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라크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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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라크 전쟁
  • 한울안신문
  • 승인 2002.11.2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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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청운 새삶 심포지움 " 11월3일 " 종로교당



종교인 연대와 종교연합을 주장하며
최희공"고려대 교수 새삶회장

2차 대전후 이 세계는 그동안 강대국들이 약소국들에 저지른 과오를 반성하며 모든 나라들이 함께 발전 번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 유엔을 창립하게 되었다. 유엔은 지난 50여년간 세계의 수많은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냉전 시대가 끝나면서 세계 질서를 잡아가는 데 초강대국 미국의 독주를 막을 수 없어서 유엔이 그 본연의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 이 세계평화에 있어서 남아 있는 가장 근원적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요, 인류 심성을 선하고 바른 곳으로 인도하여 인류에게 진리의 눈을 뜨게 해야 해결되는 문제들이다. 따라서 유엔이 더 이상 문제 해결의 힘을 잃어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인지 모른다. 이것은 비유하여 말하자면 여기 수레가 있는데 한 바퀴가 없으면 수레가 잘 굴러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현재 있는 한 바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요 없는 나머지 한 바퀴에 문제가 있다. 그 나머지 한바퀴가 종교인의 연대요, 나아가 종교연합이다. 인류의 마음속에 붙어 있는 분노와 증오의 불을 끄고, 인류가 한 부모 형제임을 깨닫게 하고, 각 나라 지도자들에게 진리의 눈을 뜨게 해서 사랑과 자비를 실현케 하고, 강자와 약자가 각각 그 바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하며, 묵어 있는 인류의 심전(心田)을 계발(啓發)하여 영과 육의 빈곤, 무지, 질병을 퇴치하게 하는 것은 종교의 몫이다. 그러나 그동안 종교가 그 몫을 다하지 못함에 따라 다른 한바퀴인 유엔도 힘을 잃어가는 것이다. 세계의 종교가 훌륭한 교리와 신앙 체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세계평화에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원인은 유엔과 같이 종교가 뭉쳐진 하나의 소리를 내지 못한 때문이다. 성자의 정신을 체 받아 사랑과 자비를 실현하여 인류를 구원하고 이 세상을 낙원으로 만들려는 공통된 이념을 갖은 종교는 세계의 이 혼란기를 맞이하여 인류의 전도된 가치 질서를 바로 잡고 땅에 떨어져 가는 도덕과 진리와 인(仁)을 부활시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뜻을 함께하는 종교인들이 먼저 연대하여야 하며 나아가 종교의 대연합체를 구성하여 유엔과 합심 합력하여 전쟁을 막고 평화를 생산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종교인 연대와 종교 연합이 이루어지면 어떠한 일을 하여야 할 것인가. 그 과제를 생각해보면
첫째는 유엔과 함께 세계 평화를 생산하는데 합심 합력해야 할 것이요.
둘째는 묵어 있는 인류의 심전을 계발하여야 할 것이요.
셋째는 인류의 영과 육의 빈곤, 무지 질병을 퇴치하여 다 함께 잘 사는 세계를 개척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제안하고 싶은 것은 그 일을 누가 먼저 시작하느냐 하는 것이다. 현하 갈등의 주역이 되고 있는 미국이나 아랍의 종교인들이 그 역할을 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우리나라와 같이 역사 이래 전쟁을 싫어하고 평화를 사랑한 나라가 없을 것이며, 여러 종교가 공존하며 상생 상화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종교인 연대와 종교 연합의 주축이 되어 모든 인류의 전쟁과 갈등을 해결하는 세계평화의 은생지(恩生地)가 되기를 염원해본다.


경계해야할 테러리즘과 미국의 월권행위
김웅태 신부" 가톨릭대학교 교수

미국의 월권적인 세계 주도정책은 마땅히 비판 받아야 할 것이다. 미국도 유엔(UN)의 결의를 존중하고 세계적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슬람과 관련을 맺고 이슬람 위주의 원리주의적이며 근본주의적인 과격 단체들의 무모한 테러행위도 또한 마땅히 비판받아야 하며 또한 종식되어야 한다. 자신의 원한을 풀기 위해 가공할 테러를 불특정 다수인을 상대로 자행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지 용납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테러의 방법이 아니라 대화와 호소, 협력과 연대, 인간존중, 평화공존, 공동선과 자유의 원칙 하에 처신해야 할 것이다.
‘종교연합’ 구성의 필요성과 활성화문제 -그런 의미에서, 종교연합의 구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이러한 종교인평화협의회들이 지역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 "세계종교인평화회의’(WCRP)" 등. 이것을 좀더 조직적으로 DNSUDD하고 정례화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주는 종교적 도덕적 영향력을 키워 명실공히 세계종교연합체(UR)가 활성화되어 세계평화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종교는 각자 나름대로 인간의 본성을 순수하게 보존하고 죄와 악을 길에서 인간을 선도하여 자기완성에 이르도록 이끌어 준다. 종교는 또한 이웃과 세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봉사하는 평화와 사랑의 원리를 갖고 있고 또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가르침을 준다. 힌두교의 성자인 간디라든가, 가톨릭의 성자 성프란치스코, 성 샤를르 드 후꼬, 그리고 최근에 세상을 떠난 인도의 마더 테레사 등은 세계 종교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각각의 종교인들이 자기 종교를 충실히 봉행하면서도, 이웃 종교인들과 협력하며 세상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길은 다양하며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일을 위해, 종교들의 연합(UR)이 구성되어 효율적으로 운영된다면, 종교 간의 평화와 공존은 물론, 국가간의 평화로운 질서 건설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전쟁에 가린 굶주림과 죽음
이원삼 교수" 이슬람문화연구소장

