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텅빈 자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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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텅빈 자리1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05.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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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성균 교무와 함께하는 대산종사 법문

관공(觀空)=생사와 거래가 없는 자리를 비추고, 양공(養空)=일체가 돈망(頓忘)한 그 자리를 양성(養成)하고, 행공(行空)=대무상행(大無相行)을 행하여 삼계(三界)의 대도사(大道師)가 되라.




훈련 교무들이 채근담과 음부경과 십현담을 배울 때 말씀하셨다.


잘못 공부하다가는 달콤한 글에 끌려서 살불살조(殺佛殺祖)하기 쉽다. 대종사님과 정산종사님도 이러한 글들을 공부하게 하였다. 그러나 달콤한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 잘못하다가 악도나 지옥에 빠져서 헤어 나오기가 힘들다.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여 버렸으니 그 사람이 어떻게 빠져 나오겠느냐?


관일체법공(觀一切法空), 일체 법이 공한 자리를 내가 꿰뚫어 본다. 그것이 견성이다. 일체 법이 유도 무도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너도 나도 없는 그 일체 법이 공한 자리를 꿰뚫어 관한다. 그것이 견성에 토가 떨어진 것이고, 또 그 견성에만 토가 떨어져서 좋으냐?


양일체법공(養一切法空), 일체 법이 공한 자리를 기른다. 그 진성 자리를 길러야 내가 힘이 나기 때문에 그것을 길러야 하고, 또 그것만 길러서 좋으냐?


행일체법공(行一切法空)이라, 일체 법이 공한 자리를 길러서 그것을 나투는 것이다. 그래서 불리자성왈 공(不離自性曰空)이요 응용무념왈 덕(應用無念曰德)이니, 자성을 떠나지 않는 것이 공이고, 아무런 생각이나 상 없이 응용하는 것이 덕이니 그 진리의 표현으로 일직심으로 나가야 한다.


이 넓은 바다가 오직 좋지 않은가? 숙승봉 밑 계곡이 좋다고 하는데, 그것도 좋지만 조금 더 넓은 것이 더욱 좋다. 또 여기 보다는 태평양의 한복판에서 세상을 보아야 진리에 토가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은 숙승봉 밑의 계곡물을 보고 견성했다고 야단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위 소개 법문은 원기69년 7월 중순경 완도소남훈련원에서 훈련교무(현 예비교역자)들의 훈증 훈련기간에 내린 법문으로 처음하신 법문도 아니고 늘 자주하였던 법문이다.


이 삼공(세 가지 텅빈 자리) 법문을 하실 때 관~ 일체 법공, 양~ 일체 법공, 행~ 일체 법공, 처음 관, 양, 공 첫소리를 길게 음미하며 후렴의 일체법공은 힘을 주어 말씀하였다. 들리는 것 관음이요, 보이는 것 청음이요, 깨치는 것 묘음 같았다. 이 한 마디에 법문을 더 들을 것조차 없는 묘한 매력을 느꼈고, 그 성음에 빠져드는 느낌을 얻었다.


대성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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