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無所有)를 소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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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無所有)를 소유하자
  • 한울안신문
  • 승인 2002.11.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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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타원 송영봉 종사"원불교 여성회 훈련 11월19일
소중하고 거룩한 자리
우리 교단 초기에 숫자가 하도 가난하여 구름같이 모여드니 20명이구나 하셨습니다. 대종사님께서 이 자리에 계신다면 오늘은 구름같이 모여드는데 700명이로다 하시며 얼마나 좋아하시고 칭찬해주실까 생각하니 가슴이 벅찹니다. 이렇게 많은 여성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하나가 되기까지 회장님을 비롯한 회원 여러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대종사님의 선물이니 박수를 우렁차게 치십시다!
초기 교단의 여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라고 하는데 사실은 지금도 우리는 초기에요. 지금 이렇게 일하는데 얼마나 힘드셨어요. 밤에 잠도 안 주무시고 애쓰셨을 거에요. 제가 일찍이 대산 종사님을 모시고 한남동에 있는 총부출장소에서 고아원을 함께 운영하면서 서무 역할을 할 때였습니다. 대산 종사님이 시내 출장을 가셨는데 김구 주석께서 비서 한 명을 데리고 오셔서 20대인 내가 영접을 하였지요. 이 어른께서 가실 생각을 안 하시는지라 딱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오래 되어서 잘 퍼지지도 않는 고아원에 배급 나온 우유가루 밖에 대접할 것이 없는지라 겨우 우유 한잔 대접한 후 이제나 가실까 저제나 가실까 하는데 가시질 않는 거에요. 이제야 생각하니 그 분이 점심을 어떻게 하셨는지 모르겠어요. 대산 종사님께서 오시고 두 분이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옆에서 심부름하면서 들으니 그 날이 바로 김구 주석의 생신이래요. 모처럼 생신을 고국에서 맞이하신지라 효부인 며느님이 그 때도 여성회가 조금 결성이 되었던지 여성회원들을 모아 생신준비를 하는 것을 눈치 채고 살짝 빠져 나오셨다는 것이었어요. “제가 지금 건국도 못한 주제에 무슨 생일을 받습니까. 그래서 빠져 나왔습니다” 하시더라구요. 그 말씀을 듣고 저는 가슴이 어찌나 찡하던지 김구 주석이 돌아가신 뒤에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김구 주석께서는 오직 일념이 구국(救國) 건국(建國)밖에 없으셨어요. 여기 대중이 지금 그럴 것이에요. 오직 여성회뿐일 겁니다. 우리 회장님 어떠세요? 그때 심정을 생각하니 지금 이 자리가 참 소중하고 거룩한 자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보니 여러 동지님들께 전해드릴 밑천이 별로 없네요. 하지만 이렇게 쳐다보는 여러분의 눈망울과 제 가슴이 연했어요. 기운과 기운이 통했어요. 아, 그러면 진짜 강의는 다 된 것이지요. 그래도 시간을 맡았으니 찌꺼기라도 말씀드리지요.

대종사의 미래관
저의 어머니께서 법연을 가진 부군을 맞이하여 가산을 정리하고 남부여대(男負女戴)하여 오셔서 교단초기 생활을 하시는데 어린애가 없어서 조부모님과 주위 분들이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걱정 많이 하셨어요. 대종사님께서 ‘걱정하지 마라, 아들 형제를 둘 것이다’ 하셔서 당연히 아들인 줄 알았는데 계집애 둘을 낳으셨지요. 지금 나이 들어 생각하니 주위에서 아들 아들 하니까 여자도 남녀동등권이라 아들 둘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미리 예언하신 것 같습니다.
대종사님께서 대각(大覺)하신 뒤 원불교 여성상을 교리화, 제도화 해 주시고 더 나아가 실지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원래 역사 이전에는 모권사회였어요. 서구사회에서는 16C 르네상스, 프랑스 혁명, 세계대전 등을 거치며 남권이 주창되었지만 여성들도 서서히 깨어나면서 참정권을 얻게 되었지요. 대종사님께서는 어떻게 여권을 지으셨을까요?