<중략>우리는 이러한 것을 논하기 전에 더 중요하게 다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전쟁이 왜 일어난 줄도 모르면서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 수백만의 아프간난민과 벌써 몇 년째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이라크 국민들의 굶주림이다. 전쟁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질 때가 아니라 이들을 어떻게 살려낼 수 있을까에 관심을 가질 때이다. 1979년 소련의 침공 이후 20여 년간 계속되고 있는 전쟁과 내전 때문에 굶주림에 고통 받고 있는 수백만의 아프간 난민! 몇 년째 경제 제재를 받아 굶고 있는 이라크 국민들과 어린아이들! 구호품에 의존하여 살아가던 이들이 전쟁으로 구호품이 끊겨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한다면 이보다 더한 불행이 어디 있겠는가! 이들은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 많은 고통을 당할 것이고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이미 많은 수가 죽어나가고 있을 것이다.
미국은 한 때 군사적 보복과 더불어 구호품도 제공하였다. 그러나 탈레반 정권과 민심을 분리시키려고 하는 전략적인 차원에서 하는 형식적인 구호품 제공이었기 때문에 세계 여론으로부터 강한 비난을 받았다. 미국의 이런 전략은 향후 이 지역에 친미 정권을 세우는데 별 실효를 못 거둘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아프간 사태를 중앙아시아로 진출하기 위한 기회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테러에 대한 보복을 구실로 행해지고 있는 미국의 중앙아시아 진출야욕은 많은 민간인들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아무리 테러에 대한 응징으로 포장한다고 해도 미국은 결국 이 지역에 또 다른 반미감정을 고조시킬 것이며 이것은 무슬림들과 미국 사이에 새로운 분쟁의 씨앗이 될 것이다.
<중략> 그러므로 미국은 이번 아프간 사태를 중앙아시아로 진출하기 위한 정치 경제 군사적인 기회로만 활용하지 말아야 하며 미국에 대한 무슬림들의 인식을 바꾸는데 노력하여야 한다. 따라서 미국은 군사적인 방법보다는 진정으로 난민을 구제하기 위한 경제지원 등과 같은 정책에 더 역점을 둔다면 진정한 패권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며 이슬람국가들은 그동안의 한을 털어 버리고 미국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중략>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지도자들의 역할과 임무는 특히 중요하다. 부정적인 종교적인 오만과 편견은 민족적 갈등과 전쟁을 유발할 것이고 종교 간의 긍정적인 대화와 화해는 적개심과 증오를 해결하고 인류를 평화와 정의로 인도할 것이다. 종교 간의 대화는 상호이해를 용이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적 분야에서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히 지리적으로 가까움에도 그동안 교류가 많지 않았던 아시아 종교인들 간의 교류와 이해증진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미국 공격적행동 반대해야
한창민 교수" 원광대 교수
<중략> 이라크가 그렇게 천인공노할 악의 축이라 한다면 그 이라크의 힘이 나온 배경은 무엇인가? 후세인 정권이 강력한 군사 대국으로 성장한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역할 때문이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에 놀란 미국이 호메이니를 견제하고 이슬람 원리주의의 확산을 제어하기 위해 이라크 후세인 정권에게 군사 기술적 지원을 제공하였다. 그 결과 이라크는 이란과의 8년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현재의 강성 군사 대국을 구축하게 된다. 그러면 후세인은 어제는 선의 축이었고 오늘은 갑자기 악의 축이 되었는가? 어떤 판단에서 그러한 결론을 내리는가? 이라크가 실제로 미국을 상대로 먼저 갈등을 유발하였는가? 미국은 친미정권만을 요구하는가?
논자는 이라크의 배경에는 아랍이 있고, 아랍은 이슬람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슬람은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을 공감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미국과 이슬람 문명의 갈등을 해소하려면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본다.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되려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시각과 자세가 조정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과 서구 국가들의 대 이스라엘 정책이 바로 잡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대인들의 정치 경제적 힘에 압도당하는 현재의 상황으로는 친 이스라엘 정책 일변도를 채택하지 아니할 수 없고, 이런 상태에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초강대국의 힘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은 조화와 타협보다는 힘에 의한 압도를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논자는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을 이해한다. 장구한 세월동안 그들이 당한 고통을 이해한다. 그래서 그들만의 국가 건립을 얼마나 간절히 소망했는지를 이해한다. 그러나, 논자는 그들이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해 팔레스타인인들을 탄압하고 축출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다. 문제의 악순환일 뿐이다. 미국과 서구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공존의 방법을 모색하는데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서구 기독교 문명과 아랍 이슬람 문명간의 갈등의 한 부분이 해결된다고 본다.
여기서 우리 종교인의 역할 한 가지를 생각해본다. 현재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의 배경에는 미국이라는 수퍼 파워가 있다. 대부분의 권력은 견제되지 아니할 때 부패하기 쉽다. 국제 관계에서도 이 원리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미국이라는 수퍼 파워가 다른 세력에 의해 견제되지 아니하면 무소불능의 권력을 휘두르다가 몰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 등 서방 국가들 일부가 미국을 견제하고자 노력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한 상태다. 미국은 아예 서방 국가들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이라크를 몰아세우고 있다. 견제되지 않는 권력은 자기모순에 빠지게 되고, 초강대 권력의 붕괴는 그 후유증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게 된다. 미국의 견제되지 않은 권력을 제어하는 방법 중 하나는 비정부단체나 일반 대중들의 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들부터 “이라크를 포함하여 다른 민족이나 국가에 대한 미국의 공겪적 행동”을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찰과 연대의 공동적 수행을 위해
박성용 실장" 유네스코의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국제협력실

