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은 정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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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은 정당한가?
  • 한울안신문
  • 승인 2002.10.2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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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새삶대화 " 10월3일 " 시민선방


사 회 : 김성곤(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장"새삶회 편집인)
참석자 : 이원삼 교수 (이슬람문화연구소장)
김웅태 신부 (카톨릭대 종교학과 교수)
박수현 목사 (한국기독교장로회 여교역자 협의회 총무)
진월 스님 (대한불교 조계종 국제교류위원회 부위원장)
최영돈 (고려대 교수"새삶회장)
이슬람과 서구의 역사적 대립 어떻게 볼 것인가
사회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중동지역은 2천년 전에 기독교가 생기면서 그 다음에 로마제국이 점령을 했습니다. 이슬람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상당부분은 기독교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7세기에 무하마드가 이슬람을 창시하면서 짧은 시간에 이슬람이 중동지역을 지배했습니다. 11세기인 콘스탄티노플 대제시대에 십자군 운동이 있어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중동의 일부지역을 로마 카톨릭이 지배를 했지만 다시 이슬람이 예루살렘을 수복하고 오스만제국이 생기면서는 이슬람이 중동은 물론이고 유럽의 남부지역까지 지배했습니다. 이렇게 중동을 이슬람과 기독교가 서로 뺏고 빼앗기는 그런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와서 산업혁명에 힘입어 서구의 자본들이 중동지역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18, 19세기에는 중동지역이 유럽의 식민지로 전락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2차 대전 이후에 중동지역이 다시 유럽에서 독립을 하지만 아직도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는 많은 중동의 국가들이 서구의 영향권 하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 와중에 이스라엘이 서구의 도움을 받아서 독립이 되고 그러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1960년대 이후 끊임없이 전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에는 이란의 호메이니 정권이 들어서면서 미국과 대립을 하게 되고 1990년대 걸프전쟁이 일어나게 되고, 이어서 9.11사태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아직 전쟁은 시작되지 않았습니다만 후세인 정권과 미국, 영국이 연대하는 서구세력과 전쟁위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립을 이슬람권과 기독교권의 대립으로 보는 분도 있고 아랍민족주의와 서구 자본주의의 대립으로 보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심지어 문명권과 비문명권의 대립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 중동지역에 대한 성격분석이 여러 가지인데 먼저 이원삼 교수님께서 이슬람 문화전문가의 시각에서 중동의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말씀을 해 주시죠.
이원삼 무하마드가 610년에 처음으로 계시를 받는데 영어식 발음으로 마호멧이고 실제는 무하마드입니다. ‘한 손에 칼, 한 손에 코란’이란 말도 십자군 원정 때 서구에서 만들어낸 말입니다. 이슬람교는 7세기 때 사우디에서부터 시작해서 불과 1백년 사이에 중국 남부지역에서 스페인 남부지역까지 다 점령을 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냐 하면 포용과 관용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전쟁에서 지면 죽을 각오를 하는데 이슬람 세력이 점령을 하고 나서 선언하는 것은 신앙의 자유, 남녀평등, 노예해방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굉장히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선언적인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보장했는데 여성에게도 재산권과 상속권 등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다른 종교 사람들과도 같이 어울려서 살았고 유태인들에게도 종교의 자유를 허용했습니다. 이슬람교 인구가 13억에서 16억 정도 되는데 이슬람교가 빠르게 퍼진 것도 기적이지만 한번 퍼진 지역은 영원히 이슬람 지역이 된다는 것도 기적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면 종교가 생활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활규범이나 법을 만드는 근원 첫번째가 코란이고 두번째가 무하마드 언행록인 하디스 입니다. 생활 그 자체가 신앙이고 법이고 풍습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번 이슬람은 영원히 이슬람이 되는 것이죠. 사진 3: 이원삼
사회 그동안 유럽을 대변했던 것은 기독교이고 기독교 중에서도 카톨릭이 유럽을 대표했는데 김웅태 신부님께서 카톨릭의 입장에서 보는 중동 전쟁의 의미를 말씀해 주십시오.
