르쳐줘요. 그런 경우 참
많아요. 미국 것은 다 받아들이고 약소국 사람들은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고, 아무것
도 할 수 없으니까 이 사람들은 그냥 놔둬야되고 쓸데도 없
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회 우리끼리는 잘 챙기면서 왜 외국인한테는 잘 안 되는
건지 모르겠네요.
바티커 약소국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차별하는 한국인에게는 하루 이틀 얘기해서 안 끝나요. 외국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가르쳐주고 그것이 오래
되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제가 미국에서 얘기를 들었는데, 미국사람이 흑인을 무
시하는 것보다 한국사람이 흑인을 무시하는 정도가 더 심하
다고 그러더라구요. 그 얘기는 한국사람이 한편으론 정이 많
지만 아직 외국인에 대한 경험이 짧기 때문에 다양성에 익숙
하지 않은 것도 원인이 아닐까요.
최서연 저도 한번은 명절 대재 행사가 있어서 외국인을 교당
으로 초청했어요. 그랬더니 외국인 열 다섯 분 정도가 교당
으로 왔어요. 나중에 교당에 계시는 교도님들이 저한테 와서
“어떻게 저렇게 시꺼매요?” 그러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솔직하게 말씀을 했어요. “사람으로 안보이시죠?”그랬더니,
“그러네요.”하고 솔직히 대답을 하세요. 그래서 제가 “다
사람입니다. 피부색이 달라도 배고프면 다 밥먹는 사람이고,
기분 나쁘면 화내고 기분 좋으면 웃는, 다 그런 사람입니
다” 또 처음에 왔을 때는 밥을 차렸는데, 저하고 그 노동자
들하고만 따로 먹게 해서, 제가 교도님들 불러서 “우리만
이렇게 먹게 하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같이 섞여서 얘기
하면서 먹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얘기하는 그런 수준이었
는데, 그 다음에는 이제 좀 가서 “맛있게 드세요” 말씀도
하고 얘기도 하고 그러는 것을 보면서 자꾸 만날 수 있게 하
고 경험할 수 있게 하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
니다.
최희공 제가 볼 때는 우리 민족이 무슨 꼭 결함이 있어서 그
런 것이 아니라 세계 사람 모두가 민족주의적인 요소가 다
있는데, 우리 나라는 저 동쪽 한 구석에 있어서 또 다른 나
라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어요. 예를 들어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쪽 사람들은 실크로드를 통해 왔다갔다하면서 자연적으
로 여러 사람을 접하게 되었고 이게 다 형제 부모라는 느낌
이 있었는데, 우리들은 그 동안 100년 전에는 전혀 외국 사
람 본 적도 없고 갑자기 봤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이것을 아
직 흡수할 수 있는 적응 자세가 안 되어 있는 것입니다.
바티커 외국 노동자들 싫어해도 괜찮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
만나서 ‘냄새나요’ 하고 얘기해요. 그런거 얘기 안하고 있
거나, 아니면 다른 데 있으면 되는데, 왜 옆에서 냄새난다고
그렇게 얘기해야 되나요. 또 “일하러 왔어요?”라고 물어보
고 “뭐 하러 한국에 일하러 왔어요?”라고 물어봅니다. 그
때 그 외국인 노동자의 마음은 어떻겠어요.
김해성 한국의 사회구조적인 모습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
다. 외국인들 같은 경우 지금까지 40만 명 중 80%이상이 불
법체류자들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때려도, 월급을 주지 않아
도, 사기 폭행을 당해도 이 사람들이 경찰서에 가서 신고하
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요. 그 신분적인 약점 때문
에 어쨌든 신고하지 못하는 거죠. 신고하러 갔다가는 자신의
불법 체류 사실이 적발되고 체포되서 강제 추방당하는 거죠.
그러기 때문에 ‘함부로 해도 괜찮다’는 구조적인 잘못에
국민의식이 좀먹어가고 있습니다.
