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 경성에 오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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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경성에 오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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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2.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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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울원문화해설단 지상강의(紙上講義)


9강 : 소태산 대종사와 경성(서울)교화



1. 소태산 대종사 경성에 가다


⑴경성역에 도착하다


소태산 대종사는 최도화의 안내로 송규, 서중안, 전음광을 대동하고 원기9년(1924) 3월 20일 오전 이리역(현 익산역)에서 경성행 열차를 타고 당일 저녁 경성역(현 서울역)에 내렸다. 이것이 소태산 대종사의 첫 상경이자 경성교화의 출발이다. 이동진화, 김삼매화 외 몇몇 제자들을 얻은 소태산 대종사는 약 1개월여 생활을 마무리하고 5월 2일 익산으로 떠났다.


⑵소태산 대종사가 다시 상경하다


총부회관 건축이 마무리 될 즈음인 음력 10월에 소태산 대종사는 경성에 만날 사람이 있다며 갑자기 상경했다. 소태산 대종사의 상경 소식에 민자연화, 이공주, 이성각, 김영신은 소태산 대종사가 머물고 있는 곳을 찾아 왔다. 이때가 원기9년 11월 22일이다. 소태산 대종사가 서울에서 이공주 일가 3대 4모녀를 만난 것은 경성교화 뿐 아니라 새 회상의 큰 인재를 얻는 기연이 됐다.


2. 경성에 불법연구회 출장소가 생기다


⑴불법연구회 경성출장소를 설립하다


원기11년(1926)이 되자 경성지역 회원 10여 명은 음력 7월에 경성출장소 설립을 위한 발기인 모임을 가졌다. 이동진화는 자신의 수양채를(종로구 창신동) 경성출장소 설립을 위해 희사했다.


⑵경성에‘성주’법문을 설하다


원기12년(1927) 1월 12일 소태산 대종사는 재가선법과 고락의 원인에 대한 법설을 하며 회원들에게 시구를 지어 불러주었다. 소태산 대종사는 훗날 이날의 시구를 합하여 영혼천도를 위한 성주(聖呪)라 이름했다.


⑶약자로 강자되는 법문을 설하다


원기13년(1928) 4월 16일, 경성출장소 회원들은 소태산 대종사의 여러 법설을 받들었다. 이중‘약자로 강자되는 법문’을 이공주가 수필하였다가『월말통신(月末通信)』제1호가 발행되자 법문을 발표했다. 이 법문이 새 회상 공식기관지에 발표된 소태산 대종사의 첫 법문이다.


⑷경성출장소에 전무출신 2인이 근무하다


원기13년 인사에 의해 송규 교무가 이임하고 이춘풍 교무가 제3대 교무로 취임하여 6월 2일 경성출장소에 도착했다. 또한 경성출장소 살림에 조전권이 공양주로 정식 발령을 받았다. 그리하여 경성출장소는 전무출신 2인이 근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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