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상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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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상의 전환
  • 한울안신문
  • 승인 2010.01.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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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도연 교무의 7분 명상 38

새해 첫날 종법사님께서는 ‘마음을 비우라’는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사실 우리의 삶은 비우고 버리는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담고 채우는 데 골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빈틈없이 꽉 채워도 늘 빠져있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허전함, 공허함 그런 감정입니다. 늘 상대적인 빈틈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비우라는 것은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입니다. 희한하게도 채울수록 허기가 지는데, 조금만 비워도 부자가 된 느낌 아시잖아요? 모든 세계가 그렇지만 도(道)의 세계는 아주 냉정합니다. 버린 만큼 꼭 그 만큼 주니까요. 저는 ‘올해는 내가 이렇게 수행을 해서 이만큼 법력을 증진해야지, 이만큼 노력해서 이 정도는 득력해야지’ 하는 잠깐의 생각을 놓았습니다. 그냥 할 뿐이죠.


새해는 비우는 원리를 터득해 보십시오. 비우라고 하니 무조건 비워야지 하는 것 보다는 비우는 게 무엇인지, 왜 비워야 하는지, 비운만큼 어떻게 얻어지는 것인지, 비우는 방법은 무엇인지 하는 부분에 대한 원리와 이치를 분명하게 아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래야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니까요. 동기가 확실하면 누가 말려도 기어코 하잖아요.


그리고 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고 버리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셔야 합니다. 그걸 찾기 위해 선(禪)을 하고 명상을 하는 겁니다. 환하게 알게 되면 억지로 버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놓아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테니까요.


비우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자신만의 방법을 개발해 보는 것도 좋겠네요. 자신의 근기에 맞는 효율적인 방법을 구체화 하는 겁니다. 특성 따라 잘 되고 안 되는 부분이 다르니까요. 제 경험으로는 도반끼리의 회화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음을 터놓고 나눌 수 있는 심우(心友)가 있어야 서로의 거울이 되고, 치유가 됩니다.


비우는 것은 결국 ‘나’ 라는 것을 놓는 것이고, 그동안 ‘나’ 라고 믿었던 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아프죠.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거 하지 않으면 원불교 만난 보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죽을 때 저승사자가 데려가는 게 무엇인지 아세요? 내 육신을 데려가는 게 아니고 내 분별심을 데려가는 겁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거 비우라는 말씀이잖아요.


저는 때때로 ‘나를 버려 우주를 얻어보자’는 생각을 합니다.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올해는 모든 공부인들이 ‘버리는 재미, 비우는 쾌감’을 맘껏 누리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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