사회 이때까지는 정서적인 얘기를 했는데, 정리하자면 한국
인이 외국인에 대한 체험의 부족, 또 다양성에 대한 인식의
부족, 이런 것 때문에 외국인에 대한 거부감이 있고, 또 하나
는 강자 약자에 대한 차별이 피부가 검거나 가난한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제
도적인 차별로 인해 불법 체류자라는 신분적 약점에 의한 차
별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도적인 면으로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까요?
김해성 국민의 의식수준을 개선시켜나가는 교육이라든지 훈
련, 선전 등 홍보가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
다. 똑같은 사람이고 똑같은 귀한 자식이고, 부모일 수 있다
는 것이 한국국민들에게 이해가 되고, 두 번째가 법적 제도
적인 장치로 가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성희롱이나
성적 차별에 대해서 여성부에서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요즘 남성들이 직장에서 아주 몸조심을 하듯이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피부색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민족이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는 것도 우리가 처벌할 수 있고 법적인
강제력으로 제재해야 이런 부분들이 개선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희공 우리가 초등학교, 중학교 교육을 통해서 전혀 외국인
의 인권문제에 대해 배운적도 경험도 없어요. 그런데 세계화
가 되어가기 때문에 분명히 이런 것이 자꾸 문제가 생기는
데, 어린이들한테 모든 사람들은 흑인이건 백인이건 다 같은
인권을 가지고 있고 다 소중하다, 사람 자체가 소중하다는
교육이 안 돼있다는 거죠. 그러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교육과정에 그 부분이 고려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서연 아이들은 순수해서 교당에 있을 때보면 어른들은 외
국인 노동자들한테 잘 안 오는데 애들은 와서 얘기를 해요.
그런 걸 보면서 역시 어릴 때부터 경험을 하면 피부색과 관
계없이 평등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회 원불교에서는 이 부분에 먼저 뜻을 세우고 가신 분이
최서연교무님이란 생각을 합니다. 원불교를 떠나서 이런 부
분에 대한 사회의 각성과 참여의 필요에 대해서 한말씀을 해
주시죠.
최서연 올해 종법사님께서 강자 약자 진화상의 요법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 법문을 받들면서 외국인 노동자 문제
를 어떻게 아시고 그 부분에 관심을 가지라고 하신 법문인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강자 약자 진화상의 요법이라고 하면 약
자인 사람은 강자가 도와줘서 강자로 발전하도록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까.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 땅의 약자인데 이 분
들을 강자로 만들면 서로 서로가 이익이죠. 우리 나라 좋아
지고 그 사람들 나라들 좋아지고 그러면 그 이익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분들에게 잘하는 것이
결국 우리가 좋아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불쌍한 사람 배고플 때 밥 주고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고 생각합니다. 제도를 바르게 만들지 않고 사람들 하나 하
나가 깨어나지 않으면 모든 문제가 배고픈 사람 밥 주는 식
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가만히 역사를 보면 그냥 진화되지
않아요. 노력하지 않고 그냥 있어서는 발전이라는 것이 없어
요. 외국인 노동자문제도 세상이 점점 흘러가서 인지가 발달
되면 해결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이렇게 많은 문제가
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인권침해를 당하고 마음에 원한
을 품고 있는데, 이것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강자 약자 진
화상의 법문’을 받드는 우리들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고 생각합니다. 거리에서 외치는 것도 중요하고 한사람 한
사람 만났을 때도 친절하게 해주고 금수초목까지 다 동포라
고 그랬는데 피부색만 다르고 똑같은 사람인데 이 분들에 대
해서 같은 동포라는 것을 느끼는 공부를 해야 됩니다. 마음
공부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해성 성경에도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
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는 말씀
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했는
데 의는 옳을 의(義)자 입니다. 옳을 의(義)자는 양머리(羊)에