김웅태 저도 이 부분에 전문가는 아니라서 상식적인 수준에서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는데 전쟁이란 것을 ‘종교’간의 대결로 보기보다는 ‘종교인’간의 대결로 보는 것이 어떨지요. 종교에서는 서로 사랑하고 평화를 가르치는데 종교적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의 정치적 패권이나 경제적 이익을 대변하는 그런 관계 안에서 전쟁을 수행하다 보면 그것이 종교 문화권과 연관되기 때문에 종교전의 양상을 띠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이라크 혹은 9.11사태 이후를 종교간의 충돌이라든가 문명간의 전쟁으로 보는 해석도 있지만은 많은 것이 정치?경제문제와 상당히 많이 결부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세계종교의 이해’라는 과목을 공부했는데 이슬람도 상당히 평화를 옹호하는 교리이고 우리 그리스도교에서 믿는 하나님과 이름만 다를 뿐 실제로는 다른 하나님이 아닙니다. 구약성서 안에서는 분명 같은 하나님인데 다만 최후의 예언자가 무하마드로 되어 있을 뿐입니다. 코란을 읽어보니 성경과 유사한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중동에서 왜 전쟁이 많았나 생각을 해보면 팔레스타인 지역이 문화와 문화, 종교와 종교가 만나는 길목이라 과거로부터 분쟁이 많았던 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본질은 사랑을 베푸는 것인데, 지금의 이라크의 상황을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전쟁이라고 보는 것은 절대 교리적으로 맞지 않고 다른 관점에서 봐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원삼 문명간 전쟁이라는 것은 자꾸 정치권에서 그렇게 몰고 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자기들도 편하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박수현 중동의 문제가 단순한 종교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이슬람권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정교일치의 정책이 함께 드러난 거대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의 배타성의 문제가 9.11테러를 계기로 기독교 내부에서는 굉장히 많이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실 기독교의 양심 있는 지도자들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가 하는 숙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 왔습니다.
우선은 이슬람 사람들을 자주 만나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로마카톨릭은 자주 만나지만 개신교와 이슬람교가 수장(首長)들 차원에서 만나지 못하는 한계 때문에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이슬람이 백년 이내에 고대 문명지역을 평정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하고 생각해보니 그것은 아마도 덜 지배적이고 덜 배타적이었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보통은 점령을 하면 자기 쪽으로 개종을 하도록 하는데 이슬람은 자기 종교를 그대로 믿도록 하고 다만 세금에서만 차이를 두는 포용정책으로 아주 탁월한 정책을 폈다고 생각합니다.
개신교가 어떤 지역을 들어가면 상당히 정복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데 이미 존재하는 다른 종교를 배척한다든지 원주민을 개종시킨다든지 하는 일들은 호주나 북미에서 일어났는데 이러한 정복적인 성격이 기독교가 큰 반성을 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정복적인 성격은 본래부터 그런 것이라기보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패권주의와 맞물리면서 더욱 그런 형태로 바뀝니다. 원래 기독교는 사랑과 평화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고 예수님 자신도 비폭력주의자였습니다. 그 비폭력 때문에 결국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런 기독교가 후에 변질되었다고 저희는 고백을 합니다. 저는 항상, 패권적이고 정복적인 기독교의 일부 형태가 어떻게 하면 평화의 방향으로 다시 설 수 있을까 하고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 5: 박수현
사회 진월스님께서 불교의 입장에서 중동전쟁을 어떻게 보고 그 원인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말씀해 주십시오
진월 불교는 대처하는 방법이 원칙적으로 비폭력적이기 때문에 이런 입장에서 보면 미국의 반테러 전쟁도 역시 일종의 폭력에 해당합니다. 아무리 동기나 목적이 좋다 하더라도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9.11사태에 희생된 분들도 죄 없는 분들이 희생된 것이기 때문에 안타깝습니다만 그걸 풀어 가는 방법이 무고한 더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킨다면 이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국가 간 뿐만 아니라 개인 사이의 작은 일이라도 종교인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현재 미국이 취하는 방법으로는 끊임없이 증오와 증오를 낳을 뿐이고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을 해야 하는데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것 같습니다. 불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우리의 삶은 한번이 아니라 계속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사랑과 평화의 방법으로 근본적인 해결을 해야 할 것입니다.
