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 경성의 발자국”
상태바
“소태산, 경성의 발자국”
  • 관리자
  • 승인 2016.04.01 0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리 가보는 7일간의 개벽순례

특별 1코스 : 창덕궁 → 은덕문화원 → 계동길 → 중앙고등학교 →
시민선방 → 천도교대교당 → 인사동길 → 조계사 → 종각

1. 북촌 계동길
북촌 일원에는 소태산 대종사의 첫 상경 인연과 경성 초기 제자 이공주, 이동진화, 성성원, 황정
신행 등 많은 회원이 살고 있었다. 이곳은 조선왕조의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 등 5개 궁궐이 자리잡은 곳으로 오늘날 문화재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1) 성성원 선진 집터(서울시 종로구 계동)
소태산 대종사는 경성에 처음 상경하였을 때 박사시화의 안내로 쌍둥이 동생 박공명선의 딸 성성원과 사위 진대익의 계동 집에 2~3일간 머물었다. 이 집에서 박사시화와 박공명선은 소태산 대종사의 경성 첫 제자가 됐다.

성성원은 그때 당시 귀의하지는 않았지만, 그 이듬해인 원기10년(1925) 8월에 최도화의 인도로 귀의했으며, 창신동 경성출장소 설립에 발기인이 되어 물심양면으로 성의를 다했다.


(2) 이공주 선진 집터(서울시 종로구 계동)
소태산 대종사는 창신동에 경성출장소가 설립되기 전, 계동 이공주가를'계동연구회'라고 불렀다. 경성 회원들은 창신동 회관이 생기기 전까지 창신동 이동진화의 수양채와 계동 이공주의 집에 모여 소태산 대종사의 법문을 받들었다. 소태산 대종사는 상경시 이공주의 집에 자주 들렀으며, '약자로서 강자가 되는 법문'등 많은 법문을 설하였다.


(3) 이동진화 선진 집터(서울시 종로구 가회동)
이동진화 선진의 가회동 집은 대지 88평으로 부군 이규용이 원기8년(1923)에 매입했다가 이듬해 이동진화에게 소유권을 이전했다. 그러나 이동진화는 원기9년(1924) 창신동 집을 매입하여 수양채로 삼고, 가회동 집을 청산했다. 이동진화는 당시 2,000원을 교단에 희사하였는데 아마도 가회동 집 매매대금이 아니었을까 추정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