나 아(我)자 입니다. 내 머리 위에 양을 떠받드는 것이 옳을
의라는 것이죠. 양이 공격할 줄 모르는 가장 연약한 존재이
고 성경에 보면 예수의 수난을 양에다가 비유를 하거든요.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털을 깎이는 어미양처럼 입한번
열지 않고 죽어가는 존재를 예수라고 표현을 합니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양과 같은 존재가 누굴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소년 소녀 가장들, 독거노인들, 장애인들, 미흡하지
만 정부가 어느 정도 책임을 지려고 하는 그런 단계에 와 있
습니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들 같은 경우는 불법체류자라
고 하는 신분적인 약점에 언어도 통하지 않고 피부색도 다르
고 이중 삼중의 이 모순 속에서 이들이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양과 같은 존재가 외국인 노동자가 아닐까 생각합니
다. 바로 이 양과 같은 존재를 떠받들고 모시고 보살필 수
있는 경지에 갈 때 옳을 의가 실현되는 사회가 우리에게 온
다는 거죠. 참혹한 삶 속에 사는 그 사람들을 떠받들고 섬기
고 보살피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고 의로운 일이고 착한 일일
수 있는데 ‘새 삶’을 먼저 실천하고자 하는 우리 종교인들
이 나서서 이들을 떠받들고 보살피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희공 그렇죠. 그렇지만 아직 일반사회가 이것을 모르는 상
태이니까 이런 것을 먼저 깨친 분들이 먼저 이런 일을 하고
홍보를 하고 노력을 해서 그런 사회로 자꾸 가야되겠죠. 그
렇지만 예전에 우리가 엄청난 차별제도에서 노력을 해서 개
선되어져간 것처럼 우리도 이 분야를 노력을 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민족과 피부색과 종족에 상관없이 다 형제
라는 것을 깨쳐야 돼요. 또한 여러 가지 보살펴 줄 수 있는
마음자세를 가지고 종교인이 교육도 시키고 노력도 해야겠
죠. 앞으로 새삶회에서 그런 역할을 하고 도움도 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사회 궁극적으로는 저는 하나의 세계를 염원 하는데, 모든
민족의 구성원들이 어느 나라에 가서든지 자유롭게 노동도
하고 의료보험도 되고 또 자유롭게 교육도 받고 어느 개인도
차별 못하는 인류 보편의 세계의 법이 구현되는 날이 되기까
지 계속 노력하다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그게 가장 이상
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해성 피부색이 다르거나 언어가 다르다고 차별 받는다는
주장을 했습니다만은 사실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어요. 같은
민족이라고 평등하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에 와 있는 중국 동포들 같은 경우는 중국국적자일 뿐이
고 같은 외국인 노동자, 불법 체류자일 뿐이에요. 그래서 외
국인들과 똑같이 숨어다니고 피해다니고 도망을 쳐야 되고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같은 민족이라고 하는 것도 의미가
없는 그런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런 부분이 정부에
의해서까지 자행된다고 하는 것이 안타까운 부분이 예를 들
면 1999년에 재외동포법이라고 해서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
적 지위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는데, 그 법에 의하면 2조 1
항에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출국한 사람은 우리 동포고 그
렇지 않은 사람은 우리 동포가 아니라는 거에요. 대한민국
여권이라는 것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에 비로소 대한민국
국호가 생기고 여권이 만들어져서 그 여권을 가지고 나간 거
죠. 그렇다면 1948년 이전에 나간 사람은 동포도 아니고 민
족도 아니라는 뜻이죠. 결과적으로 구 소련 지역에 있는 고
려인이라고 부르는 동포들이나 중국에 있는 동포들, 일본에
먼저 나갔던 동포들은 같은 민족이 아니라는 거죠.
48년 이전에 떠나간 사람들은 일제 식민 통치하에서 먹고살
기 위해 간 사람들, 혹은 정신대, 강제 징병, 징용이나 나라
를 위해서 싸우러 간 사람들이거나 그들의 자손들이거든요.
그들은 동포도 아니고 그냥 공부하러 간 사람은 동포고 이런
차별적인 것을 지금도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 돕기 하면서 실패했다는 자괴감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도와준 외국인이 본국으로 돌
아가 한국에서 배운대로 자국민을 착취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외국인 돕기 운동에 큰 전환점으로 항상 자국에
돌아가 약자를 도와주는 사람이 되라고 당부합니다.
사회 감사합니다. 시간상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요약정리:
박동욱 편집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