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칼럼] 미국 소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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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칼럼] 미국 소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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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7.15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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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담현 교도(마포교당), 원불교인권위원회 운영위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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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사랑하는 외동딸이 사라졌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던 어린 아들도 사라졌다. 곁에 있던
단짝 친구도 사라지고, 외도로 가정을 파탄냈던 미운 전 남편도 사라졌으며, 결혼을 며칠 앞둔 신부의 어머니도 사
라졌다.
그렇게 세계 인구의 2% 가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남은 98%의 사람들이 이러한 충격 후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해서 그린 소설이 '레프트오버(the Leftover)'다. 2011년도 미국에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미국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소설의 시작은 갑작스런 증발이 발생한 후 3년이 되는 해부터 시작된다. 남은 사람들 중 일부는 사라진 2%의 사람들이 휴거(기독교에서 구원을 받아 승천하는 것)로 승천하여 사라진 것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사라진 사람들의 비리나 인간적 결함을 찾고 또 강조하여 사라진 자들을 욕되게 한다. 미국 소설 이야기다.
사라진 2%의 사람들과 가까이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외부에서 규정짓는 관계로 인해 심한 심리적 갈등을 겪는다. 실제 자신이 사라진 이들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외부에서 표현하도록 강요받는 감정이 너무나도 달라 자아와 정체성이 흔들려 제대로 된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소설 이야기다.
소중한 사람들을 갑자기 잃어버린 당사자들은 그전과 같은 생활을 해내지 못한다. 갑자기 끊임없이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갑자기 사라진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당혹감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사이비 종교에 빠지기도 하고 가족 자체가 해체되어 버리기도 한다. 미국 소설 이야기다.
비극적 사라짐이 발생한 후 3년이 되는 시점을 시작되는 이 소설은 소설의 마지막까지 상실의 충격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치유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때로는 절망적인 모습으로 때로는 희망적인 모습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을 스케치하며 마무리된다. 미국 소설 이야기다.
독특한 상황설정과 이러한 상황에 처한 일반 사람들의 심리를 사실감 있고 치밀하게 묘사한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소설 속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증발한 것이 휴거인지 아닌지 나름대로 진지한 토론까지 열렸다고 한다. 미국 소설 이야기다.
2014년 4월 16일 지금으로부터 2년전 우리나라에서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사라졌다. 미국 소설에서는 눈앞에서 갑자기 사라졌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전 국민이 보는 TV속에서 서서히 바다 밑으로 사라졌다.
그 사라짐 후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소설속의 이야기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들은 그 충격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그렇고 이를 지켜본 국민들도 그 당시의 충격을 여전히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벌써 잊으려고 한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제 갓 2년이 지났을 뿐인데. 미국 소설이 아닌 우리나라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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