얼마 전 서울에 사는 한 동지를 만났는데 이런 말을 했어요. 대종사께서 ‘앞으로는 하늘에서 산다’고 하셨다는데 내가 아파트 19층에서 사니까 하늘에서 사는 것 같더라. 이것을 미리 예견하셨구나 하고 감탄했다고 해요. 대종사님께서 “내가 무슨 점바치처럼 점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적으로 생각해서 말하는 것이다”고 하시는 말씀을 평소에 들었습니다. 우리가 사계절 오는 것을 신통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알 듯이 대종사께서는 시방을 두루하고 종횡무진 영겁을 쳐다보시니까 묘기를 가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나는 그것이 아니다. 나는 정리정론을 이야기하는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만유가 한 체성이요, 만유가 한 근원이로다’ 당신이 깨달은 소회를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지요. 깨친 후 날아다니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음력 3월26일쯤 영광 땅에 봄눈이 왔는데 어찌 좋던지 내가 나막신을 신고 산천을 두루 돌아다녔는데 나막신에 눈이 묻지 않았더라. 시방이 한눈이고 영겁이 찰나야” 하시며 깨치신 기분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부처님은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이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공(空)으로 돌아가고 공자리에서는 분별(分別)이 없습니다. 원래 그 자리가 무차별(無差別)자리입니다. 기독교에서의 하느님은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나누어 놓은 자리가 아닙니다. 유교에서도 음양 이전에 무극(無極)이고 무극은 모든 것을 걷어버린 자리로 무슨 분별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아주 깊은 도리(道理)를 바탕으로 했지만 차별이 있어요. 일주일 동안 만물을 만들고 나서 남자를 만들고 그 갈비뼈를 빼내 여자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도 남자에게는 계문을 250개 주었지만 여자에게 500개나 주었습니다. 유교에서도 음양을 따져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라서 남자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유교가 지배한 이조 500년 동안은 말할 수 없이 여자들이 핍박을 받았지요.
대종사님께서 ‘만유가 한 체성이요,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하실 때는 하나 자리 그 공자리를 지목하셨습니다. 이 가운데 생멸(生滅)없는 도(道)와 인과보응(因果報應)이 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이 되어 이 세상이 전개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뭉친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사만리(萬事萬理) 속에 그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만사만리를 끌어 잡아서 활동할 수 있도록 전개해야겠다는 미래관이 거기서 성립이 되었습니다.

대종사의 여성관
제가 생각하기에는 초기부터 여성문제를 언급하셨거든요. 남녀를 구별하지 않고 꼭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생각하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교리화 제도화하셨습니다. 지금은 훈련을 이틀 하지만 그때는 세상이 한가로웠던지 동하 3개월을 했는데 겨울 석달, 여름 석달 동안 선을 했습니다. 그때는 훈련을 선이라고 했지요. 동선, 하선. 남녀가 모여 토론하면 참 치열했습니다. 남자들은 여자가 큰소리치면 집안 망한다고 하고 여자들은 아니라고 반박했어요. 지금으로부터 87년 전, 내가 보았을 때는 50년 전에 그렇게 남녀문제를 열어주었습니다. 남녀문제만 아니라 반상(班常)차별, 노소차별 등을 무너뜨리려니 그때 현실로서는 엄청난 일이었지요.
교리 뿐만 아니라 제도도 지금과 똑같이 해놓으셨습니다. 선거로 모든 것을 시행해 놓으셨습니다. 지금 여성 교역자, 여성교도들이 일선에서 얼마나 활동을 많이 하십니까. 겨울에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채소는 부분적이지 전체가 될 수 없고 봄 여름에는 노지에 심으면 무엇이든 잘 자라듯이 대종사님은 그 시기를 딱 맞추어서 교리화 해도 제도화해도 탈없이 맞아 들어가 오늘날에도 여성문제를 교리화 제도화 시켜도 아무 지장이 없고 도리어 큰 힘이 되었습니다. 맨하탄 교당 이오은 교무가 여성문제로 논문을 쓴다고 해서 “그래 세계여성사에 대해 환하겠구나” 했지요. 한국에 와서 결론을 맺으며 하는 말이 다 둘러보아도 우리 대종사님 같은 여성관이 없다고 해요. 우리 대종사님 여성관이 갈수록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좋은 제도 속에서 오늘날 출재가가 이렇게 뭉친 것입니다. 뭉쳐진 힘이 얼마나 거룩한지 모릅니다. 이런 교리를 내주시고 우리를 변화시켜 주셨는데 여성문제를 그냥 교리 제도화만 시킨 것이 아니라 직접 훈련을 시켜주셨습니다. 훈련과목으로 염불, 좌선, 강연, 회화 등 12과목을 남녀 똑같이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그 당시 여성들이 어디 감히 이런 연단에 나섭니까. 강연을 하는 요령도 가르쳐주셨어요. 첫째 조리가 정연해야 한다. 둘째 듣기 좋은 언채로 할 것, 셋째 성음 연습을 하라. 그리고 태도를 바르게 하라.