최영돈 저도 전문가는 아니지만 여러 신문을 볼 때 이러한 분쟁을 종교 대 종교의 갈등, 문명 대 문명의 갈등으로 보는 것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에 중동지역의 이슬람과 이스라엘이 싸움을 할 때는 그런 성격이 있었을는지는 모르지만 그 때는 아직 인지가 어두운 옛날 이야기입니다. 원래 지배하는 사람은 지배당하는 사람의 고통을 잘 느끼지 못하는데 당하는 사람은 상당히 억울한 것이 많은 법입니다. 아랍민족들이 유럽의 지배를 받으면서, 또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으면서 억울한 것들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일본이나 중국, 그리고 서구문명의 지배를 받은 때에도 억울한 것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억울함이 뭉쳐 한이 되면 2차대전 같은 큰 전쟁이 터지는 법이지요.
그런데 인과를 아는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가 약자라도 스스로 약자임을 자처하고 좀 억울하지만 강한 사람에게서 배워서 좋은 점만 받아서 어느새 경제도 발전하고 문화도 발전해서 어느 정도 강자와 대등한 수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아랍지역은 (소위 근본주의자들이) 강자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 원칙적으로 대항만을 위주로 해서 그 갈등이 쌓였다가 폭발한 것이 9.11 테러가 아닌가 하고 인과적인 관점에서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강자인 미국도 약자의 억울함을 생각해서 약자를 잘 선도를 해야 하는데 이 인과의 원리를 모르고 또 보복만을 하게 되면 그것이 언젠가는 되돌아오게 되어서 약자와 강자의 악순환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슬람권도 동양과 같은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 같고 미국도 약자의 입장을 이해하는 높은 철학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회 종교에서 테러의 주역이 되는 근본주의자들은 서구의 물질문명이나 제국주의에 대항한다는 아랍 민족주의의 순수한 자존심이라는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아랍 민족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물질문명으로 아랍을 지배하려는 서구세력이 하나의 악(惡)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대응하는 폭력적인 방법은 순수한 이슬람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래서 중동분쟁은 물론 서구가 원인제공을 했다고 하지만 거기에 대응하는 방법에 있어서 이슬람권도 원래 코란의 정신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종교간의 평화를 위한 해결방안

김웅태 어느 종교인이든지 자기 종교에 대한 헌신과 충실하려는 마음이 다 있습니다. 그것이 너무 지나치면 다른 믿음에 대한 배타성으로 나갈 수 있고 그렇다고 다 받아들이면 아무 색깔이 없게 됩니다. 그런 부분을 지혜롭게 풀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누구든지 평화를 주장하고 자기 종교에 충실한 삶을 살면 다른 종교와도 형제가 될 수 있고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세계인들이 함께 살아가려면 이슬람도 이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개방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는 서로가 타종교의 믿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같이 살기 위해서는 자꾸 만나서 대화를 해야 하고 자기 믿음에 충실해야 합니다.
박수현 우리 나라에서 아랍지역으로 선교를 나가는 경우 선교 자체에만 욕심을 낸 나머지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동화되어 자연스럽게 선교가 이루어지게 하는 노력 없이 무차별적이고 공격적인 선교전략으로 인해 현지에서 배척을 받고 제대로 선교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점을 반성을 하고 개선을 해야 한다는 인식의 변화가 개신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사회 진월스님께서는 URI(United Religions Initiative) 운동을 하시는데 그런 종교연합 운동을 통해서 중동분쟁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이야기 해주십시오
진월 URI 운동은 여러 종교를 단순히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를 존중하고 다른 종교를 통해서 자신의 신앙을 더 심화시키고 성숙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다른 종교를 존중하려면 다른 종교를 이해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만나고 대화하고 협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원에 한가지 꽃만이 있다면 아름답지 못하듯 세계의 모든 종교가 저마다의 모양과 향기와 빛깔을 가지고 하나로 어우러질 때 진정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세계의 많은 어려움들을 함께 고민하고 지혜롭게 풀어 가는 데 협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처럼 종교인들의 연대모임을 주장하는 모임을 갖는 것은 매우 시의 적절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사회 이번에 중동사태를 살펴보면 여기에는 정치적인 문제도 있지만 경제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유럽이나 미국의 자본들이 제3세계를 지배하면서 그들이 느끼는 상대적인 빈곤감이나 박탈감 같은 것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리 종교간의 평화나 대화를 이야기해도 진정한 평화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새삶회 회장님께서 말씀해 주시죠.
