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위한 메뉴와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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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위한 메뉴와 식탁
  • 관리자
  • 승인 2016.03.0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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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윤리로 살펴보는 종교와 철학(3)/김현진 (주)마지 대표


설이 지났다. 요즘에는 먹을 것이 차고 넘쳐서 그런지 설이라고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놓고 뱃속에 음식을 저장하듯이 식탐을 부리면서 먹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대신 시시때때로 식탐을 부리는 스스로와 전쟁하는 경우가 있다.



식탐이 있다는 말은‘탐욕적이다’, ‘이기적이다’등의 의미를 비롯해 심지어‘궁핍’과‘저열함’등을 떠올리게 한다. 밥상의 위계와 질서는 권력의 등장과 맥을 같이하며 그 권력은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져왔다.


고상한 상류인사들의 교양 있는 식탁예절과 무지하고 투박한 아랫것들의‘한끼 때움’은 식사를 통해서 지적·문화적 수준을 보여주어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식탁에도 올리지 못한 밥그릇을 손으로 받쳐 들고, 먹는 행위는 교양 없는 행동이었으므로 식탁 위에서는 밥과 국, 반찬에 따라 숟가락과 젓가락을 품위 있게 구별해서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이미 먹고 마시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권력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 이것은 위계적 체제와 질서를 유지하는 데 치명적인 결함으로 작용한다. 모두가 체제에 편입하기위해 치열한 경쟁과 줄서기를 할 때 체제는 더욱 강고해지고 권력도 더욱 견고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권력구조가 가장 두려움을 느끼는 형태는 가난한 계층이 스스로 먹고 마시기를 즐기며 자족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사실 먹고 마시기를 즐기는 측면으로 본다면 한국문화만큼 열정적인 곳도 드물다. 이 때문에 어떤 사상가들은 한국의 정신 문화코드에‘풍류’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국의 먹기 사랑은‘먹
방’이란 신조어에서도 잘 드러난다. 하지만 이런 음주가무와 먹기를 즐기는 한국인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아이러니하게도 매우 낮은 수준이고, 청소년과노인의 자살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왜 한국인들은 먹고 마시기를 즐기는 민족이라는 타이틀에 어울리지 않게, 즐
거움과 창조적인 동력이 빠진 채 점점 무기력해지고 있는 걸까? 어쩌면 한국사회는 먹고 마시기를‘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저‘먹고 마시는’전통에만 메여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통사회에서 백성이 먹고 마시는 일은 대동단결의 장이었고, 화합과 격려와 희망의 자리였다.



그러나 현재 한국사회는 파편화된 자신의 위기의식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음식이나 술을 찾고 노래를 부른다. 사회는 부익부 빈익빈으로 양극화 되고,‘ 불금’의 거리를 휩쓰는 사람들의 물결은 사회 변혁적인 에너지가 아니라 체제 순응적인 세대로 길들여진 에너지
로 보인다.



식탁은 권력의 연장선상에 있다. 우리의 식탁이 어떻게 꾸려지고 있는지는 우리가 어떤 권력관계에 놓여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소외계층에게 먹고 마시는 것은 생존의 문제로, 삶의 가장 기본적
인 과제이다. 이들의 식탁을 풍요롭게 하는 전략은‘함께 나누고, 함께 먹고 즐기는 것’이다. 그렇게 함께 나누면서 풍성해진 식탁에 대해 권력자들은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한국 사회는 제대로 된 식탁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시급하다. 누구와 무슨 음식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최종적으로 사회의 모습을 달라지게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먹방’이라는 음식의 관음증에 빠질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메뉴와 식탁을 차릴 때가 되었다. 자신
의 레시피와 자신의 음식코드에 따라, 그리고 함께 하고픈 사람에게 의미 있는 식탁을 차려줄 문화를 창조할 시점인 것이다. 나만을 위한 식탁이 아니라 나와 너, 우리를 위한 식탁을 차릴 준비가 되었을 때 먹고 마시는 사람들의 행위는 그 자체로 즐거운 노래와 춤이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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