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 경성에 오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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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경성에 오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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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1.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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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울원문화해설단 지상강의(紙上講義)


8강 : 원불교 창립 인연들 ②



2. 최초의 여자수위단원


소태산 대종사는 인생의 요도 사요(四要) 중 첫째 조목을 남녀 권리 동일이라 하였다.


이는 당시 남녀차별제도를 극복하고 남녀평등을 실현하자는 것이었다. 곧 여자의 자력양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자들만의 자력양성이 아닌 모든 사람들의 자력 양성이 실현되기를 염원하였다.


원기15년(1930) 경성출장소에서 임시 여자수위단을 처음으로 조직하였고, 원기28년(1943) 정식 여자 수위단원을 내정했다.


(1) 일타원 박사시화 : 육타원 이동진화를 비롯 구타원 이공주와 여러 인연들을 인도하여 서울교화의 효시를 이루었으며 창립 제1대 내에 5백 75명을 귀의시켜 최다 연원자가 됐다.


(2) 이타원 장적조 : 교단 창립기 삼대여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부산 교화의 시조가 되었고, 국경을 넘어 만주까지 일원의 법음을 전했다.


(3) 삼타원 최도화 : 대종사 사가의 거처할 집과 농자금을 보조하여 십타원 양하운의 생활기반을 갖추게 했다.


(4) 사타원 이원화 : 방언공사와 구간도실 건축에 조력하였으며, 그후 40여 년을 영산원 안살림을 담당했다.


(5) 오타원 이청춘 : 원기9년(1924) 불법연구회 창립준비를 위한 창립발기인에 여성으로 유일하게 참여하였으며, ‘전주출장소’를 신설하여 교화하며 청춘으로 일관했다.


(6) 육타원 이동진화 : 원기11년(1926)에 서울 창신동 자신의 수양처를 희사하여‘경성출장소’가 창설되게 했다.


(7) 칠타원 정세월 : 부군인 서중안이 불법연구회 초대회장을 역임하고 열반하자 출가하여 대종사의 수족 같은 역할을 했다.


(8) 팔타원 황정신행 : 소태산 대종사의 제자가 된 후 옛 영산회상의 수달장자와 같이 회상 창립에 많은 정재(淨財)를 희사했다‘. 보화원’을 설립하여 원불교 고아원의 효시가 되는 등한국 고아들의 큰 어머니가 됐다.


(9) 구타원 이공주 : 많은 정재를 희사하여 대봉도의 원훈을 증여 받았으며, 이공주가 대종사의 법문을 가장 많이 받들고 수필하자 대종사는“공주는 나의 법낭(法囊)이다”고 하였다.


(10) 십타원 양하운 : 소태산 대종사와 결혼하여 대종사의 뒷바라지를 하고 깨달음을 이루자 새 회상 건설에 동참하였으며, 대종사가 오롯이 새 회상 창업에 헌신할 수 있도록 내조한 정토원훈(正土元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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