최영돈 어느 사회든지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있는데 우리가 종교적으로 아무리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도 빈부의 차이라든지 이런 생활의 차이가 해결되지 않는 한 평화라는 게 있을 수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어도 근본적으로 가난을 해결해 주어야만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강대국들은 근본적으로 가난한 나라를 강국으로 키워서 함께 잘사는 나라로 만들어 가려는 게 아니라 우선 자기가 잘 살기 위해 약자를 이용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것으로 인해 생기는 약자들과의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한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강대국들의 근본적인 사고방식이 약자인 흑인이나 강자인 백인이나 다같이 하나의 동포이고 한 부모 형제라는 관념이 있었으면 그런 갈등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육신에 대한 빈곤 무지 질병을 퇴치하는 데 힘을 합쳐 협력을 해야 하고 이런 일을 실제로 유엔이 해야 하는데 유엔이 강대국의 힘의 논리에 따라만 갈 뿐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우리 종교인들이 정치하는 사람들의 정신을 바로 잡아 주는 것이 필요한데 먼저 종교와 종교 사이부터 성숙된 관계를 형성하고 높은 사상으로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종교는 한 부모 형제입니다. 원래 종교라는 것이 한 원리이고 한 근원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고 서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실천을 하되 좋은 점은 배우고 자기의 좋은 점은 가르쳐 주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현재의 강대국들이 약자를 진정으로 도와 주어야 합니다. 서구 강국이 약자인 아프리카 등지를 가서 근본적으로 가르쳐 주고 깨우쳐서 스스로 잘 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사회 미국을 나쁘게만 볼 게 아니라 문제는 어떻게 미국의 가능성, 막강한 힘을 잘 돌려서 세계 평화를 위해서 쓸 수 있도록 하느냐가 문제 아닌가 생각합니다. 현대의 서구 중심의 물질문명 자본주의가 상당히 패권주의적으로 가고 있는데 이것을 가난한 나라를 위해서 어떻게 평화주의적으로 돌리느냐가 우리 종교인들이 해야 될 방향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많은 종교인들은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무지합니다. 그래서 우리 종교인들이 진리의 입장에서 세계 정치와 경제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국제 종교 연합 모임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이 종교연합이 유엔이 제 역할을 하도록 하고 마치 한 가정의 엄부와 자모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수현 저도 사회자님의 말씀에 동감을 합니다. 현재 미국의 거대한 가능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을 못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미국이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주변 국가를 이용하는 면을 간과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모든 종교인들이 단합한 강력한 힘으로 미국의 이러한 점을 저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자 : 이제 마칠 시간이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종교와 세계의 평화의 구현을 위해서 한 말씀 해주십시오.
진월 : 민주사회에서는 정당한 여론형성이 중요합니다. 평화라는 것이 정의와 같이 따라다니는데 세계사회의 정의 실현을 위해서 우리가 연대를 해야 하고 여론을 형성하고 행동하는 종교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최영돈 : 그 동안 종교가 많은 역할을 해 왔지만 이런 중동문제 같은 큰 문제에 대해서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종교가 연합되지 못했기 때문인데 현재의 많은 종교연합기구들을 더욱 발전시켜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 일을 하는 데 중심된 역할을 미국이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처럼 모든 종교가 평화롭게 지내는 곳도 없으니 우리 나라에서 종교연합기구 운동이 중심적으로 일어난다면 우리 동양인들이 지혜가 있으므로 큰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합니다.
<정리: 새삶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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