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화두 모든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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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1.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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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법현 교도 / 북일교당


어쩌면 소태산은 젊은 시절‘치삼노인, 들깨, 또쭐이, 봉구, 고서방’이라는 사람들을 보았을 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193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김정한의 단편소설「사하촌(寺下村)」의 등장인물 들이다. 사하촌은 말 그대로‘절 아래 마을’이다. 치삼 노인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직업은 보광사라는 절의 땅을 소작하는 농민이다.


— 치삼 노인은‘중놈’이란 바람에 가슴이 섬뜩하였다. 그것은 자기들이 부치고 있는 절논 중에서 제일 물길 좋은 두 마지기가, 자기가 젊었을 때, 자손 대대로 복 많이 받고 또 극락 가리라는 중의 꾐에 속아서 그만 불전에 아니 보광사(普光寺)에 시주한 것이기 때문이다.


멀쩡한 자기 논을 괜히 중에게 주어놓고 꿍꿍 소작을 하게 되고 보니, 싱겁기도 짝이 없거니와, 딱한 살림에 아들 보기에 여간 미안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문득 지난봄의 허 서방이 생각났다. 부쳐 오던 절 논을 무고히 떼이고 살길이 막혀서, 동네 뒤 소나무 가지에 목을 매어, 시퍼런 혀를 한 자나 빼물고 늘어져 죽은 허 서방이 별안간 눈에 선하였다.


“그럼, 시주 돈도 없이 절에는 뭘 하러들 왔수?” 진수 어머니는 입을 삐죽하더니, ‘이것들 곁에 있다가는 괜히 큰 망신하겠군!’할 듯한 표정을 하고는 어디론지 펑 가 버린다. 베치마 패들은 잠깐 주저주저하다가, “돈 없으면 복 적게 받지 뭐.”하고는, 남편이나 아들들이 끼니를 굶어 가며 나뭇짐이나
팔아서 마련한 돈들을, 빚의 끝돈도 못갚게 알뜰살뜰히도 부처님 앞에 바치고 나온다. 더러는 내고 보니 꽤 아까운 듯이 돌아보기도 했다.— (김정한단편소설「사하촌」중에서)


김정한은 식민지 치하에서의 불교와 그 아래 녘에서 소작으로 살아가는 농민들의 삶을 이토록 정확하면서도 날카로운 필치로 그려냈다. 김정한의 눈으로 보면, 부처가 중생을 착취하는 꼬락서니였다.


소태산은 차마 그렇게 표현할 수는 없어서 표현을 상당한 수준에서 순화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총독부의 매서운 감시에 놓여 있던 소태산은 당대의 불교를 비판하기보다는 전대(前代)의 불교를 비판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당대의 불교를 비판하는 것은 곧 조선총독부에 저항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미 만해스님을 비롯한 극히 일부의 스님을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스님들은 총독부에 기꺼이 협조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기독교마저도 신사참배라는 우상숭배의 죄악을 서슴지 않고 행할 때였다. 기독의 신을 모시는 그들은 신사에 나가 참배함으로써 총독부로부터 많은 특혜를 받을 수 있었다.


“돈 없으면 복 적게 받지 뭐.”참으로 사무치는 탄식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종교는 중생의 이 탄식 위에 성채를 세운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한다면, 너무 비약일까? 입으로는 주기도문과 반야심경과 일원상서원문을 독경하면서 실재로는 유전유복 무전무복을 행하고 있지 않은지 깊게 성찰해봐야만 한다.


요즘도 조계종, 천태종, 태고종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불가의 파당이 존재하고 있다. 백 년 전에 소태산이 지적하였던 그대로“한 과목이나 혹은 두 과목을 가지고 거기에 집착하여 편벽된 수행 길로써 서로 파당을 지어 신자의 신앙과 수행에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팔만대장경이란 오롯이 번뇌의 바다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번뇌의 바다 한 복판에서 문득 서산대사의 말이 떠오른다.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교가 말이 있는 곳으로부터 말 없는 자리에 이르는 것이라면, 선은 말 없는 곳으로부터 말 없는 자리에 이르는 것입니다. 말없는 곳으로부터 말 없는 자리에 이르렀을 때 이것을 무엇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지만, 부득이 마음이란 이름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번뇌의 바다에는 선과 교의 파도가 넘실거린다. 소태산은 그 번뇌의 바다를 건너갈 수 있는 배를 한 척 설계하고 만들었으니, 그 배란 다름 아닌 정전과 대종경이다. 정전과 대종경은 팔만대장경의 말씀 위에 놓인 한 권의“압권”이다. 그것을 소태산은“우리는 이 모든 과목을 통일하여 선종의 많은 화두와 교종의 모든 경전을 단련하여, 번거한 화두와 번거한 경전은 다 놓아 버리겠다”고 말했다. 선종의 많은 화두는「대종경」으로, 교종의 모든 경전은「정전」으로 결집(結集)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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