본인의 전공과 관련된 기독교와 불교에 제한해서 종교평화운동에 관해 몇 가지 요약을 하고자 한다.
첫째, 영성의 사회정치적 영역의 확대이다. 이를 테면, 기독교 측에서는 그리스도의 수난, 즉 해골산 골고다 언덕에서 그의 십자가형의 죽음과 불교의 진흙탕 연못위에 핀 연꽃의 사회정치적 명상수행이 그것이다. 고통에 대한 관심은 두 종교의 핵심 지주이며 종교수행과 가르침의 근본명제이다. 과거에는 예수의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해방적 가르침과 붓다의 해방적 불법(독 묻은 화살의 비유)은 수도원운동과 기존 정치세력과의 연합으로 인해 내면적 심리적 개인적 방향에서 해석됨으로써 탈-이세상적 종교전통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지금의 전례없는 전 지구적 위기 상황 속에서는 각 종교적 영성이 내면적 악의 실재뿐만 아니라 사회구조적 악"고통의 실재를 직시하는 종교수행의 방법론을 포함해야 한다. 삶을 실재 그대로 보는 명상수행은 악"고통의 실재를 실제로 볼 수 있는 과학적 분석 방법을 종교적 수행방식에 포함되어야 ‘순진한’ 신앙인의 단계를 벗어나게 된다.
둘째, 악의 실재에 대해 다시금 대면해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는 사회분석의 수행방식의 도입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적" 세계적 평화를 위한 긍정적 자산(resources)과 종교적 타자, 이념적 타자, 그리고 인종적 타자에 대한 차별적 수행의 요소에 대한 자기 비판적 성찰이 요구된다. 자기 비판적 성찰은 타자의 차이" 다름을 이해하고 (건너가기:passing-over-practice) 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관계성 속에서 재정위하는(돌아오기: coming-back practice)대화적 수행이 전제되어야 한다.
셋째, 진리와 세계만물의 상호의존적 관계성에 대한 인식은 악"고통에 대한 대처에 있어서 어느 한 개인, 그룹, 종교, 국가만의 노력으로 되지 않고 공동적이며 실천적인 수행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성 종교 나이 계급 인종 국가를 넘어서서 공동과제에 대한 전 지구적 책임성을 나누고 이를 위해 일상 삶에서 서로를 엮어내는 연대성의 실천이 종교적 수행방식에 도입되어야 한다. 관심과 우려만으로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문제에 대한 지적 토론만으로도 어렵다. 문제의 핵은 어떻게 몸을 만들어 각 부분이 전체의 유기적 관계에 결합하여 악에 대한 저항과 변혁의 공동체를 형성하는가에 달려있다. 종교적 진리가 저항과 변혁의 에너지를 창출하지 못할 때, 그 종교적 깨달음은 악의 실재적 상황에서는 무력하게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평화를 위한 평소의 교육시스템과 종교적 수행이 전제되지 않는 한 그 세계평화의 꿈은 실현되기 어렵다. 갈등과 분쟁의 해결은 그 문제가 출현하고 나서는 해결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사전예방이 최소의 비용과 최대의 효과를 얻게 된다.

<정리: 박동욱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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