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상작가의'인문학으로 대종경 읽기')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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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상작가의'인문학으로 대종경 읽기')07-1
  • 한울안
  • 승인 2015.09.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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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처는 불상이 아니다-정볍현 교도(북일교당)

불상(佛像)은 부처의 형상을 딴 조형물이다. 하지만 불상은 부처가 아니고, 부처는 불상이 아니다.부처는 법당에 모셔진 불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상은 위대한 문화재며 역사유물일 수는 있으나 그 자체로 부처는 아니다. 부처의 형상일 수는 있다. 누구나 어느 때나 부처가 될 수 있으므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앞부처가 존재하며 또한 뒷부처도 나타나고 또 나타날 것이다. 이것을 부정하면 불교가 아닌 것이다.



부처는 하나(一)가 아니다. 부처는 인류의 숫자만큼이나 많을 수도 있다. 부처는 태어나지도 오는것도 아니다. 인간의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찰에 가면 여러 종류의 불상을 모셔놓고 있다. 법당에 모셔진 어느 불상이 어느 부처인지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은 쉽게 알기 어렵다. 불교를종교로 가지지 않은 보통사람을 위해 각 법당마다 어떤 부처를 모셔 놓았는지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직까지 그런 설명을 본 적이 없다. 따로 공부를 해야 알 수 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예전에는 집에서도 우리네 어머니들이나 할니들이 한숨 쉬듯이 외우는 주문이 바로“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었다. 아미타 부처에 귀의하고 관세음보살에 의지하겠다는 본래의 뜻을 넘어 삶을 견뎌내고자 하는 어떤 의지가 주술처럼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은 신앙의 발심이라기보다는 주문(呪文)에 가깝다. 그 주문을 입에 달고 살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며 생애를 견뎌야 했으리라. ‘시방삼세 제불’이라는 말도 있다. 시방(十方)은 동서남북 4방과 그 사이의 4유(四維서북, 서남, 동북, 동남)을 합친 8방에 위와 아래를 합친공간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삼세(三世)는 과거,현재, 미래의 시간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하기야 시간은 공간 없이 홀로 존재할 수 없고, 공간 역시 시간 없이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세계(世界)는 시간을 의미하는 세와 공간을 의미하는 계로 이루어진 단어이다. 세(世)는 열십자(十) 세 개가 합쳐져 시간과 한 세대를 상징하는 글자가 되었고 계(界)는 밭(田)을 나눈다(分)라는 글자의 합성으로 이루어져 공간과 구역을 상징하는 글자가 되었다.



시간과 공간으로 구성된 세계 안에서 인간을 비롯한 만물은 생로병사를 겪는다. 그것이 세계이다.그러나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의 말 그대로 ‘세계는 무한히 접힌 주름이다.’시간과 공간이 접히고 접힌 주름의 상태, 그리고 인간의 마음이 접히고 접힌 삶의 주름의 상태, 삶과 물질의 단자(單子Monad)가 접히고 접힌 주름의 상태가 바로 세계인 것이다.



인문학과 마음공부는 그 접힌 주름의 세밀한 결을 보기위한 안간힘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시방삼세란 곧 세계이며 시방삼세 제불이란 세계의 모든 부처를 말하는 것이다. 부처를 일컫는 것이지 불상을 일컫는 게 아니다. 부처는 신(神)이 아니다.



불상을 신처럼 모시고 불상에 예배하는 것은 불교의 근본이 아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스승을 만나면 스승을 죽여 스스로의 용맹정진으로 깨달음을 성취하라는 임제의 말이 준엄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불상의 제자가 너무 많다. 부처를 만든 것도 불상을 만든 것도 사람이다. 사람이 만든 부처와 불상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자.



(07-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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