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신의 운형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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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신의 운형수제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04.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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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성균 교무와 함께하는 대산종사 법문

봄빛이 나른한 어느 날, 양복 정장을 입고 가마솥을 짊어진 분이 원평 조실을 찾아왔다. 키는 작고 얼굴은 까무잡잡하고 메마른 사내였다. 처음 뵙는 분이었는데 한 눈에 모두 들어와 가슴에 안긴다. 키에 비해 손과 발은 팔척장신의 모습이었고, 눈매는 동자승 마냥 선량해 보였다.


대산종사는 각산 신도형의 제자라며 반갑게 맞이하고 가마솥을 산 연후를 물은 후 “예비교역자 학생들을 한 10년간 훈련시켜라. 그 가마솥에 훈짐 나게 쪄서 용신을 부활하라”고 하였다.


이 때 인연이 되어 간사 시절부터 출가하기까지 무던히도 용신을 찾았고, 함께 밤을 지세우고 법담을 나누며 한 방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며 지냈다.


낮이면 솔숲사이로 산책하며 정담을 나누다가 솔바람을 벗 삼아 선정에 들기도 하였다. 이 분이 흰 한복을 입고 솔숲 사이로 거니는 모습을 보노라면 영락없는 아기 동자요 사 없는 신선 같았다. 그러기에 선산(仙山)이란 호를 받은 박인도 교무가 아니었던가?


선산 정사는 평생 입버릇처럼 ‘굵고 짧게 살자’, ‘중의 벼슬은 닭 벼슬만큼도 못하다’, ‘진리를 의심하면 여래를 잉태하고, 동지를 의심하면 불신을 낳는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다. 지금은 하늘아래 뵐 수가 없으니 그 우렁찬 독경소리를 녹음해 두었으면 유음으로라도 님의 자취를 더듬고 싶다.


용신교당에서 시작한 선 정진, 교리공부는 한 때 교단 공부 풍토를 조성하는 솔바람 같았다. 대산종사는 한 10년간 훈련하면 교단이 달라질 것이라 하였는데 선산이 진영교당으로 부임하자 그곳에서 한번 훈련을 하고는 여건상 그만 두었다.


대산종사는 용신에서 해마다 여름 훈련을 나고 인사차 온 학생들에게 훈증하시며 한 학생이 7일간 단식하며 훈련을 났다는 보고를 들은 후 “너는 몸이 튼튼해서 그렇게 했지만 몸이 약한 후배가 또 그렇게 하다 병이 나면 안 된다.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반드시 정도로 가야한다. 그래서 나는 건강관리를 말하니 표준 삼으라”고 하였다.


용신교당의 훈련은 선산 정사가 있어 체를 잡았고, 대산종사의 훈증이 있었기에 정법으로 연하고 정신(正信)으로 갈무리가 되었다.


말없는 가운데 묵묵함을 즐기신 스승님, 성성한 빛을 감추고자 애써 ‘이생은 터만 닦고 가신다’며 심대광심(深大廣心)을 외치며 일필지휘로 쓴 교리 공부 노트를 보여 주었는데 지금은 평소 말씀처럼 대산종사를 사모하여 방울대사 같이 딸랑거리며 님의 곁에 가셨나이까?


대성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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