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의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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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의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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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8.19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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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상작가의 ‘인문학으로 대종경 읽기’ 13-01 l 정법현 교도(북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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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상은 원불교의 상징이며 동시에 소립자에서 우주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본질적 상징이다. 1919년 8월, 소태산은 김제 금산사 별채인 송대에 잠시 머물 때 문 위에 최초로 일원상을 그렸다.

일원상은 동그라미 형태의 원형(圓形)이다. 소태산은 일원상을 부처의 심체라고 했다. 심(心)이란 마음이고, 체(體)란 사물의 변하지 않는 근본성질로 사물을 구성하는 본질을 의미한다. 한편으로 심체란 '마음을 형상화한 것'이기도 하다. 소태산은 동그라미에다 부처의 마음을
담아냈다.
소태산은 무릇 상징이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았던 것 같다. 일원상은 그려진 것이지만 그려진 것이 아니다. 이미 우주와 삼라만상에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근본의 형태였다. 그것을 소태산은 원불교의 상징이며 법신불의 심체로 삼았다. “만약 상징이 없다면, 인간은 마음속
의 풍부한 내면의 풍경을 상당수 잃어버릴지 모른다.”, “ 기본적으로 상징은 오랜 세월 동안 의식과 무의식의 복잡한 상호 작용을 거치며 의미를 축적해온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신중하게 선택되거나 창작된 것이다.
후자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은 부호(sign)로 규정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부호는 상징적인 목적이 있지만 그렇게 사용하기로 인간이 정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예를 들어 원(circle)은 실제적 가치를 통해 본질적인 의미를 전달한다. 원은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의 선이다. 이 선은 총체적 완성을 의미하며 영원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가 이러한 의미를 깨우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의미를 내재하는 원 자체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은 직관적으로 원과 소통한다. 마음과 원 사이에는 자연적이고 즉각적인 의미의 상호 작용이 이루어진다. 원은 사물 자체를 넘어서 인간과 자연스럽고 보편적으로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진정한 상징의 힘을 보여주는 적절한 예시가 된다.” (데이비드 폰태너 지음, 공민희 옮김,<상징의 모든 것>, 성균관대출판부, 2011,8-9쪽)
일원상은 소태산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심오한 예지와 모든 사물을 통찰해내는 직관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생성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소태산이 일원상을 그려내기까지의 1916년 4월에서 1919년 8월의 시간은 1914년 7월부터 1918년 11월의 시간과 상당한 부분에서 서로 겹치고 있다.
그 시간을 역사는 제1차 세계대전 기간이라고 부른다. 유럽이 1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전후의 폐허 속에서 염세와 절망에 신음할 때, 조선은 식민지로 전락했고 백성들은 그저 굶주릴 뿐인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 시간에 한가하게 동그라미나 그리고 있었단 말인가? 아니다. 소태산은 그 모든 것의 본질에 대해 궁리하고 있었다.
일원상은 그저 동그라미다. 아주 단순하다. 하지만 소립자에서 온 우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물의 근본적 형태가 단순한 동그라미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동그라미에는 중심이 없다. 콤파스로 동그라미를 그릴 때 가운데 찍히는 점을 중심이라고 할 수는 없다. 콤파스를 이용하지 않고 그리면 가운데에 찍히는 점마저도 없는 것이다. 중심이 없다고 해서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중심주의는 계몽주의 이후 근대철학이 내세운 개념이다.
“'계몽주의 이후 서양의 근대철학은 개인의 자아로서'나(I)'를 발견했다. 중세의 신(God)에 얽매여 있다가 마침내 발견한 '나(I)'는 황홀했고 매혹적이었다. 신과 대등한 관계로 나를 끌어 올렸고, 우주만물의 중심으로 그 존재를 위치시켰다. 서양인들은 세계의 주체인 '나(I)'를 집요하게 탐구했고, 철학적으로 존재론을 거의 완성시키다시피 했다.

서양의 근대철학은 개인의 자아를 발견한 이후에 자아 정체성의 확립을 목표로 공간과 시간, 현상을 분절하고 해체시키면서 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정도상,색계의 한 연구중에서) 소태산은 서양의 근대철학에 대해 몰랐다. 그것이 우리한테는 참으로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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