초기에는 교서가 지금의 교전이 아니라 불법연구의 취지규약서였습니다. 서두에 ‘혼몽 중에 있던 우리, 취중에 있던 우리’라고 나와 있었는데 혼몽이라는 것은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죄복이 어떻게 바뀌는지 모르고 밥그릇이 놓으면 생일이고 이렇게 살았습니다. 욕심에 취해서 살았습니다. 지금도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제정신이 아니지요. 그러니까 물질은 자꾸 발전하는데 반면 우리 양심은 말살되어 갈피를 못 잡는다고 그때부터 훈련으로 심어주셨어요. 남성 여성을 가지지 않고 한글을 가르치고 강연 회화 감상담 등 가지각색으로 가르치셨습니다. 훈련을 하는데 여자도 불러내어 밖의 일을 시키고, 남자들도 고춧잎을 따서 다듬는 일을 다같이 했습니다.

대인격을 갖추는 여성회
우리 회장님 간곡한 부탁에 못이겨서 오신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당신들의 발심(發心)이 아니면 못나오지요. 그것이 마주쳐서 이 자리에 나오셨지요. 우리는 아직도 초기교단이니까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 밖으로는 여성의 지위가 차츰 올라가고 있고, 국가에서도 시책적으로 여성등용을 하고 여성대우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대두되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깨친 여성들을 외면으로 자꾸 촉진시키지만 그것만으로는 안됩니다. 내면으로 갖춰야 할 일들을 종교인들이 해야 합니다.
미소양국이 버티다가 소련이 무너지자 미국이 세계에서 자기 혼자 강자로 남아 안하무인이라 ‘이러다 큰 코다치지’ 하는 소리를 자주 하곤 했는데 작년 맨하탄에서 무역센타가 무너지는 것을 직접 보았지요. 너무 엄청난 일이 일어나 기운이 막막했습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고 떠나오기 전에 맨하탄 교무가 통역하겠다고 법회를 보라고 해서 법회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느낀 것이 ‘이 세상에 가장 자랑이었던 것이 아무 것도 아니구나’ ‘그런데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집, 이름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인가, 내일을 어떻게 기약할 것인가’ 무소유(無所有)가 생각났습니다. 내가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좋아해서 자주 읽었습니다. 다 놓아버리고 산에 들어가 한가하고 조용한 생활을 멋있게 지내시더라구요. 성철스님도 산문 밖을 안 나가시고 무소유 생활을 하셨거든요. 정말 장하시지요. 그런데 모두 그렇게만 사시면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가겠습니까? 내가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무소유를 소유하자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소유합시다. 내가 모든 것을 가지고 유지하고 사용하면서도 그게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써나가는 것과 그것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써나가는 것은 하늘과 땅입니다.
우리가 다 놓아버리는 자리가 바로 절대 자리, 공 자리, 만유가 한 체성 자리입니다. 하나님, 무극 자리도 절대 자리이고 상대가 없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우리 마음이 안주할 수 있어야 진짜 실력자입니다. 절대 자리에 들어가 모든 것을 상대합시다. 그러면 나도 편하고 상대도 다 편해집니다. 여성회원들이 바로 절대의 대인격을 갖춘다면 여성회는 발전할 것입니다. 나는 변화하는 여성, 변화시키는 여성이라는 여성회 표어를 좋아합니다. 우리 여성들이 스스로를 변화하여, 세계를 변화시키자고 목표를 정하면 무위이화(無爲而化) 자동으로 이루어져 멋있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한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원불교 교도만을 위한 여성회를 만들려고 하지 마십시오. 일반인이 이 회상을 즐겨서 따라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10년 뒤에는 일반인이 더 많이 와서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지도합시다. 감사합니다.
<정리: 장원희 여성회신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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