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아침, 은혜원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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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아침, 은혜원룸에서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02.2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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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문우답 / 강명권 교무 , (원봉공회)

설날 아침인데 집에서 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원룸에서 밥을 하고 있다. 은혜원룸이 생기고 나서는 명절 때 집에 가지 못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교도님이 운영하시는 식품공장에 인사차 순대를 후원받으러 갔었는데, 직원들 대부분이 외국인 노동자들이라 고향을 가지 못하는 직원들을 챙겨주시면서 설을 보낸다고 하셨다. 나 역시 고시원에 근무하는 총무를 집에 보내주고 대신에 근무를 하고 있다.


어제 저녁에 밥을 해두었는데 오후 6시도 안 되어 밥이 다 없어졌다. 오늘은 설날이라서 일 나갈 곳도 없을것 같은데도 일찍이 식사를 하시고 밖으로 나가시는 분, 또는 식사를 하고 다시 쉬는 분도 있다. 고향이 있어도 가지 못하고, 가족이 있어도 가지 못하는 분이 있다. 그리고 아예 어릴 때부터 고아로 살아서 가족도 고향도 없는 분들도 있다. 몇 개월 전에 들어오신 분 중에 고아출신이 계시는데 요사이 장난감 자동차랑 모형탱크들을 사고 있다. 기초수급자로 되어 있어 수급비가 나오기는 하지만 장난감을 좋아하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찾듯이 어릴 때 하지 못했던 것을 지금이라도 해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마음이 아련하다.


간밤에 떡국 떡을 사가지고 오는 분들이 여럿 있다. 설 명절을 이곳에서 지내기 위해서인 것 같다. 총무에게도 주라고 떡국 떡과 계란 10개 묶음을 주시고 가신다. 힘든 생활이신데도 챙기는 모습에서 나름의 여유가 느껴진다. 하지만 아직도 길거리생활을 벗어나지 못해, 곡차를 자주 드시는 분도 있다. 저렇게 생활을 하시면 지원을 못 받아 다시 길거리로 나가야 하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아직 적자를 면하기 쉽지 않는 우리가 그분을 거두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말씀처럼 99마리 양보다 길 잃은 양을 찾아 보호하는 것이 먼저라고 했는데, 나 역시 잃어버린 한 사람보다는 나머지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마음이 더 많은 것 같다. 법문말씀을 실천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껴본다. 나름대로 봉공을 실천하면서 산다고 하면서도 현실에서는 좀 더 안전한 길로 나가려고 하는 내 자신이 보이니까 말이다.


저녁이 가까워지니까 은혜원룸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이 더욱 바쁘게 움직이신다. 주방에서 국과 밥을 드시는 분, 씻는 분, 씨씨티비(CCTV)에 보이는 주방이며 복도가 분주한 모습이다. 6층에 밥도 다 드셨는지 가봐야겠다. 설날에 따로 선물은 못 드리지만 식사라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나도 밥 챙겨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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